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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주르바란의 <하나님의 어린 양>

Francisco de Zurbarán의 “Agnus Dei”

by 민윤정


Francisco de Zurbarán’s “Agnus Dei” (1635-40) Prado

뜬금없이 양 한마리다. 그리고 제목은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고 양이 드넓은 초원을 누비고 다니는 이미지가 아닌 네 다리가 묶인 채로 선반 같은 데 얹혀 있는 상황으로 봐서는 '희생양'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제목의 '하나님의 어린양'에서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직접적으로는 인류를 위해서 희생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이 될 것이다. 따라서 맥락없이 그려진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양 한마리. 다리가 끈으로 묶여있는 것으로 보아, '희생양'인 것 같은 이 양 한마리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희생을 감내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미지라 봐서 무방할 것이다.

전후 보충설명이 될 만한 주변 풍경도 없이 검은 배경과 무채색의 단 위에 놓여있는 귀여운 양 한마리는 이미 죽은건지 아님 이미 낙담해서 포기해서 그런지 다소곳하게 놓여진대로 있기에 더욱 애처럽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러한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 우리를 위해 희생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맘이 아픈데, 하물며 이것이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라면... 기독교인들이 이 그림을 보고 느꼈을 감정은 감동과 신앙심으로 가득했으리라. 그리고, 그러한 감동은 보송보송한 양털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낸 프란시스코 데 주르바란이라는 화가의 탁월한 기량으로 더욱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작가의 전혀 몰랐던 작품을 선정해서 최소한의 조사만을 해서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취지의 '내 맘대로 작품보기'를 위해 선택된 작품은 프란시스코 데 주르바란의 <하나님의 어린 양 (Agnus Dei)>. 이 작품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했을 때엔 이 작품 자체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이 작품을 그린 프란시스코 데 주르바란 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주로 종교적인 작품을 그렸고, 키아로스쿠로 화법에 능해서 '스페인의 카라바조'라 불렸던 스페인 바로크 시대의 화가이다.

Francisco de Zurbarán (1598–1664) The Martyrdom of St. Serapion (1628)

그의 대표작으로는 주로 성인의 모습이나 종교화의 장르라 그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동물을 그렸던 것은 알지 못했는데, 역시나 신앙심 깊은 화가였던 듯 모든 것이 다 종교와 연결된다.

Francisco de Zurbarán, Still Life with Lemons, Oranges and a Rose (1633)

심지어 그가 그린 <레몬, 오렌지 그리고 장미가 있는 정물>(1633)이라는 작품 역시 일견 평범한 정물화이지만, 해석에 따라서는 '삼위일체' 혹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칭송'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렌지는 영생을, 장미 꽃과 함께 놓인 맑은 물이 담긴 잔은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으로 잉태함'을 상징한다고. 그리고 레몬의 경우,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혹자는 그려진 것이 레몬이 아닌 유자라고 보기도 한다고. 그리고 흔히 선악과를 사과라고 알고 있지만, 초기 문헌에 따르면 애초에 선악과는 유자였다고도 전해진다. 레몬 혹은 유자는 고달프고 신산한 현세의 삶 속에서 겪게 되는 유혹이 되는건가? 아닌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정물화라고 하기엔 무대 조명과도 같은 밝은 빛이 과일들과 꽃 그리고 찻잔에만 쏟아지고 배경은 최대한 단순하고 어둡게 표현한 탓에 사뭇 경건함이 깃들어 있다.

이렇게 주변을 어둡게 하고 주제가 되는 사물이나 인물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게 그리는 것은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의 주특기였고, 데이비드 호크니를 위시한 연구가들은 그것이 그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카라바조의 키아로스크로 기법 (구체적으로는 테네브리즘 tenebrism)을 프란시스코 데 주르바란은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때로는 적은 말이 더 폐부를 찌르고 단순한 표현이 더 깊게 맘을 움직인다. 개인적으로는 '성자 세르피온의 순교'라는 작품보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작품이 훨씬 더 크게 맘 속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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