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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잡 (Bullshit Jobs)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강의를 하는 현장에서 리더들을 만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지는 조언이 있습니다.


"너무 길게 휴가를 가지 마십시오."


왜냐고 이유를 묻는 분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러분들이 안 계셔도 회사가 잘 돌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부하 직원들이 눈치채면 곤란하니까요."


반은 농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마냥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사례가 있습니다. (사실은 아주 많습니다.) 반은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2017년 여름 세계 최고의 역동적 기업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던 '우버(Uber)'에서는 창립자 트래비스 캘러닉과 최고 집행부 중 여러 명이 사임했습니다. 우버는 상당 기간 동안 최고경영자(CEO),  최고 운영책임자(COO), 최고 재무책임자(CFO),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가 없는 상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일상적인 회사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습니다.'  


2016년 뉴욕에서 쓰레기 수거업자들이 고작 열흘 동안 파업했을 때 대도시 뉴욕은 아주 빠르게 거주 불가능한 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부는 쓰레기 수거업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가장 큰 부분은 '직업'입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직업의 가치'는 '연봉의 가치'와 비례되어 해석됩니다. [높은 연봉 = 높은 가치]라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대를 주장하는 책이 오늘 소개해 드릴 '불쉿잡(Bullshit Jobs)'입니다.


불쉿잡(Bullshit Jobs)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을 쓴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직업의 가치를 다시 논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미국의 벤저민 록우드, 찰스 네이선슨, 에릭 글렌웨일은 2017년 논문에서 여러 종류의 고액 직업과 관련된 '외부효과(사회적 비용)'과 '낙수효과(사회적 혜택)'을 다룬 기존의 문헌들을 훑어 기여도를 재점검했습니다. 고액 연봉자의 사회적 기여도를 정확하게 판단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저자들의 결론에 따르면 사회적 가치가 가장 큰 직업은 의학 연구자였고, 가치가 가장 적은 직업은 '금융부문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의학연구자들은 보수를 1달러 받을 때 전체 사회적 가치가 9달러 증가했지만, 금융부문 종사자들이 보수를 1달러 받을 때, 사회적 가치는 오히려 1.8달러만큼 줄어들었습니다. 다음은 그 명세서입니다.


- 의학 연구자   +9  

- 학교 교사   +1

- 엔지니어   +0.2

- 컨설턴트, IT 전문가   0

- 변호사   -0.2

- 광고, 마케팅 전문가    -0.3

- 금융부문 종사자   -1.5


영국의 신경제 재단(New Economic Foundation)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투자분석에 관한 사회적 보상"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고소득 셋, 저소득 셋의 대표적인 직업 여섯 가지를 검토했습니다. 다음이 그 결과입니다.


- 시티의 은행가 : 연봉 500만 파운드. 보수 1파운드 당 7파운드어치의 사회적 가치가 파괴되는 것으로 평가됨

- 광고회사 사장 : 연봉 50만 파운드. 보수 1파운드 당 11.5 파운드의 사회적 가치가 파괴

- 세무사 : 연봉 12만 5,000파운드. 보수 1파운드 당 11.2파운드의 사회적 가치 파괴


- 병원 청소부 : 연봉 1만 3,000파운드(시급 6.25파운드.현재 기준 9,972원). 보수 1파운드 당 10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됨

- 재활용품 처리 노동자 : 연봉 1만 2,500파운드(시급 6.10파운드. 9,732원). 보수 1파운드 당 사회적 가치 12파운드 발생

- 유아원 근무자 : 연봉 1만 1,500파운드. 보수 1파운드 당 사회적 가치 7파운드 발생


두 연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사회적 기여의 정도가 직업의 연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분명히 표현하자면 역의 관계인 반비례의 경우가 훨씬 더 많고 일반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불쉿잡(Bullshit Jobs)'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고, 거세게 공격합니다.


'불쉿잡'이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들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입니다.


이는 '쉿잡(Shit Jobs)'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이른바 예전에 3D라 불렸던 직종의 대부분은 '불쉿잡'이 아니라 '쉿잡'입니다.


불쉿잡은 보수가 상당히 높고 작업 여건도 아주 훌륭합니다. 단지 일 자체가 무의미할 (혹은 유해할) 뿐입니다. 쉿잡은 꼭 수행되어야 하고 명백히 사회에 유익한 작업이 포함됩니다. 단지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보수와 처우가 나쁠 뿐입니다.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시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할 것입니다.


불쉿잡 : 경제적 가치 > 사회적 가치

쉿잡 : 경제적 가치 < 사회적 가치


저자는 단호하게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그 대가로 받는 경제적 금액(보수)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한 세대 동안 '생산주의'가 '소비자주의'에게 패배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위의 연원이 물건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물건을 구매하는 능력으로 바뀐 현대에는 필연적으로 '불쉿잡'이 나타나고 증가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현대에 '부의 생산자들'이라고 하면 우리는 모두 자동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를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가치의 전복이 일어난 이 불균형을 어떻게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요? 로봇화 위기, 정치적 분화, 보편적 기본 소득 등 저자가 제안하는 내용에는 곱씹고 생각해 볼만한 아이디어가 꽤 있습니다.


코로나가 사납게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남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상태를 체크하고 조언해야 하고, 적절한 치료와 회복을 도와야 합니다.  먹을 음식을 제공해야 하고, 남은 쓰레기는 수거해 가야 하죠. 깨끗하게 옷을 세탁해서 입혀야 하고, 거주하고 있는 공간을 청소하고 청결한 상태로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전염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격리하며 거리를 둘 때에도 여전히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이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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