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그가 말하는 '국민' 안에 내가 들어갈까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나라가 '미국'이 아니게 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아마 아들 부시가 두번째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던 그 시기엔 미국은 온 세계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는 나라이자, 냉소 섞인 조롱을 던질 일을 아무렇게나 해 버리는 지도자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제 머릿 속에 1등 국가는 항상 '스웨덴' 였던 것 같습니다. 스웨덴처럼 국가가 진심으로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면, 그 노력을 정직하고 바른 정책의 추진이라는 실천으로 담보해 낼 수 있다면, 세금을 얼마든지 더 낼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나와 나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를 위해서 말이죠.

아직도 가보지 못한 스웨덴은 저에게 '올로프 팔메(Olof Palme)'의 나라입니다.

현대 스웨덴의 사민주의 정책의 기틀을 만든 지도자.
보수당을 보편적 복지정책에 동의하도록 설득한 협상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정책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미국과 베트남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한 중재자. 이란과 이라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제 3세계와 약소국의 권리를 위해 애쓴 외교가.

유일하게 챙겨듣는 팟캐스트에서 북유럽과 올로프 팔메에 대한 방송을 듣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그에 대한 글을 읽고 그에 대해 공부하고 그를 알게 되면서 더욱 더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평생에 저런 정치가를 만날 수 있을까?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희망은 언제나 더 절박합니다.

그런 스웨덴의 2022년 선거 결과는 믿을 수가 없을만큼 비현실적입니다. 중국의 시진핑이나 러시아의 푸틴이나 트루키예의 아르도안 등 신권위주의(라고 쓰지만 '독재자'라고 읽어주시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지도자들의 출현과 자국우선주의가 발호할 때도 스웨덴에는 그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놀랄만큼 높은 지지를 얻고,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형제당'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가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는 지난 9월의 뉴스를 접했을 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우주의 발호는 유럽 전체에서 관찰되는 흐름이니까요. 하지만 그 흐름과 마지막까지 연관이 없어야 하는 나라는 '올로프 팔메'의 나라 '스웨덴'이었습니다.   

9월 14일 스웨덴의 총선 결과는 집권당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집권당인 사민당의 사민진영은 173석, 보수진영은 176석을 얻었습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는 패배를 인정하고 사임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현 총리는 스웨덴 온건당 대표인 울프 크리스텐손입니다.)

사민당의 패배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보수진영의 제1당이 '스웨덴민주당(SD)'이 되었다는사실입니다. 이민자의 경제적 혜택을 줄이고, 성소수자의 망명을 금지하는 등의 반이민정책과 이민자 혐오를 내걸고 무려 21%의 지지를 받으며 사민당(30.3%)에 이어 전체 2위, 보수진영 내 1당으로 약진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스웨덴에서 '극우' 정당이 2등이라니요. 여전히 제게는 이 뉴스가 꿈처럼 아득하게 들립니다.

이제 그 어느 곳도 극우에서 안전한 곳이 없게 된 걸까요?

5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얀 베르너 뮐러 (Jan Werner Mueller)가 2016년에 쓴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라는 작은 책입니다. 원제는 'What si Populism' 그러니까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입니다.   

저자는 포퓰리즘을 '극우'만 사용하는 전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극우도, 극좌도, 다수당도 사용하는 전술이라는 것입니다. 사용하기 쉽고 효과는 강력하니까요. 책에서도 헝가리나 미국 뿐 아니라 '차베스'도 대표적 예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핵심은 동일합니다.
포퓰리즘의 핵심은 국민 가운데 '일부'만 진정한 국민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민자는 진정한 국민이 아니라는 스웨덴민주당의 주장처럼 말이죠.)

놀랄만큼 통찰력있는 지적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포퓰리즘은 '차별적 법치주의'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친구에게는 무엇이든 다 해 주고, 적은 법으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매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대통령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국민들이 현명하게 판단'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말이 날리면인지 바이든인지도 '국민'이 판단해야 하고, 전용기에 특정 언론 매체를 태우지 않는 일의 잘잘못도  '국민'이 판단해야 합니다. 참사가 일어났던 이유와 후속조치의 정당성도 '국민'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질문'없냐고 묻고는 집무실도 들어 갑니다. 왜냐하면 답하지 않아도 '국민'이 잘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국민' 안에 내가 들어갈까?"

오늘 소개드리는 책의 부제이기도 합니다.

#누가포퓰리스트인가 #그가말하는국민안에내가들어갈까 #얀베르너뮐러 #올로프팔메 #스웨덴민주당 #밑줄긋는남자

작가의 이전글 21세기 권력 The Syste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