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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보다 Oct 06. 2024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꿀 가능성

쓰기의 말들 001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꿀 가능성을 대변한다.

-데이비드 실즈-




내가 쓴 몇 안 되는 글 중에서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글이 있다. 지난 4월 딸아이를 바라보며 썼던 글이다. 딸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첫 시험을 앞둔 딸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로 가득한 글이었다. 매년 봄마다 비염으로 고생하는 딸을 향해서 '이렇게 낳아줘서 미안해'라고,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이긴 거라고, 너의 아픔과 불안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항상 함께 하겠다고, 썼었다.


'네가 정말 그렇게 좋은 엄마야?'

나는 자꾸 이렇게 되묻고 있었다.


매년 봄마다 비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몸에 안 좋은 간식거리를 달고 사는 딸에게 짜증 냈고, 결과를 들이대며 최선을 다한 거 맞냐며 딸아이의 최선을 의심했으며, 나의 아픔과 불안이 너무 커서 딸아이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나의 실상은 나의 글과 매우 달랐다.

'가증스러워'

나는 내 글에 대해 이렇게 판단 내린다. 100%가 아니면 '참'으로 인정하지 않는 수학문제처럼 정확하게. 이런 건 나에게 숨 쉬듯 자연스럽고 밥 먹듯 쉬운 일이다.


나는 칭찬에 인색하고, 긍정적이고 다정한 말에 오글거리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랐다.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야. 너의 발전을 방해하고 싶거나, 너에게 관심이 없거나."

좋은 말은 입에는 달콤하지만 몸에는 해로운 불량식품쯤으로 여기며 자란 것 같다. 칭찬보다 비교와 평가에, 격려보다 질책에 익숙했다. 이렇게 길러진 아이는 자신의 마음 언어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긴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따스하게 녹여줄 봄볕 같은 말, 맹렬한 더위를 견딘 후 열매를 익게 하는 강렬한 가을빛 같은 말을 원하는 마음을. 그 마음은 정답이 아닌 것 같아서 캄캄한 지하 저 깊은 곳에 마음을 가두고 외면하며 살았다.


어떤 음식이 갑자기 먹고 싶어지면 자기 몸에 필요해서 본능적으로 그것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것처럼 나는 어느 새벽 문득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직후였다. 나는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듯 이것저것 읽었다. 어떤 책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책은 나와 내 마음의 매개가 되어주었다. 끊임없이 바깥을 향하던 시선이 점차 나를, 나의 내면을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그랬던 거구나'라며 내 마음을 발견해 주고 목소리를 들어주었다.


'글을 쓰고 싶어'

어느 날 내 마음이 말했다.

'넌 일기도 안 쓰던 사람이잖아. 글 쓰는 방법도 모르면서. 그런 어설픈 글로 뭐라도 될 줄 아니?'

이렇게 나를 판단하는 말이 나를 감쌌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나쁜 말. 40년 넘게 주인행세를 한 나쁜 말들은 나에게 기본값이다.


'그래도 그냥 쓰고 싶어'

나의 진짜 말이 나에게는 좋은 말이다.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할 말.

나의 진짜 말은 내 마음 깊고 캄캄한 곳에 가둬 두었기에 횃불을 들고 찾아내려 가야 한다. 문을 열고 손을 잡아 이끌어줘야 한다. 나에게는 노력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내 글은 장래희망 같은 것이다. 장래희망에 팩트체크는 무의미하다. 그 마음이 진실됨을 발견해 주고, 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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