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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유산 전 @ 버버리 아트스페이스

Emotional Legacies

by 민윤정

감정의 유산

Emotional Legacies

Celia Hampton · Martyn Cross · Tomo Campbell
2025.9.3 – 9.25
Burberry Art Space


청담동 버버리 플래그십 스토어 안쪽에 마련된 버버리 아트 스페이스에서 두 번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오픈전은 영국 여성 신진 작가 3인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영국 작가 세 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원래 VIP 라운지를 개조한 공간이라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정된 면적 안에 밀도 높은 작품을 담아 인상적이다.


지난해처럼 세 명의 작가가 각각 한쪽 벽을 차지한다. 도슨트 프로그램이 운영되니 매장 특유의 낯섦이 부담스럽다면 예약 후 관람하는 편이 좋다. 특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라 작품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네이버 예약링크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232531


Tomo Campbell

세 작가 중 가장 마음이 간 작품은 토모 캠벨의 회화였다. 프라이머를 바르지 않은 로 캔버스에 즉흥적으로 그린 듯한 선과 색이 화면을 활기 있게 채운다. 특히 가운데 대형 작품 If by then(2025)은 자유로운 선의 흐름 속에 인물과 동물이 숨어 있어 오래 바라볼수록 이야기가 무한히 펼쳐진다.


맨 오른쪽 작품 <Almost Always Without Saying>의 경우, 가운데 하얗고 어린 망아지 같은 생물체 위로 청록색 선이 그어져 있는데, 내 눈에는 그게 유니콘처럼 보였다. 약해보이면서도 신비로운 힘을 가진 듯한 하얀 망아지 위로 그어진 청록색 선이 내 눈에는 유니콘처럼 보였고, 주변에 그리스 여신을 닮은 형상이 스쳐가며 신화적 분위기를 더했다. 오른쪽 작품에서는 혼자 유니콘을 발견한 듯한 기쁨도 느꼈다. 유니콘(?)의 양쪽 위쪽으로는 그리스 여신과도 같은 여인의 모습이 얼핏얼핏 보여서 더욱더 신화적 분위기가 감돌았다. 프라이머를 칠하지 않은 로우 캔버스에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그린듯한데 이러한 작법이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하다.


토모 캠벨, Almost Always Without Saying


토모 캠벨, If by then

가운데 있었던 가장 큰 작품은 <If by then>이라는 제목이다. 이 역시 '만약 그때까지~'라는 뜻이지만 작품과의 연관성은 읽어내기 힘들다.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안보인다. 하지만 자유로운 선의 흐름, 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인물과 동물의 모습들이 흥미롭다. 처음에는 콜라쥬 작품인가 했는데 도슨트 분 말로는 아니라고 하셨고, 자세히 보니 아닌게 아니라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떼었는지 경계선이 있긴 하지만 하나의 캔버스 천이었다. 왜 그런 경계선을 넣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더 풍요로운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아래의 인물은 전체 화면에서 상단의 거의 가운데 그려진 인물인데 마치 나무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내어놓은 것 같은 모양새인데 다리쪽을 보면 아래 그려진 말 위에 타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그리스 신화라면 소년 혹은 청년이 손에 든게 카두케우스라는 가정 하에 에르메스인가 싶기도 하다.


토모 캠벨, If by then 세부
토모 캠벨, If by then 세부

작품의 제목들은 Almost Always Without Saying, Meanwhile 등은 추상화의 ‘무제’처럼 작품 해석의 단서를 거의 주지 않는다.



Celia Hempton

이번 전시의 유일한 여성 작가 실리아 햄튼은 가장 거친 주제를 다룬다. Demolition 시리즈는 철거 현장을 그리되 파스텔톤 색채를 사용해 파괴와 화사함을 대조시킨다. 일부 작품에는 실제 콘크리트와 자갈 부스러기를 물감에 섞어 표면을 요철감 있게 표현했다. 특히 가장 작은 작품은 작가의 요청으로 눈높이보다 낮게 설치되어 파괴된 잔해를 내려다보는 듯한 감각을 준다.



Martyn Cross

마틴 크로스의 작품은 부드러운 파스텔톤이지만 초현실적이다. Silent Cipher에서는 소보로 소금빵 같은 형체 속에 눈과 손이 숨어 있고, 엄지손가락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Living Sapphires는 남성의 두상처럼 보이다가도 자세히 보면 옆머리가 손가락으로 변한다. 제목 속 ‘사파이어’는 화면 어디에도 없지만, 보는 이를 끝없이 추측하게 만든다.


Martyn Cross, Living Sapphires


세 작가 모두 개성이 뚜렷해서 섞어놔도 어떤 작품이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난 토모 캠벨의 작품이 좋았는데, 요즘 인기가 높은 작가라고 한다. 나중에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팔로워 수가 무려 5만6천명이었다. 요즘 작품가격이랑 인스타 팔로워 수랑 비례한다더니 맞는 말인가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더 좋은 작품도 많아서 나도 팔로우했다.


유니콘 그림 예쁘니까 다시 한번 더 감상하시고~ 위의 예약링크에서 도슨트 예약하시고 9월25일까지니까 유니콘을 닮은 그 신비로운 존재를 직접 찾아보고 싶다면 예약을 서두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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