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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uka Nov 04. 2022

미지의 세계로

누가 알았겠나요. 눈앞의 미래를요.

"갑자기 무슨 다이빙을 해 언니가?"


그래. 나도 똑같이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어쩌다 다이빙을 시작했는지 참 신기할 노릇이다.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발이 미끄러져서 꼬르륵거렸다. 유치원 때는 수영강사가 물과 친해지라며 집어던졌고, 초등학교 때는 연못에 빠졌던 기억도 있다. 덕분에 머리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던 나였다.


30대 중반쯤 되자,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뭐였을까? 아마도 단순하게 두려움 극복을 통한 성취감이었겠지. 난 그런 인간이니까.


3개월을 도전했지만 코에 물이 들어가는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중도 하차하기를 여러 번,

결국 자유형조차 익히지 못하고 킥판만 붙들다 포기했다.




올해 초, 그러니까 3월 말쯤 헤어졌다.

6년 반의 공백기를 끝내고 삼십 대 끝자락에서 겨우 만난 인연은 마치 존재한 적조차 없던 것처럼 삶에서 사라졌다.


섭식장애가 왔다. 한 달 만에 5킬로그램이 빠졌다. 물을 제외하고 무엇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야 했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야만 했다. 일을 새로 시작하고, 운동을 하고, 주 1회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안 나가던 모임도 약속도 미친 듯이 잡았다.

그러나 손에 들린 정신과 약봉투가 내게 말했다.

"넌 실패했어. 그것도 크게"


울었다. 아니 비명을 질렀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갈 곳 없는 감정은 형체가 없었다.

그저 끝없이 분하고, 다시 상처받고, 슬픔을 토했다. 이유도 몰랐다. 끝없이 생각했다. 빨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혼돈의 감정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기 최면도 했다. 진통제도 먹었다. 고통 처리 중추가 물리적 심리적인 고통 둘 다 관여한다나 어쨌다나 아주 그냥 안 아플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고.


실연 한 달 차, 영혼이 빈 채로 덜그럭 거리는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는데, 마침 같이 일하는 개발팀 부장님께서 스킨스쿠버다이빙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분은 이미 마스터까지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오픈워터/어드밴스드/마스터 순으로 가고 이후는 강사과정을 밟는다) 내가 흥미를 살짝 보인 순간 거의 반 강제로 영업됐다.

하지만 그 시작이 올해의 나를 버티게 하는 생명줄이 될 줄이야. 그땐 몰랐다.


다이빙 초창기 때부터 함께한 후배가 있다며 아주 유명한 강사라며 소개를 해주셨다. 더불어 빨리 결정하라고 압박을 주셨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른 건 이유가 있었다. 물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얼마나 크게 느끼는지 알기 때문에, 일단 시작하면 생존에 몰두하느라 그 순간만큼은 말도 안 되는 고통과 상념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마 고작 배신감이 생존 욕구보다 더 우선시되겠어?


어라. 우선시되네. 하. 나란 인간 생존 욕구가 없냐 잠수풀 5미터 바닥에서도 구남친에 대한 생각 때문에 멍 때리고 앉아있는 날 보면서 정말 난 안 되겠구나 싶었다. 도망칠 곳 없다는 그 절망감. 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수업에서 입수하다 또 잡생각에 넋이 나가서 코에 물들어 간 순간 패닉 오고, 이퀄라이징(귀의 압력차를 조절)도 실패해서 귀는 아프고, 버둥버둥거리다 진짜 못하겠다 싶었다. 이후로 재 입수를 계속 실패했다. 두려웠다. 미리 낸 강습비고 뭐고 그냥 포기해야겠다 싶었다.


"쌤, 제가 쌤의 강사 인생에서 최초로 포기한 학생이 되면 안 될까요?"

"그러던가. 네가 포기하면 나도 포기해. 그런데 네가 안 하면 나도 널 포기하지 않아."


아, 진짜 하기 싫은데. 마음 약해서 차마 못하겠다고 끝까지 말은 못 하고 연습을 더 하겠다며 수업을 그렇게 끝냈다.


이후로, 2번 수업 펑크를 냈다. 진짜 가기 싫었다. 두 달 넘게 못 먹은 몸은 최소한의 기운도 없었고, 7킬로그램 이상 빠져버려 출퇴근도 버거웠다. 수업 약속 전날까지 괴로워하며 고민하다가 말도 없이 안 가버렸다. 우울증 핑계를 댔다. 쌤 죄송해요. 그렇게 한 달을 마음에 짐짝처럼 두고 외면했다.




따뜻한 바람과 녹음이 펼쳐지며, 6월이 오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움츠려 들었던 위장도 같이 펼쳐졌나. 식사량도 하루 한 끼 정도는 먹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수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제 여름이니까 물놀이하는 셈 치자며 가볍게 다녀오자고.


역시 마음이 문제였을까, 놀아야지 생각하고 다녀왔더니 또 괜찮았다. 기분도 좋고. 체력은 여전히 공기통 끌 힘도 없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안될 때는 좀 쉬어가는 것도 괜찮아. 꼭 완성하고 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라고 또 다른 내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름의 기세에 힘입어, 7월에 해양실습까지 무사히 마쳤다. 바다에 들어갈 때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나 싫어하던 "생선"들은 물속에서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빛이 물속에서 일렁였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경이롭고, 훌륭했다. 생기 넘치는 얕은 바닷속이 만져졌다. 그리고 나도 그의 일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신이 났다.

나도 함께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가미로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거짓말. 이게 나라고?


그렇게 초급 다이버가 되었다.


p.s.

쌤, 저 생선이랑 헤엄치는 거 싫다고 한 거 취소예요.

다이빙은 제가 살아오면서 가졌던 편견을 여러 면에서 깨뜨려줬어요. 안 된다는 것도, 못 한다는 것도 다 틀렸어요. 꼭 코스를 마쳐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오히려 저를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요.


영원히 저랑 관계없는 분야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요. 참 인생이라는 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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