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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r 05. 2018

런던 정착기

와이파이 없는 삶은 우유 없이 고구마 먹는 것 같아요

런던에 도착한 지 이제 한 달 반.


런던은 정치·경제·문화 그리고 교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격 급한) 내가 한 달 남짓 런던에서 겪은 생활은 우유 없이 고구마 먹는 것과 같이 가슴 치게 답답한 일들 투성이었다. (물론 여행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겪은 이야기라는 점을 알아주시길)


일단 가장 어려웠던 점은 와이파이 없는 삶. 이유는 즉슨, 


1. 와이파이 설치를 위해서는 은행계좌가 있어야 하고

2.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 명의로 살고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2. 집을 렌트하기 위해서는 직장과 보증금 및 계약금을 보낼 수 있는 은행계좌가 있어야 하기 때문



뿐만 아니라 렌트비가 어마 무시한 런던에서 집을 렌트하기 위해서는 'Contract' 또는 'part time' 이 아닌 permanent full time으로 직장에서 "이 사람은 당신 집세를 떼먹지 않을 겝니다" 하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집주인의 '허가'를 받고 집을 구할 수 있는 구조라서 나 같은 일반인 나부랭이가 영국 도착과 동시에 집을 구하기란 정말 너무 어려웠고 = 계좌를 오픈할 수 없었고 = 와이파이를 설치할 수 없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집을 구했고 은행 계좌 오픈을 위해서는 미팅 날짜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 계좌 오픈하고 싶은데요"

"Ok, we can give you an appointment in a week"

"... what..?"


은행 계좌 신청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백만 개(약간 오버)였다.

답답함에 가슴을 치던 나를 안타까워하던 영국인 친구가 "앱으로 바로 신청할 수 있는 금융권 있는데 신청해봐" 라며 소개받은 Monzo라는 희망의 빛을 알게 되었고 바로 신청을 했다.


신청절차는 영국 다른 금융권에 비해 매우 간단했는데 

1. 여권사진 찍어서 업로드하고 

2. 몬조 어카운트를 만들고 쉬퍼요 라고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끝.

2분 만에 신청 완료.

3일 후 카드가 도착했다. 



사랑해요 Monzo



그렇게 카드를 우편함에서 꺼냄과 동시에 와이파이를 신청하기 위해 달려갔고 직원에게 가장 빨리 최대한 빨리 와이파이를 설치할 수 있는 날짜를 물었더니,


"oh, the fastest day will be..... after 2 weeks"



빌어먹을



그렇게 나는 또다시 2주간 와이파이를 찾아다니며 불필요한 카페인을 과다 섭취하고 매일매일 데이터 사용량을 체크해가며 눈물짓고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은 쳐다도 보지 않았으며 샤워할 때나 잠을 잘 때는 비행기 모드를 사용했다.


엄마가 매일 같이 강아지들 영상이랑 사진을 보내줘서 

"엄마 나 와이파이 없어.. 동영상 못 보니까 나중에 보내줘.." 하면, 

"그게 무슨 말이니? 인터넷이 없어?? 왜 없어??" 하면서 와이파이 없음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일을 내가 겪고 있구나 실감하곤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데이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고맙다 데이터야) 데이터를 안 쓰니 할게 없어진 나는 E-book으로 다운로드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벌써 12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구매하고는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다운로드하기 위해서 매일 밤을 참고 기다렸다)


이제 와이파이를 설치한 지 3일.

쏟아지는 정보들과 뉴스, 영상들을 보며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나를 발견했는데 사실 그 단절되었던 시간들이 아주 가끔은 필요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와이파이 없는 삶은 나에게 우유 없이 고구마 먹는 것과 같은 퍽퍽한 답답함을 주었으나 고구마의 달달한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줬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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