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Wyeth)의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Wind from the Sea)> (1947)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창문에 대한 그림을 올렸고 앞으로 몇 번 정도는 더 올릴 것 같다. 오늘은 미국의 지역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Wyeth: 1917-2009)가 그린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Wind from the Sea)>라는 작품이다.
Andrew Wyeth, Wind from the Sea (1947), tempera on hardboard ; 47 cm × 7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출처: https://www.artsy.net/artwork/andrew-wyeth-wind-from-the-sea
어제 올렸던 우크라이나 작가 엘레나 유시나의 작품과 주제는 유사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유시나의 창 풍경화가 찻잔에 내려앉은 나비 탓도 있지만, 좀더 나른하고 몽환적이라 환상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와이어스의 창은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다소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미술관 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작가가 오랫동안 쓰지 않던 다락방의 창을 환기를 위해 열었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이겠지만, 낡고 삭아버린 레이스 커튼이, 제목대로라면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계산되지 않은듯 펄럭이는 거의 투명한 커튼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별 주제 없이 그려진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바람이나 커튼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그릴 수는 없으니 계산되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작품은 스냅 사진이 아니라, 작정하고 시간을 들여 그린 회화 작품이고, 그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선택한 것은 화가일테니, 그렇게 계산되지 않게 보이는 것도 작가의 실력이다.
그리고 일견 후다닥 그린듯한 이 소품은 정작 가까이서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꼼꼼하게 작업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대표작으로는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 덕에 거의 미국 국민 화가 반열에 들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작품이 훨씬더 감동적이다.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1948) Egg tempera on gessoed panel, 81.9 cm × 121.3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엘레나 유시나의 창을 바라다보면 따뜻한 봄날의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면서,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이 내게 불어드는 것 같다면, 앤드류 와이어스의 낡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은 그다지 눈부실 것도 없고 어쩌면 때로는 냉혹하게 들이닥칠 수도 있는 인생의 파고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겸허함과 의연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같은 창 그림인데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