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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서여사 Jan 10. 2022

나는 투잡 하는 여자 어떤 일을 했을까?


투잡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아이를 예뻐하기에 돌보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우리 아파트 카페 게시판에 붙은 하원 도우미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하원 도우미 구하신다기에 연락드렸어요.”


“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여기 아파트에 사시는 거죠?”


“네, 저는 50대이고요. 이 아파트에 살아요.”


“그럼 5시쯤 면접 오시겠어요?”


“네, 문자로 주소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나는 4살 남아와 9살 여아 초등학생의 하교 후 5시~7시까지 두 시간의 하원 돌보미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우리 아파트 바로 옆 전원주택에 살았다. 어린이집에서 작은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면 큰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두 아이와 놀아주며 저녁 먹이는 일이 나의 임무다.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면 교실에서 ‘이모님’하고 뛰어나온다. 두 팔 벌려 안아주면 내 품으로 쏙 들어와 배시시 웃는다.


아이는 나의 손을 이끌고 신발을 신으며 놀이터로 가자고 조른다. 놀이터로 가는 길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편의점이 있다. 항상 젤리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한다. 가끔 하나씩 사주는데 너무 좋아한다. 보고만 있어도 이쁜 아이와 놀이터에서 엄마가 오실 때까지 논다. 미끄럼틀을 타며 좋아서 깔깔거리고, 그네를 타면서 소리를 지른다.


아이의 누나는 초등학생이라 내가 가끔 봐주는 정도다. 엄마가 아주 늦게 오신다거나 학원이 일찍 끝났을 경우 놀이터로 온다. 초등학생이라 손이 많이 가지 않기에 4살의 작은 아이만 신경 써서 보면 된다. 놀이터에 온 날은 우리 집에서 아이 밥을 먹인다.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라 주로 볶음밥을 해주었다.


스팸을 넣기도 하고 새우나 돼지불고기를 넣기도 한다. 멸치 주먹밥도 참 잘 먹는다. 우리 가족은 아이들을 좋아하기에 아이를 데리고 많이 놀아주었고, 아이도 예뻐하는 걸 아는지 잘 따랐다. 우리 가족은 아이에게 이모, 삼촌, 아저씨로 불리며 안 보는 날이면 생각날 정도로 아이와 잘 지냈다.


아이는 공사 차량이나 포클레인을 참 좋아한다. 지나가는 레미콘을 보면 정확히 그 차량의 명칭을 맞추곤 한다. 신기할 정도로 공사 차량에 대해서는 박사다.


“우리 00이 어떻게 차 이름을 다 알지?”


“이모님, 나 공사 차 좋아해. 포클레인이랑 지게차랑 트럭이랑 좋아해.”


“그래? 이름도 다 알고 멋지다.” 하고 엄지 척을 해주면 좋아서 방방 뛴다.


아이는 버스를 너무 좋아해서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아올 때도 있고 아예 마을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올 때도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오면 2시간이 다 지나간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신기한지 재잘거린다. 어떤 분은 예쁘다고 하시지만 어떤 분은 시끄럽다고 화를 내실 때도 있다. 버스를 타는 날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면 힘들어도 자꾸만 버스투어를 하게 된다.


하루는 아이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버스 장난감을 가져와 놀이터에서 노는 걸 보더니, 나에게 버스를 사달라고 졸랐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장난감 가게가 있다. 손잡고 가 보았다.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 여기저기 구경 다니며 신이 났다. 며칠 후가 어린이날이라 선물을 하나 사주려던 참에 아이에게 “우리 00이 뭐 사줄까?” 하니 얼른 뛰어가더니 커다란 버스 장난감을 가져왔다. 아이 집에 비슷한 버스가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서 다른 걸 골라보라고 하니 아이는 역시 공사 차량인 트럭을 가져왔다. 잔뜩 신이 나서 집에 오는 아이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투잡으로 돌보미를 하고 있지만, 아이가 순하고 잘 따르기에 힘듦이 덜 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맞벌이를 했기에 이웃분에게 두 아이를 맡겼었다. 좋은 분을 만나 아이들이 잘 지냈기에 나 역시 아이를 돌볼 기회가 온다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아이는 엄마와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에게 “이모님! 내일 만나.” 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들며 인사를 한다.


