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1.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맞붙어 사이에 빈틈이 없게 되다
2. 어떤 곳에 이르다
3. 소식 따위가 전달되다
4. 어떤 대상에 미치다
5. 기회, 운 따위가 긍정적인 범위에 도달하다
6. 정확히 맞다
7. 글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통하다
8. 서로 관련이 맺어지다
남들에 비해 팔이 길었다.
많이는 아니고, 한 손가락 한 두 마디 정도만큼만. 다리까지 길었다면 보기에 좋았겠지만, 팔만 긴 건 나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어린 시절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 새겨 넣은 낙서처럼 나 혼자 몰래 팔이 길다는 것에 뿌듯해하곤 했다. 무엇보다 더 멀리 있는 것들에도 닿을 수 있다는 씩씩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얼토당토 하지 않게.
그 마음이 독이 되었던 걸까. 나는 물수제비를 뜨듯이 내가 갖고 싶은 것들에 힘껏 팔을 뻗어댔다.
쉴 새 없이 눈이 돌아갈 만큼 진기한 것들이 가득한 이 세상은 내가 팔을 뻗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닿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어깨가 빠지도록 힘껏 팔을 뻗어냈다. 그렇게 원하는 모든 것에 닿게 될 나를 자랑스워할 부모님께 큰소리쳤다.
닿겠지, 닿을 거야, 닿을 수 있어.
한두 번의 실패쯤이야 젊은 날에 겪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치부하기를 수십 번이 지났다. 아무것도 잡지 못한 손가락들이 허우적 대 보지만, 허공에 대고 아무리 손을 오므려 쥐어도 결국 느껴지는 건 나의 빈 손바닥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나의 기대를 말로 내뱉지 않았다. 말로 전해진 섣부른 나의 희망에 마음을 다치는 게 나뿐이었다면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풍선에 바람을 불어대던 나뿐만 아니라 그걸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엄마와 아빠도 그 풍선이 '펑'하고 터질 때 함께 마음을 다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 꿈을 꾸던 이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나는 나의 입을 닫았다.
결국 나는 끝끝내 닿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미련하게 바라보는, 팔이 길어 슬픈 짐승이 되었다.
그렇게 슬픔이 지겨운 짐승은 이제 팔을 뻗지 않았다.
더 이상 찬연한 미래를 흥얼대지 않는 나에게, 그런 미래를 이제는 받아들인다는 나에게,
엄마는 '남들이 우러러보지 않는, 빛나지 않는 삶일지라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삶이다'라는 긴 문장 대신 '사랑해'라는 세 글자를 건넸다.
나는 긴 팔로 엄마를 안았다. 아니 안겼다. 이윽고 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