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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질서는 무너졌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한석규와 전도연이 출연했던 '접속'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인터넷 통신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둘은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한석규는 전도연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전도연을 이층의 카페 유리창문을 통해 바라보기만 할 뿐입니다. 전도연은 오지 않는 주인공을 계속 기다립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약속을 하고 장소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바로 전화를 겁니다. "지금 어디야?"
아니면 문자를 보냅니다. '나 도착. 지금 어디?'
 
언제 올지, 아니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대상을 기다리는 것을 '낭만'이라고까지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오가는 사람들을 빠르게 훑어보면서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일은 꽤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원하기만 하면, 누구하고라도 언제라도 연락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답답한 기다림의 시대란 마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트워크에 24시간 연결된 지금 우리의 상태는 우리가 원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원하지 않았지만 강요당한 결과일까요? 언제라도 연락이 가능해진 지금은 예전보다 더 살기 좋아진 것일까요? 아니면 불편해진 것일까요?

재작년에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1980년에 태어난 젊은 철학자, 29살에 본대학의 사상 최연소 석좌교수가 되었다는 저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cus Gabriel)'에 대한 관심 때문에 고른 책이었습니다.

책은 읽었지만 저자의 주장과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너무 어렵더라고요. 천재인 데다가 철학자이니까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죠.

그냥 매우 주목받고 있다는 '좌파'사상가인 저자의 이름을 안다는 것과 비록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목받는 젊은 사상가의 책을 읽(기는 했)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얻은 정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를 다시 집어든 것은 일종의 '도전의식'같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의태', '표상의 위기', '신실재론' 같은 전혀 모를 단어들이 춤을 추었던 전작과는 달리 이 책의 목차는 조금 만만해 보였습니다. 읽고 싶었던 내용도 얼핏 보였지요. 지금을 살고 있는 나와 우리 그리고 사회와 공동체의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 이번이야말로 제대로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장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2장 국가와 국가의 연결
3장 타인과의 연결
4장 새로운 경제활동의 연결 - 윤리자본주의의 미래
5장 개인이 살아가는 본연의 자세

특히 2장과 3장은 이해가 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재미(?)까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음모론의 온상 넷플릭스
- 유튜브 구독자 수는 의미 없다
- SNS는 본인이 바라지 않는 자기를 강요한다
-  '혼자 있는 것'과 '고독'을 구별해야 한다 등
눈길이 가는 꼭지가 많았습니다.

여전히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책은 전작에 비해 꽤 잘 읽힙니다. 이해하면서 읽기 시작하니까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도 보이고, 의문이 생기는 주장도 읽힙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위기는 윤리적 진보를 불러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위기는 인간을 '비윤리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코로나 위기는 통계적 세계관에 의한 환상이라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가 안 됩니다.  

저자의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독서의 핵심은 비판적 읽기라는 점. 저처럼 여전히 오독의 가능성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욱더 필요한 독서의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카프카의 말을 빌리자면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곤란한 것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문해력(Literacy)'을 높여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저자는 '좌파'가 아니더군요. 독일 출신에 젊은 철학자니까 당연히 '좌파'일 거라고 생각해 버린 제 잘못이었습니다. 조금 더 신중하게 책장을 넘겨가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우파'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오해하는 것에 전혀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니로군요.

#지나치게연결된사회 #마르쿠스가브리엘 #왜세계사의시간은거꾸로흐르는가 #본대학최연소정교수  #신실재론 #밑줄긋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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