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D. All But Dissertation.
박사과정의 모든 것을 마쳤지만 논문만 남겨둔 상태를 뜻하는 이 말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미술사를 전공하며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좌절이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현대미술 이론에 매몰되어 있던 대학원 시절, 나는 종종 회의감에 빠졌다. 복잡한 이론들이 과연 실제 작품 감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적 담론들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의문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사 강의를 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학술적 용어들을 쉬운 말로 풀어내고, 복잡한 이론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예술의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강생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 "아, 이제 이 작품이 보여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들이 내게는 그 어떤 학술적 성취보다 값진 것이었다.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예술을 어렵고 거리감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하지만 조금만 다가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준다면, 누구나 예술의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제 내 목표는 분명해졌다. 클래스101에서의 온라인 강의, 유튜브 채널 운영, 그리고 준비 중인 출판 작업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있다. 바로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나는 재미있고 즐거우면서도 그 속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어려운 미술사를 쉽게, 하지만 얕지 않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작가의 길'이다.
수년간 미술사를 공부하며 발견한 이 아름다운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르네상스 회화에 숨겨진 상징들의 비밀, 인상주의 화가들이 왜 실외로 나가 그림을 그렸는지, 추상화가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알면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볼 때, 단순히 "예쁘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창가의 빛이 어떻게 사람의 내면까지 비추는지에 감탄하게 된다. '일상의 숭고함'을 깨닫게 나면 나의 비루한 일상도 가치있게 느껴진다. 이런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림 앞에서 "모르겠다"라고 고개를 젓던 사람이 "아름답다"라고 탄성을 지르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미술관이 어려운 곳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터 같은 공간이 되도록 돕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한 작품으로 인해 내면의 자신과 만나고 그 경험으로 인해 삶을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 작가로서의 꿈이자 사명이다.
교수가 되지 못했다고 좌절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막연히 세웠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책을 통해서는 시공간을 초월해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지난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쌓여만 간다. 내년엔 미뤄왔던 출판을 할 것이고 클래스 101 수업도 개강할 것이다. 작지만 알찬 프로젝트도 몇 가지 진행하려고 맘먹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미술사의 매력을 세상에 알리는 작가로 살아갈 것이다. 예술을 친근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전하는 길, 그것이 내가 꿈꾸는 작가의 길이다.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