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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중독사회

풍요에 중독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회심리학적 진단과 처방

게시한 저의 글을 읽어보니, 시작할 때 옛날 얘기를 하는 경우가 꽤 많더군요. 경험의 범위가 좁고 제한된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인생을 살아가는 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구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도 저의 옛날 얘기로 시작하니까요. ^^;;


'가훈(家訓)'을 적어오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집에 자동차나 에어컨이 있는지, TV가 있다면 흑백인지 컬러인지를 조사하던 야만스럽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집에 가훈이 존재할 것이라는 저 가정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요?  


숙제를 받은 저로서는 숙제를 해 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매를 맞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집에 와서 아무리 벽을 돌아보아도 가훈이 새겨진 액자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퇴근한 아빠에게 물어봤더니 우리 집의 가훈 같은 건 없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할 수 없죠. 가훈을 정하는 수밖에요.


아빠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한자로 근사하게 적어주십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반 친구들의 절반은 우리 집과 같은 가훈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입니다.


그래도 다섯 글자를 적어온 저는 그나마 성의가 있는 편입니다. 학생인 내가 봐도 친구들의 가훈 숙제에는 급조한 것으로 보이는 무의성의한 답이 너무 많았거든요.


'정직', '성실', '절약', '근면' 등 주로 두 글자로 이루어진 가훈 사이로 가끔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 웃으면 젊어지고 화내면 늙는다)'같은 문구들도 보였습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일 때도 가장 중요한 가치는 '화목(和睦)'이었던 모양입니다. 배부르게 먹고, 멋진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기 위해 일주일에 6~70시간을 일하던 그 시기에도, '화목'은 최고의 가치였던 것이죠.


성경에도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5장 17절)'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잠언은 지혜자(솔로몬이라고 간주되는)가 후대들에게 남기는 삶의 지혜를 적어 둔 모음집입니다. 수천 년 전의 팔레스타인 유대땅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치는, 197,80년대의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책은 김태형 소장님의 [풍요중독사회]입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부르는 '풍요의 역설'이 지배합니다.  경제 성장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적 수준이 더 이상이 삶의 질이나 행복과 비례하지 않거나 혹은 반비례하는 현상을 '풍요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하는 건전한 사회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한 사회입니다. 하나는 '물질적 풍요'이고, 다른 하나는 '화목'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첫 번째 목표인 '물질적 풍요'는 달성하게 해 주었지만(비교적 혹은 상대적으로), 두 번째 목표인 '화목'은 놓치게 해 버렸습니다. 인류는 머나먼 옛날부터 이상사회로 풍요롭고 화목한 사회를 꿈꿔왔는데, 오늘날 한국의 사회는 얼마나 그 이상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어야 처방도 가능할 것입니다.


저자는 사회 공동체를 4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X축은 [가난 - 풍요], Y축은 [화목 - 불화]로 구분하면 4가지 유형이 만들어집니다.


1. 가난 - 불화 사회

2. 가난 - 화목 사회

3. 풍요 - 불화 사회

4. 풍요 - 화목 사회


저자의 유형 구분에 따르면 '가화만사성' 숙제를 해 가던 시기의 한국은 [2] 가난 - 화목사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3] 풍요 - 불화사회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동일 위계 내 화목'이 존재하는가 여부입니다. 1990년 신자유주의적 경제 성장 노선을 선택한 한국의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그에 따라 이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화가 심각해졌습니다. 소득불평등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고, 중산층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 가난-화목사회에서 풍요-불화사회로 줄달음쳐 온 시대적 맥락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풍요중독사회]에는 다층적 위계에 기초한 심각한 불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45가지의 조언과 통찰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위해서 말입니다.


#풍요중독사회 #김태형 #풍요의역설 #이스털린역설 #가화만사성 #한겨레출판 #밑줄긋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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