돌보미로 근무하며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안전사고이다. 체력이 좋은 아이는 온종일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싶어 하는 데 안전이 최고라 바깥 놀이할 때면 걱정이 된다. 그리고 아이가 아플 때가 가장 걱정이 된다. 아이가 졸리거나 칭얼거리거나 엄마가 오실 때 손을 입에 넣는 습관이 있는데, 나와 신나게 놀다가도 엄마가 오시면 아직 4살 아이라 손가락이 입으로 들어간다. 이럴 때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 번은 환절기에 아이가 심하게 아팠다. 열이 계속 안 내려간다는 아이 엄마의 문자에 나도 오늘 더 신경을 쓰겠다고 답장을 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4시에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교실에 서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몸이 아프니 계속 칭얼거리고 있는데 많은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선생님은 아픈 아이만 안고 있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 아이는 더 서럽게 울며 나에게 매달렸다. 아이를 안고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식혀 놓은 옥수수를 주니 열이 내렸는지 잘 먹는다. 그날따라 엄마는 야근이라고 하셔서 입맛 없어하는 아이에게 밥을 조금 먹이고 약을 먹였더니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천천히 바라보니 아들의 4살 때가 생각났다. 미술학원이 아닌 미술 개인 지도를 하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내가 수업하러 가기 전 아들이 장염으로 배가 많이 아팠다. 양해를 구하고자 학부모님께 전화했더니 워낙 오래 가르친 학부모 댁이라 아이를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하셔서 업고 데리고 갔다. 아이를 옆에 눕혀놓고 수업을 하는데 배가 아프니 칭얼거렸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장염이다 보니 아들이 바지에다 실수하고 말았다.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학부모님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깨끗하게 치웠다. 다행히 여벌 옷을 가지고 왔고, 아들의 바지는 화장실에서 대충 빨아 집으로 가져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냄새를 빼느라 오래도록 창문을 열어 놓으셨다고 한다. 아들은 결국 그날 장염으로 3일을 입원해야 했다.


돌보미로 아이를 돌보다 보니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잠시 생각났고, 잠든 아이를 보고 있으니 또 울컥했다. 한참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인데 아플 때도 엄마가 바쁘셔서 돌봐줄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 부모는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지만, 이 아이의 엄마는 바쁜 보건소에서 근무하셨다. 그즈음 코로나가 온 나라를 덮쳤기에 연차를 내거나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프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아이는 평상시의 발랄한 아이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프고 난 후 많이 크는 것 같다. 어휘력이 좋아지고 본인의 생각도 나에게 전달한다.


“이모님! 나 오늘 씽씽카 탈 거야 그런데 날씨가 좋아야 탈 수 있지?”


“맞아, 날씨 좋은 게 뭔지 알아?”


“어, 해님이 나오면 날씨가 좋은 거야.”


“우와 우리 00이 다 컸네.”


“구름 속에 해님이 들어가면 날씨가 안 좋은 거야.”


이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일주일 만에 말솜씨가 좋아지고 의사 표현도 정확하게 하다니, 아이가 아프고 나면 훌쩍 자란다는 말이 괜히 생긴 건 아닌 것 같다. 훌쩍 자란 아이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놀이터를 휩쓸며 다녔고, 7살 형들이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 통에 넣어주자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아이와 말이 통하니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할 때면 나는 매일 술래가 되어야 했다. 숨은 아이가 보임에도 못 본 척 이름을 불러가며 찾아다니면 답답한지 나 여기 있다고 알려준다. 5~6살 아이들과 같이 놀 때면 아이들도 서로 나이를 물어본다.


“나는 5살인데 너는 몇 살이야?”


“나는 4살.”


“에게 너는 4살이야? 나는 6살이야.”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난다. 꼬맹이들도 서로 나이가 궁금한가 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신축이라 조경과 놀이터가 잘되어 있다. 지상에 오토바이도 못 들어오기에 아이들이 놀기엔 천국이었다. 아이는 놀이터가 재미있는지 엄마가 오셔도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날은 엄마의 퇴근 후에도 한참 놀다 가기도 하고 가끔은 깜깜해지도록 놀기도 한다. 그 모습조차 너무도 예쁘기만 한 건 할머니의 마음이었나 보다. 어떤 날은 정이 들어 주말에도 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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