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 제3의 인물

매일 스치는 그대여...

by 올랜진

북동으로 우리 가족들이 자리를 잡던 날부터, 먼 시간이 흘러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우리와 함께 했었다. 일자로 뻗은 마당은 길었으며 세를 줄 수 있는 방은 네 개가 있었다. 그중 두 개의 방에 우리는 세 들어 살게 되었다. 그는 집주인이었고, 그의 해맑은 여동생이 우리를 살갑게 맞이해 주었었다. 우리가 이사하던 날 그는 엄마가 짐을 정리하는 내내 옆에서 허허 웃고 있었다. 오고 가는 웃음이 아니라 혼자만의 웃음이었다. 그러다 엄마에게 애들을 왜 그리 많이 낳았냐며 이번엔 대구가 있는 웃음으로 허허거렸다. 그의 모습은 이러했다. 깡마른 체격에 키는 훤칠히 컸었다. 물기가 말라 푸석해진 종아리를 늘 내놓고 다녔고,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발가락은 생기를 잃은 듯 말라비틀어져 보였다. 항상 뒷짐을 지고 다녔으며 옷에서는 쉰내가 났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가 조금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아저씨라는 표현을 쓰겠다. 아저씨는 자주 혼잣말을 했었고, 늦은 밤에도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하고, 비 오는 날은 하수구 뚜껑을 열어 퍼 내는 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마른 날 보다 비 오는 날 퍼내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수구는 구조상 퍼 내지 않으면 안 되었나 보다. 그래도 그때는 비 오는 날만 되면 하수구 냄새 때문에 아저씨의 행동에 눈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엄마에게 자주 막걸리 한 잔을 부탁하며 눌러앉아 있을 때는 어찌나 불편하고 싫던지. 우리들 사이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아저씨로 서로들 간에 놀림을 부추기기도 했었다. 우리들 이름을 뜬금없이 자주 불렀었고, 그날 이름을 불리우면 하루 종일 놀림감이 되었었다.


아저씨가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안타깝게도 아저씨의 남동생도 같은 세계를 살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의 남동생이 너무 무서웠었다. 장 우산을 들고 다녔고, 회색 정장 바지를 입고 다녔었다. 술에 전 오줌 냄새가 심하게 났었고, 웃지 않고 항상 우리를 노려봤었다. 가끔 차렷을 시키는 통해 내가 잔뜩 겁을 먹은 기억이 난다. 아저씨보다 더 단단히 미친 것이지.

엄마는 혼자 사는 아저씨가 안쓰러워 반찬도 챙겨주고, 가끔 술을 나눠 먹기도 했었다. 아저씨는 마당에 무엇을 쓸어내리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항상 비질을 해댔다. 먼지가 풍성히 일어도 쓸고 또 쓸었다. 아저씨는 항상 허허 웃기만 했었다. 둘째 언니가 날 마당에서 목욕을 씻기는 바람에, 아저씨의 구경거리가 된 듯 해 뱀 눈을 뜰 때도,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허허거렸다. 그러다 그 모든 일이 생각이 난 듯 깊은 밤 허공을 향한 아저씨의 욕지거리는 우리들의 잠을 설치게 했었다.


아저씨는 우리 소소한 삶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아저씨만큼 우리를 허허거려 줄 사람이 있었을까 싶다. 그 길고 긴 마당에서 몸싸움을 할 때도, 허락 없이 개를 키워도,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을 전세 낼 때도, 우리를 다 이해하는 듯 그냥 모든 것을 웃어넘겨줬었다. 우릴 통해 온갖 못볼꼴을 봤어도 깊은 밤 홀로 토해해는 것으로 집주인의 행세를 소심하게 했던 것이다.


정상일 수 없는 아저씨의 삶에 모두들 안타까워했으나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굿을 하겠다며 그 긴 마당 중간에 맹희(명희) 엄마는 칼춤을 추기도 했었다. 종순 언니는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맹희 엄마는 언니를 향해 칼을 던져댔다. 그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종순 언니 옆에 붙어 구경하다가 엄마에게 된통 혼난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맹희 엄마의 칼춤에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우리 또한 정상이라는 삶의 궤도에서 많이도 벗어나 있었던 것 같다.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고, 온전한 삶의 모범적인 것들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은 상처 받은 이들에게 더 달라붙기라도 하듯, 늘 그렇게 우리에게만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음에 깊은 골이 생겨버린 우리 각자는 어쩌면 아저씨보다 더 미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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