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집에 남아 있는 식구들은 오빠와 큰 언니를 제외한 모두였다. 우리 일곱은 방 두 개를 나눠 간신히 몸을 누였다. 언니 셋이서 한 방을 쓰고,
나와 동생은 엄마, 아버지와 함께 방을 썼었다. 밤늦게 딴짓을 하고 싶어도, 일찍 불을 꺼야 하는 불편함은 참으로 답답함이었다.
낮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숙제를 못해서 밤에 할라치면 욕 한 바가지를 얻어 듣고, 숙제는커녕 엄마의 성화에 그냥 누워야 했었다.
가난은 때론 정당한 것도 묻히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자주 깨닫곤 했다.
아버지 외에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외벌이 아버지는 늘 힘겨워하셨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무엇을 바라는 것은 참으로
미안하고 염치없는 행동이었다. 엄마는 일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하셨다. 감 따는 일, 모내기를 심는 일, 청소일, 신발 공장 등등.
일이 꾸준히 있어 정기적인 수입이 들어온 것이 아니기에 쪼들림은 늘 엄마의 꼬리에 붙어 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적인 돈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한 달에 월급을 받아 엄마에게 맡기면 그것을 주별로 나눠 생활비를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쓰고, 없으면 빌리는 쪽을
엄마는 택했다. 식구수가 많다 보니, 항상 모자라고 또 모자랐다.
어느 날, 그것도 갑자기 우리 집에 식구가 늘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 가난 속으로 들어와 우리를 더 난처하게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큰아버지의 맏아들 김완희.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좁은 둥지를 찾아 자기 누울 곳을 마련하였다. 아버지는 거절할 수 없었다.
엄마도 불편함을 얼굴로 드러낼 뿐, 그에게 자리를 순순히 내어주었다. 아버지와 완희 오빠, 그리고 남동생은 함께 방을 쓰기로 했으나, 싫었는지
엄마를 따라 누나들 방으로 와서 함께했다. 세로로 한 번 누웠다 다시 가로로 누울 수 없는 비좁음을 그는 모른척했다. 없는 살림에 무게를 더한 것 같아
얄밉고 싫었다. 엄마의 불편함과 날카로움은 날로 더해갔다.
그는 보기보단 억척이었다. 매일매일 일을 했었다. 일이 없는 며칠이 이어지기도 했으나 또다시 일터로 향하는 성실한 면이 있었다.
우리 집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가난의 냄새를 맡았는지 얼른 벗어나려고 하는 게 보였다. 매일매일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엄마에게
다만 얼마라도 신세비를 주기도 했었다. 드디어 독립할 밑천을 마련한 그는 우리 집을 나가게 되었다. 엄마에게 세탁기와, 우리에게는 책상을 선물하고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아 나간 것이다. 할 도리를 했다는 것에 지난날 불편함과 어이없음은 냄비가 식어지듯 잊어버렸다.
우리 집과 멀지 않은 곳에 방을 얻어 나간 그는 시장에서 자주 보였었다. 시장 모퉁이에 자리 하나를 잡고서 즉석 땅콩과자를 구워 팔기 시작했다.
참 수완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우리가 지나다녀도 절대 허투루 과자를 주는 일이 없었다. 팔고 남은 식어버린 과자를 주기는 했었다.
돈을 성실히 모으더니 결혼을 한다고 했었다. 한 번 결혼한 적이 있는, 사연이 있는 여자분이었다. 독특한 말투로 동생과 나의 시시덕거림이 되기도 했었다.
우리의 쩔쩔매는 형편을 보더니 말도 안 되는 말을 마구 쏟아 냈었다. 남동생에게도 자주 돈을 벌라 했다.
군입대를 며칠 앞둔 동생에게, 뭐 해? 돈 벌어야지!! 라며 상황도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돈을 벌라 했다.
그래 뭐라도 해서 아버지를 도와야지 라는 생각을 왜 그때는 못했을까, 가끔 이런 후회들을 한다. 아버지를 일찍 쉬게 하고 딸들이 집안의 수입원이 되었다면
어쩌면 지금도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 지금의 후회들을 그때 진작 깨달았다면 우린 더 좋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