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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보다 Dec 06. 2023

내 안에 천만 원 있다

상상과 현실사이

드디어 입금을 확인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돈이 내 통장에 있다. 

무려 1000만 원. 이제 이 돈으로 무얼 해볼까? 


우선 남편에게 물어봤다.

"오빠, 마음대로 써도 되는 돈이 생기면 뭐 하고 싶어? 자기를 위해서."

"액수가 얼마인데?"

"천만 원. 어때?"

"음... 시간 여유가 없어서 여행을 가기도 힘들고..."

"여행이야 짧게라도 다녀오면 되지. 우리 신혼여행 갔던 제주도 어때? 롯데호텔 좋았잖아?"



2009년 3월 어느 날 우리는 결혼식을 치렀다. 원래 신혼여행은 괌이나 푸켓 중에서 선택하려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나의 불안증이 왈칵했다. 이유는 왠지 해외로 나가면 병(사스 같은 거)에 걸릴 것 같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당시의 나는 해외여행을 격렬히 거부했다. 결국 우리는 제주도로 향하게 되었다. 협재해수욕장의 에메랄드빛 바다에 발 담그며 꼭 다시 오자고 한 약속, 성산일출봉의 노란 유채꽃에 몽글몽글해졌던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 제주도 갈까?

"자기는 좋았구나. 난 그 정도는 아닌데. "

역시 이래야 내 남편이지.




며칠 전 남편과 차 타고 가다가 이런 대화를 했다. 신호등 앞에 한 쌍의 중년 남녀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오빠, 저 사람들 부부네."

"응, 그런 것 같네."

"오빠는 왜 그렇게 생각했어?"

"저 사람들 같은 메이커 운동복을 입고 있잖아. 색은 다르지만 묘하게 커플룩 같아."

"엥? 그게 이유라고? 나는 둘 표정을 봤어. 표정이 어두운데 거리는 가깝잖아. 못마땅한 마음과 달리 가까운 거리. 그래서 부부 같았어."

우리는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생각이 다르다. 어떻게 연애하고 결혼까지 했나 싶을 정도로.




다시 1000만 원 얘기로 돌아와서.

"그럼 오빤 뭐 하고 싶은데?"

"난 평소 사고 싶던 가전제품 다 사고 싶어."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요즘 김밥 만드는 기계도 있다는데 그런 거"

"뭐야, 설거지는 내가 하는데. 로봇이 청소할 만큼 집이 넓은 것도 아니고. 김밥기계는 우리한테 왜 필요해?"

"재밌잖아. 나름 실용적일 것 같은데."



음... 역시 이해하기 힘든 사랑스러운 남자다. 성격, 취향, 식성, 외모 등 공통점이 거의 없는 우리. 14년의 무난한 결혼생활은 우리 서로 칭찬해 줘야 마땅하다. 이해 못 하는 서로의 모습까지도 사랑하느라 애썼다고. 


그런데 1000만 원이 어떻게 결혼생활에 대한 소회가 되었지? 남편과 얘기하다 보면 꼭 이런다.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항상 통일된 결론으로 마무리된 적은 없다. 그냥 여기까지, 하고 멈출 뿐.

그럼 1000만 원은 사이좋게 반씩 나누자. 그리고 그걸로 뭘 할지는 간섭하지 말기. 

어느 날 나 혼자 비행기 탈지도 몰라. 병 걸릴까 봐 무서워서 외국은 못 가니까 안심하고.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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