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영화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한시간 반 짜리 코믹 스릴러 영화 씨 하우 데이 런 See How They Run의 리뷰.
<<씨 하우 데이 런>>은 2022년 제작된 코미디 미스터리 필름으로 스탑포드 경위 역의 샘 락웰 Sam Rockwell과 스토커 순경 역을 맡은 살로사 우나 로난 Saoirse Una Ronane이 주인공을 맡았다.
제목만 봐서는 딱히 끌리지 않지만 탐정물을 좋아하는데다가 배경이 1950년대 런던이라고 해서 봤는데 기대 이상 재밌어서 리뷰를 남긴다.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쥐덫>>이라는 연극이 상연되는 무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영화인데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개인사라던지 실제로 이 연극이 1953년부터 오늘날까지 장기공연을 계속해오고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영화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좋아하고 그녀의 일대기에 대해서 좀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1953년 런던의 한 극장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라는 연극이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는데, 연극의 성공에 힘입어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를 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미국의 유명 감독이 이 극장을 방문했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생기면서 스탑포드 경위와 신참 스토커 순경이 수사를 진행한다. 한창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이번에는 극작가까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전쟁으로 인한 부상과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하게 된 스탑포드 경위는 매사가 시들하고 진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베테랑 형사다. 이에 반해 전후에 생존을 위해 경찰이 된 순경 스토커는 그의 상사가 내뱉는 말 한마디한마디 다 수첩에 적을 정도로 열심이다. 이러한 상반된 두 형사가 처음엔 삐그덕 거리며 좌충우돌하다가 나중엔 협력해서 수사를 해나간다는 이야기다.
워낙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소시적 셜록 홈즈 시리즈와 괴도 루팡 책을 섭렵했고, 좀 커서는 영어공부도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을 읽으면서 할 정도라서 나름 추리소설엔 조예가 깊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쥐덫>>이라는 소설을 읽었나 기억이 잘 안났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강의 죽음>> 등은 확실히 기억나고, 엘큘 포와로라던지 제인 마플 같은 유명 탐정들은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쥐덫"의 줄거리를 검색해보니 아무래도 줄거리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다소 유사한듯 한데, 아마 그래서 잊고 있었나보다.
대중적으로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아가사 크리스티지만, 소설 속에 복선이라든지 힌트를 주지 않는 그녀의 소설에 찐 추리소설 팬들은 혹독한 비판을 했다고 한다. 독자들이 추리할 수 있는 힌트를 남기지 않는 건 반칙이라고 말이다. 난 찐 추리소설 팬은 아니었는지 예상을 뒤엎는 그녀의 소설이 너무너무 흥미로웠고 내가 발견할 수 있는 한 그녀 원작 추리 소설은 다 읽어왔다.
나름 팬이라 아가사 크리스티에 대한 사전 지식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다. 극 중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남편으로 고고학자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실제로 그녀가 재혼한 상대가 고고학자로 그녀가 베스트셀러로 번 막대한 돈이 고고학 발굴에 쓰이기도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남편을 따라 발굴 작업에 동행하기도 했다고 알려져있는데, 그녀의 소설 속에 고대 유적 발굴지가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그런데 아무래도 <<쥐덫>>은 안읽었던지 건성으로 읽어서인지, 이번 영화를 통해 이 작품이 당시 실제 영국에서 일어났던 아동 학대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1953년 이후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상연되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제목인 "See How They Run"은 직역하면 '그들이 어떻게 도망가는지 보세요' 정도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왜 그런 제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찾아봤다. 그랬더니,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 Mousetrap"이라는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동요 '세 마리의 눈먼 쥐 Three Blind Mice"에서 따온 구절이었다.
세 마리의 눈 먼 쥐, 세 마리의 눈 먼 쥐
그것들이 어떻게 달리나 봐보세요. 그것들이 어떻게 달리나 봐보세요.
그것들은 농부의 아내를 쫓아가죠.
자기들의 꼬리를 고기자르는 칼로 싹둑 잘라버린 농부의 아내를
평생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나요
세 마리의 눈 먼 쥐들같은?
Three blind mice. Three blind mice.
See how they run. See how they run.
They all ran after the farmer's wife,
Who cut off their tails with a carving knife,
Did you ever see such a sight in your life,
As three blind mice?
대부분의 외국 동요나 자장가들은 생각보다 말도 안되고 잔혹한 내용인 경우가 많은데, 이 노래도 그렇다. 이 동요가 실제 <<쥐덫>>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나보다.
재미있는 건 영화에서도 아가사 크리스티가 등장한다. 초청받은 파티에는 불참한다거나 자신의 저택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은밀한 모습은 실제 그녀의 태도에서 기인한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보면 충격적일 장면이 있긴하다.)
한 시간 반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아가사 크리스티의 유명한 작품과 그 작품이 연극화 된 <<쥐덫>>을 둘러싼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나간 영화라서 무척 재미있게 봤다. 바쁜 일정 좀 지나면 시간 내서 <<쥐덫>>을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을 아끼려 하지만, 아무래도 그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라 스포일러 한 방울 보태자면.... (영화를 보시려면 이 이후 부분은 나중에 보세요)
공식 트레일러 링크는 아래를 클릭해보시길.
https://youtu.be/Q00qh7Ab6Mk?si=KRLulpBtn2Kvm1Am
제일 호감도 떨어지는 인물이 가장 먼저 죽는 추리물답게 제일 먼저 목숨을 잃는 영화 감독의 플롯이 결국 영화에서 엇비슷하게 재현된다는 사실.
그리고, 항상 열의가 앞서서 성급하게 결론에 도달하는 스토커 순경의 추리에 자칫 따라들어가다 갑자기 머쓱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이 그러하듯 이 영화에서도 범인은 가장 범인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
아가사 크리스티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차를 따르면서도 살인의 방법을 궁리한다고 한 적이 있다. 그녀가 마지막에 차가 담긴 찻잔들을 가득 가져와서 손님들에게 내어놓는 장면은 이 인터뷰가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쥐덫'이라는 제목의 영화에 '쥐약'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다. 극 중의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지만 영화 내용대로라면 아가사 크리스티도 살인을 한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