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딸기 May 23. 2023

견우와 직녀, 이젠 사라질 전설인가?

202x년 x월 x일

202x년 x월 x일


이것이 숙련된 조교의 태그다.





무면허 드라이브 해줄뻔



견우와 직녀, 이젠 사라질 전설인가?



“어느 지역이니?”, “오빠랑 드라이브 갈래?”, “스물다섯 방배동 로스쿨남입니다.” 등 그날 새벽은 예비군 3년차 아저씨를 향해 무수히 많은 구애신청이 쏟아지던 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잠 자고 있을 시간에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분침을 10분전으로 돌려보자.



나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눈을 떴다. 다시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아 핸드폰을 켰다. 친구들을 깨우는 것 보다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과 대화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 카카오톡 오픈카톡방을 만들기로 했다.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방을 만들기만 해서는 사람이 들어오질 않는다. 뭇 사람들을 설레게 할 단어들 -여사친, 남사친, 대딩, 직딩, 친구, 대화, 애인, 방장여, 드라이브, 술- 등 호기심이 생기는 단어들을 잔뜩 태그에 넣고 방을 만들었다. 3초도 지나지 않아서 1명, 2명, 4명, 8명, 16명… 세포가 분열하듯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왔고 그들은 -방배동 사는 25살 로스쿨생 따위와 같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입추가 지나 쌀쌀해진 새벽을 한여름의 낮으로 만드는 청년들의 열기를 식혀야 할 필요성을 느낀 나는, 그들이 내가 사는 지역을 물었을 때 “저 강원도 고성에 살아요.”라고 답했다. 내 한마디는 십수명이나 되는 사나이들의 정열을 얼게 만들었다. 심지어 한 청년은 “야, 강원도 고성이면 차로 230km인데 차라리 제주도를 가고 만다.” 시원하게 일갈한 뒤 방을 나갔다. 오호통재라...! 고성에 사는 청춘은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구나.



견우와 직녀도 1년에 한 번은 만났는데, ‘고성’ 단 한 단어에 포기하는 걸 보면 거주 지역에 따른 허들이 너무 높다. 5170만 인구 중에 156만이 강원도에 살고 2200만이 수도권에 사는 것만 봐도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로 지역을 밝히기 전까지, 카톡 오픈 프로필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정보만을 토대로 필자가 ‘20대 여성’일 가능성에 득달같이 달려든 청춘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그날 있었던 새벽의 카톡은 나로 하여금 현대 한국사회가 내포한 여러 문제들 중 서울공화국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집중개발의 단면을 발견하게 했다.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시설들을 전부 서울에 응축시키다보니 지방의 인구는 계속 서울로 유출되기만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 지방에 남은 청년들은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사람이 없고,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서울 및 수도권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대한민국의 발전 방향과 결과가 당대에 이르러선 인간관계의 양극화를 낳은 것이다. 대한민국 흥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던 서울이 이제는 지방에 드리운 먹구름이 되었다. 서울시의 행정면적을 독도까지 확장시키는 구국의 결단을 할 게 아니라면, 오늘날까지 이어졌던 서울공화국의 구조를 깨야 한다.



“230km면 차라리 제주도를 간다.”



물리적 한계로 인해 군필 여자방장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제주도에 담았던 한 청년의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판다. 내 카톡방에 들어온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마친다.





“견우야~ 들리진 않겠지만… 미안해! 속이려던 것은 아니었어.”
매거진의 이전글 58년 개띠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