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엔 58년 개띠 오명규 사장이 있는가 하면, 58년 개띠 실직자도 있다. 음, 구직자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낫겠다. 여하튼 58년 개띠 구직자인 아버지는 담담하게 실직 소식을 아내와 아들에게 전했다. 발파 현장의 화약주임이 그의 직책이다. 해고를 당하기 전, 그는 사장의 압박에 대해 아내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현장을 하루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자신은 무작정 빨리 끝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사장이 싫어한다고. 그 대화를 아내와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해고 통보를 받고 집에 왔다.
화약주임이 어떤 직업인지 간략하게 설명하는 편이 이해를 돕기 쉬울 것이다. 화약주임은 철도와 도로를 만드는 터널 현장 또는 암석을 캐는 채석장 현장이 있으면 고용되는 사람이다. 발파 현장에 쓰이는 화약을 관리한다. 현장은 화약주임(화약 관리 노동자), 장약수(다이너마이트 제조 노동자), 천공기사(중장비로 벽에 구멍을 뚫는 노동자), 트럭기사(암석 같은 발파 잔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노동자) 등이 모여 공사는 진행된다. 아주 간략히 줄이면, 화약주임은 공사 현장을 관할하는 지역 경찰서에 일일 사용 화약 수량을 신고한 후 현장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하루 공사가 끝나면 남은 화약들을 다시 경찰서에 신고한 뒤 보관 창고로 가져간다. 또한 발파하는 동안 발생하는 진동수를 측정하며 허용치를 초과했을 시, 발파를 멈춰야 하는 책임을 맡는다.
그의 현장은 서울 모처 지하 30m 아래였다. 새 지하 터널을 만드는 공사 현장이었고, 이듬해 초까지 마무리하기로 계약 되어있던 곳이다. 그러나 사장은 약속된 날짜 보다 빨리 공사가 마무리되길 바랐다. 58년 개띠 아버지는 사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사장의 바람을 거부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군복을 벗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고지식하다. 몇 해 전, 화약주임 자리를 처음 맡으며 현장에 발을 들일 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이 있다.
"공사를 하는 시점이든, 완공 이후의 시점이든 사고가 난다면 감옥에 갈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감옥에 간다한들 놀라지 마라."
난 그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얼마나 책임감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에, 감옥에서 재회했어도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 피고용인으로써 사장의 입맛에 맞춰 부화뇌동적 행동을 해 사고가 났어도, 그는 두말하지 않고 감옥에 갈 사람이었으니까. 다행히 아직까지 수감된 그를 면회하러 간 적은 없다.
그동안 여러 현장을 다닌 58년 개띠 아버지였지만, 이번 현장은 사뭇 달랐다. 사장이 노동자들을 채찍질하는 정도가 심한 현장이었다. 공사 기간만큼 하루에 나아가야 할 적정 거리는 정해져 있다. 그러나 마감일에 가깝게 종료되거나 마감일을 딱 지키면 자신의 주머니에 남는 게 없다는 명분을 들며 사장은 일일 공사 허용거리를 초과하도록, 진동수를 무시해가며 공사를 하도록 압박했다. 사장의 자기 잇속만 챙기는 미명 아래 노동자는 법을 어기며 일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58년 개띠 아버지처럼 해고 통보를 받는 것 뿐이다. 어디 이 현장 뿐이랴. 사고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부지기수 일 것이다. 대체자가 있다는 것은 현직 노동자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해고와 연결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문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 문화는 사회를 좀먹으며 부조리에 저항하는 사람들마저 잠식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 된다면 용기는 비웃음을 사고, 소신은 배고픔을 가져올 것이다.
아버지의 고지식한 성격을 두고,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는 종종 얘기를 나눈다. 예컨데, "아빠가 제복을 20년 입고 있던 덕에 우리가 그동안 아주 힘들지 않을 수 있던 거야. 그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전히 아빤 피터팬이야. 58년 개띠 피터팬. 엄마가 사회성이 뛰어난 노동자인 덕에 아빠가 소신껏 행동하며 살아왔어도 별탈 없이 삼인 가족체제가 유지됐던 거지.", "가끔 보면 아빠를 좋아하는 군 동기, 선배들이 있다는 점에 놀라. 곰 같은 사내를 아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내가 종종 이렇게 아빠를 놀리기도 하지만 아들의 장난에 맞춰주는 아버지에게 감사함이 크다. 그리고 아빠를 바가지 긁지 않는, 되려 아빠의 선택을 존중하고 다독이는 엄마에게도 감사하다.
58년 개띠 오명규 사장은 재수없게 원빈과 엮여서 아웃됐다. 그렇다면 58년 개띠 아버지는 무엇과 재수없게 엮여서 해고당한 것일까? 이문만 밝히는 사장을 만났기 때문인가, 아니면 원칙을 지키는 선택을 했기 때문인가. 둘 다 정답이거나 둘 다 오답이라면, 난 내 인생의 지침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현재 아버지가 실직해서 가계가 위축됐어도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소신과 책임이 그가 삶을 마주하는 태도란 걸 알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삶엔 여러 방식이 있고, 자녀는 부모를 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배울 것이다. 훗날 내 아이가 나의 선택을 두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라며, 새벽 3시 41분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