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찻길을 따라 생망데에서 바스티유 오페라까지 걸어보기
직접 걸어 파리를 탐험하는 것. 그것은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파리의 끝과 끝을 정해놓고 걸으니 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다가온다. 아프리카 정글 탐험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문득문득 나타나는 숲(?)과 정원, 감탄을 자아내는 각양각색의 건물들, 끝없이 부딪치는 이름 모를 사람들. 이렇게 대면하게 되는 낯섦과 당황스러움은 파리 탐험을 너무도 흥분되게 한다. 그 어떤 오지 못지않게 파리는 신선하고 또 충분히 낯설다. 그래서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조금씩 파리를 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파리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것으로 첫 탐험이 시작되었다. 파리 동쪽 끝 생 망데(Saint Mandé)에서그 여정을 시작한다.
파리의 동과 서를 길게 연결한 파리 지하철 1번선을 타고 생 망데 지하철 역에 내린다. 지하에서 올라와 만나는 주변 풍경이 파리 외곽의 번잡스러움에 여러 시대가 뒤섞인듯한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변두리적 특성을 자아낸다. 생 망데 지하철역에서 외곽순환도로(périphérique)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 보자. 칙칙한 대로와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파리 SAMU(의료응급센터)로 쓰이고 있는 생 미셸 양로원이다. 이 양로원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나폴레옹 1세 궁정에서 양탄자 제작일을 했던 미셸 자크 불라(Michel-Jacques Boulard)라는 사람이 죽으며 양로원을 지으라고 큰 재산을 남긴다. 조건은 그 당시는 12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는 파리에서 각 구마다 한 명씩, 12명의 가난한 사람을 양로원에 수용하는 것이다. 불라는 또한 해마다 자신의 생일인 12월 1일에 노인들을 초대해 닭고기를 대접하는 만찬을 열도록 했다. 이러한 전통은 1960년까지 이어졌고, 1993년 양로원은 파리 SAMU로 바뀌었다.
SAMU를 지나 외곽순환도를 가로지르면 나무와 관목으로 둘러싸인 산책로로 들어서는 입구를 발견하게 된다. 드디어 모험이 시작되는 곳이다. 도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나무와 풀들,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폭의 길이 한 방향으로 죽 이어진다. 그리고 발견한 화단 위의 토막 난 기찻길과 객차... 그렇다. 이제부터 걸어갈 이 길이 1859년부터 1969년까지 운행되었던 벵센느 철로다. 바스티유에서 바렌느 생뫼(Varenne-Saint-Maur)까지 외곽에서 도심으로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던 기차는 지금은 파리 외곽 전철 RER A선으로 대체되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철길. 그 철길 위로 아름다운 산책길이 벵센느 숲에서 바스티유까지 굽이굽이 이어진다. La Promenade plantée로 불리는 길이다. 다양한 가로수와 고풍스러운 가로등, 오랜 역사를 간직한 듯한 동굴 같은 터널들. 그리고 철로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이정표들. 지금은 기차 대신 사람들이 달리고 그들 너머로 어디선가 기차의 기적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이렇게 2킬로 정도 계곡을 따라 달리던 기차가 드디어 멈춰 선 곳이 르이 (Reuilly) 기차역이다. 19세기의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지어진 이 아름다운 기차역사는 지금은 12구 시청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늘 정원
르이 (Reuilly) 역사를 지나 르이 (Reuilly) 정원에 들어서면 이제 기차는 계곡에서 올라와 하늘을 달리게 된다. 넓은 푸른 잔디가 펼쳐진 위로, 활처럼 휜 정원의 다리를 건너면 9미터 높이의 돌다리 위로 아름다운 공원이 펼쳐진다. 공원 길을 따라 옆으로 늘어선 건물은 4,5층 높이에서 직접 대면하게 되고 북적거리는 가게도, 소란스러운 자동차도 사라진, 오직 하늘과 건물 발코니와 지붕 위 굴뚝만이 지나가는 이를 반긴다. 하늘정원!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마치 까망베르 치즈를 잘라 논 듯한 두 개의 건물이 이 신비한 정원으로 열려있는 고대의 문처럼 양 옆에 버티고 서있다. 건축가 미트로파노푸(Mitrofanoff)가 설계한 건물 랑부이에-몽갈레 쇼핑센터(Centre Commercial Rambouillet-Montgallet) 다. 1996년에 지어진 이 현대 건축물은 놀라울 정도로 파격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잘라낸 치즈 사이로 슬쩍 들어서니 또 멀리 초록의 산책로가 성큼 다가선다.
초록 대나무 숲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며 걷다 보니 저 멀리 건장한 남자의 나체상들이 경찰서 건물 꼭대기에 보란 듯이 죽 늘어서 있다. 박장대소하고 자세히 보니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들이다. 그것도 14개씩이나!! 지상에 있었다면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을 나체상들은 하늘정원에서라면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나타난 붉은 벽돌의 집들. 붉은색이 이렇게 현란한 색이었구나... 마치 만개한 꽃들처럼 너무도 화려한 붉은 벽돌의 향연이었다. 이것도 하늘정원에서만 가능한 볼거리일 것이다.
지루할 틈 없이 걷다 보니 멀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하얀 뒷 자태가 보이고 이제는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 이 기차의 종착역인 바스티유 역이 바로 지금의 오페라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내려와 올려다본 교각 위의 하늘정원과 60개의 교각 아치들. 그 아치들 사이의 트렌디한 가게들은 그 이전 기차가 달리던 시절부터 있었다고 한다. 멀리 바스티유 광장 7월 혁명탑 위의 자유 요정이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려는 듯 금색으로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