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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Nov 29. 2022

두번째 코로나에 걸렸다.

은래빛 에세이


두번째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목이 붓고 콧물이 나 감기약을 일주일동안 먹었는데도 호전이 없다가, 이윽고 열이 나며 몸살이 시작되었다.


열이 오른 후에도 난 코로나일 것이라고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해준이에게 감기가 옮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해준이는 PCR검사결과 음성이었다.)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니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것과, 나 자신에게 결부 시키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경우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는데도,

일주일이나 감기약을 먹으면서도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니.. 뭔가 좀 멍청한걸까.


최근 들어 금융자격증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공부를 할때도 그러했다.

분명 공식을 외웠고 알고있는데, 막상 문제를 풀려고 하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것이었다.


답지를 보고서야 '아~ 이 공식이었어? 나 이거 알고있는데? 왜 못썼지?'


나이 마흔에 깨달은 진실. 난 똑똑하지 못한 것 같다.





또 하나의 사소한 깨달음이라면,


난 억지로 멈춰야하는 상황이 아니면 괴로워하면서도 멈출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코로나 확진을 받기 전, 나는 회사일과 금융자격증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취득하기를 권유하는 자격증이었는데, 인사면담때 부장님께서 여러번 권유를 했기 때문에

약간은 떠밀리듯 준비하게 되었다.


새로운 부서에 온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상 나는 이제 더이상 회사생활에 열정이 없었다.

입사해서 15년간은 정말 치열하게 노력했고 피를 토하며 일 했었지만,

그것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불안장애였다.


불안장애를 겪고 나서는 퇴사를 생각하다가 복직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늘고 길게 급여를 받으면서 무난하게 생활하는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런 점이 새로온 부서의 부서장 눈에 보였나보다.


아직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남았기 때문인지, 난 더 열심히 일하고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책을 단원별로 얇게 찢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지하철안에서도 보고, 점심시간에도 보았다.

감기약을 먹으면서도 휴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해준이를 인계받야아할 시간에 맞추어 퇴근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고 무리가 되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할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 힘듦과 스트레스는 원하는 것을 성취(자격증 합격)을 해야만 해소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난 시험일 하루전에 코로나로 확진되었다.




코로나 진단을 받자 난 당연하게도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갈 수 없었다.

그리고 격리기간 동안 회사도 쉬게되었다.


내가 힘들게 끌고가던 것들이 갑자기 강제적으로 중단되었다.

시끄럽던 머리와 괴롭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난 깨달았다.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프게 되었다는걸.


이 상황은 내가 불안장애를 겪게 된 과정과 유사했다.


너무 힘들게 많은 것을 이끌고 가다가 결국은 모든 것을 중단할 수 밖에 없을 만큼

크게 아팠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난 삶속에서 크고 작은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인간은 어리석고, 그 어리석음을 반복한다더니 말이다.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역량이 뛰어나다고 칭찬받는것일까?

솔직히 그걸 바라진 않는다.


그렇다면 상사가 어떤 피드백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 있어야 할텐데

난 그렇게 '개썅마이웨이'이지 못했다.


결국 난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이런 '강제적 중단'을 반복하게 될까.




나는 멘탈이 예민하고 약한 편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언행을 하면, 그것이 느껴져서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한다.


그 사람에게 "너 이런 의도로 나한테 물은거잖아" 라고 말할 순 없지만, 느껴지는 그 무언가 말이다.

약간 '기운'이나 '아우라'같은 것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좀 둔감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난 서른살 초반부터 기수련과 명상을 시작했는데, 다른 어떤 운동보다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었다.

기수련을 하고나면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뇌가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기수련을 하면서 알게 된 지도자가 권유하여 책을 읽은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었다.


'뇌가 바라는데로 이루어진다' 라는 것이었는데,

뇌가 무언가를 원하고 그것을 말로 뱉게 되면, 방법이나 과정은 알수 없지만 그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몇일전 난 계속 '좀 쉬고싶다.. 집에 있고싶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간 쉬게 되었다.


방법이나 과정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쉬게 되었으니 책에 나온데로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질병'이라는 형태로 나를 쉬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것으로 결과를 이루지 않고,

내가 스스로 원하는 과정을 통해

그 결과를 맞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남의 피드백에 이끌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계속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내게 내려진 숙제일지도 모른다.




< 두 번째 코로나에 걸렸다. 끝 >




이미지 출처 -

김수현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https://m.blog.naver.com/m9600/22176599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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