현관 중문 소리를 기다리는 밤

남편의 빈 자리

by 민선미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벌써 23년째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출장도 거의 없고,

장기간 집을 비울 일도 없이 늘 우리 가족 곁에 있었다.


붙박이처럼 집과 회사를 오가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이번에 큰 계약건을 맡으면서 팀 단위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결혼 후 손에 꼽을 만큼 긴 시간, 남편이 집을 비운 날들이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챙기고 하루를 꾸려가는 일이 생각보다 낯설었다.

나는 그동안 남편만 믿고 꽤 자유롭게 움직여왔다.
아들은 학원으로 바쁘다며 여행을 미뤘고,

딸과 함께 친구처럼 해외여행을 길게 다녀오기도 했다.

더구나 나의 여행모임에서도 제주도를 여러 번 오가기도 했다.

그땐 몰랐다.

남편 없이 집을 지키는 시간이 어떤 감정인지.
거꾸로 되어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무뚝뚝한 성격이라 아무렇지 않을 거라 믿었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는 자주 그 마음을 짐작하는 수고를 생략했다.
이제 나이가 들면 알아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시간들은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출근하고 매일 퇴근하는 남편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의 부재가 컸던 시절을 지나
아이들의 손이 덜 가는 시점에 남편은 코로나 이후 칼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회식도 대부분 낮에 끝났다.

나의 자유는 언제쯤일까.

주말부부로 지내는 친구들,

해외 파견을 나간 부부들,
혼자가 된 친구의 자유로움이 부러워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비교를 했다.


복에 겨워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 때나 일어나고 아무 때나 잠들 수 있는 밤을
한 번쯤은 꿈꾸었다.


남편이 집을 비운 며칠 동안,

나도 모르게 퇴근 시간이 되면

시계를 보게 되었고 현관 중문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깊게

그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느 밤, 제주도에 있는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잠이 안 오네.”


그 문자를 읽는 순간 마음이 멈칫했다.

내가 여행을 갔을 때는 혼자 숙소에 있어도 외로울 틈이 없었는데
공적으로 일을 하러 떠난 남편은

일이 끝난 시간에 가족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참 가정적인 사람이구나.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가족을 지켜왔던 사람이었다.


남편이 집을 비운 며칠은

나에게 자유가 아니라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 시간이 되었다.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해질 때,
우리는 가장 쉽게
그 소중함을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