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한 지도 어언 10년이 된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우여곡절 참 다양하고도 많은 사건사고가 지나갔다.
학부시절 흥미를 느끼며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노라 다짐했지만,
나의 욕심과는 다르게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건강형평성을 탐구하는 그저 호기심 많은 간호사가 되었다.
외상과 응급에 꾸준히 관심이 많았던 나는 간호장교로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꿈꾸는 것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필수코스인 학연, 지연, 혈연을 따라갈 수 없었고,
나의 능력으로는 재난과 응급 분야에 그다지 재능이 없었다.
좌절된 꿈 속에서 응급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남았는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다양한 임상 경험 속에서 방황을 하며 끝내 응급의료센터로 이직하게 되었다.
욕심이 과했던 나는 만족과 권태를 느끼며 나름대로 경험을 쌓아갔다.
이대로만 꾸준히 경력을 쌓아 응급 전문 간호사 대학원 과정에 입문하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아뿔싸! 코로나 사태가 벌어져 버렸다.
응급의료센터의 매출도 반토막이 나고 응급실 간호사들은 돌아가며 무급휴직이나 개인 연차 소진으로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응급실 간호사는 응급간호 고유의 업무에서 코로나 진단업무에 대거 투입이 되었다.
물론 지역에서 가장 신속하고 필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의 자율성을 억압받는 것은 매우 유감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퇴사를 해버리고 재난 응급 분야 다음으로 관심이 있었던 지역사회와 정신분야로 이직하고자 했다.
운 좋게 지역사회 친화 의료기관에 이직하게 되었고 코로나 사태는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루에 30만 명까지 코로나 감염증이 진단되는 초비상 사태까지 되어 버렸다.
이직한 곳이 의원급이라 코로나 간이검사(RAT) 업무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대표원장님이 아무런 대책 없이 코로나 간이검사를 하겠다고 직원들에게 전달한 채로 검사용 키트 구매를 지시했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업무에 공포감을 느끼며 벌벌 떨었다.
환자들도 혼미백산 그 자체였다. 외래 대기실에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이 나도 병원에 오는 것을 오히려 기피했다.
나는 돈 밖에 모르는 대표원장이 참으로 미웠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야지 하는 심보는 나의 철학과 가치와는 맞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과 감염에 대한 원칙과 동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거나,
명확한 질병관리청의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길 바랐었다.
그리고 직원들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업무를 해야 하고 코로나에 감염이 될까 하는 우려상황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결국은 내가 총대를 메고 코로나 진단구역을 설치하고 동선구분, 확진 시 조치사항에 대해 밤을 세가며 준비했다.
보호구 착용을 위해 구비된 물품도 부족했던지라 필요한 물품을 결재받고 모두 준비하였다.
드디어, 디데이! 예상대로 의원 문이 열리기도 전에 검사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전화는 끊임없이 오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코로나 진단을 받겠다며 혼미백산을 이루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준비했던 데로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기를 뽑아버리고 검사용 보호구 4종을 입고 검사를 위해 내원한 환자들을 한 줄로 대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접수증을 적게 하고 함께 일하던 직원과는 동선이 겹치지 않게 나 혼자서 순서대로 접수와 수납을 하기 시작했다.
진찰을 하는 대표원장도 확진이 되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비대면으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오늘 했던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느꼈던 직원들은 내일부터는 자신들도 해보겠다고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업무를 교대하며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직원들에게 참 많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동안 재난 상황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응급의료센터에서 일해보지 않았더라면 어려웠을 상황이었다.
내가 지휘한 간호업무가 만족스럽고 자신감이 생겼다.
무조건 경력만 많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곳에 머물며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것은 늘 있었던 정규업무와 처방을 내는 의사의 스타일에 강할지는 몰라도
새로운 이벤트나 최신화된 업무 프로토콜을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같은 경력이라고 하더라도 경험이 많은 간호사는 유연성이 있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서
상황판단력과 대처능력에서 빛을 바라고 있었다.
그 외에도 임상과 지역사회에서 겪은 경험으로 수많은 상황 속에서 환자를 지켜내기 위한 고민들은 나를 성장하게 했다.
그것은 질 높은 간호 수준을 유지하게 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본을 무작정 쫒기보다 환자에 대한 신뢰와 진심을 담다 보면 그 관심은 자연스레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 내가 늘 하고 있는 것처럼 경력이 무작정 많은 사람이기보다 경험으로 오늘도 한줄기 빛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간호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