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자유

안톤 체호프의 <상자 속의 사나이>를 읽고

by 강수지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처럼 삶의 과정은 작은 부분 하나도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그 선택에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책임과 그에 따른 결과가 뒤따르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는 삶을 살아갈 과정에 대한 자유는 주어졌지만 그 삶을 시작하고 마치는 데에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베리코프의 삶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자유로부터 가두는 자유를 선택했다.

“한마디로 그 사람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어막, 이를테면 상자를 만들려는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베리코프의 삶에 대해 사람들은 ‘특유의 자잘한 걱정과 의심, 상상’이 그가 스스로를 상자 속에 가두는 삶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러한 베리코프의 삶과 그의 태도를 통해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어쩌면 괴짜같았던 그의 삶을 ‘불안함의 두려움’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허가와 허용에서 느낀 미심쩍고 불분명한 요소’들은 불안함이 얼마나 두려운 감정이었나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는 어떤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허용하는 것이며, 이는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이러한 지점이 베리코프에게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들을 마주해야한다는 두려움을 막아주는, 베리코프에게 행동과 삶의 잣대가 되었던 수많은 통제들이 그에게는 안전한 울타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베리코프는 불안함으로 가득찬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일종의 노력들을 기울였다. 교사들의 집을 방문하여 가만히 말없이 앉아있던 습관들은 어쩌면 그에게 낯설고 불안한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위한 나름의 공부였을 것이다. 동료들의 생활공간을 방문하여 말없이 가만히 살펴보며 그들의 행동특성과 취향을 파악함으로써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하여 베리코프가 마주할 순간들에 대한 대비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가 자신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베리코프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늘 상자 속에서 안전을 찾으려 했지만, 그 상자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감옥이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믿어왔던 ‘질서’와 ‘통제’의 세계는 한순간의 혼란과 예측 불가능한 사건 앞에서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다. 그가 두려워하던 자유, 불확실성, 인간적인 감정의 파도는 결국 그가 만든 상자 밖에서 밀려 들어왔고, 그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채 죽음이라는 완전한 닫힘 속으로 숨어들었다. 체홉은 베리코프의 죽음을 단순한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은 그에게 유일한 해방이자 진정한 평온의 순간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세상과 자신을 끝없이 의심하고 통제하려 했지만, 죽음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나는 이 역설적 결말을 통해, 자유는 억압의 부재가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내는 용기임을 느꼈다. 베리코프가 끝내 만나지 못한 자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평생을 걸쳐 배워야 하는 삶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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