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el Perú

Prologue

by 일등박사

어린 시절 다양한 미디어와 함께했다.


텔레비전.

텔레비전 보는 것을 즐겼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며 일요일 아침을 시작했다.

주말의 끝을 개그콘서트였다.

허준을 본 뒤에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구안와사 흉내를 내고 앉아있었다.

김두한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야인시대’의 애청자로 싸움을 잘하고 싶었다.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을 본 후에는 대한민국을 이어 새로운 왕국을 건국하고 싶었다.


팩게임기

게임을 많이 했다.

친절한 부모님은 TV에 연결할 수 있는 게임기를 사주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갤러그가 처음 해본 게임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날이면, 크리스마스면, 새로운 팩을 갖고 싶어 했다.

그렇게 팩을 바꾸어가며 게임은 했다.

일본의 ‘열혈’ 고등학생 형들이 싸우며 나가는 게임이 기억에 남는다


컴퓨터

순식간에 PC의 시대가 도래했다.

집에 컴퓨터가 생겼다.

컴퓨터는 게임기를 대체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학교 앞 피시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동생과 집에서 2인용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했다.

그리고 혼자 독서실 옆 피시방에서 다양한 게임을 했다.


핸드폰.

중학교 처음 핸드폰이 생겼다.

016 번호의 16화음 벨소리로 음악이 나왔다.

문자르 주고받을 친구가 없어 시계로 썼다.


MP3.

소리바다에서 최신 음악을 다운로드했다.

32MB의 MP3에 음악을 다운로드하였다.

액정이 없어 노래의 제목을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조성모의 노래가 가득했다.


전자사전.

글로벌 시대 영어는 필수였다.

전자사전이 필요했다.

테트리스와 자동차게임을 했다.


PMP.

IT 시대 인터넷 강의는 필수였다.

PMP가 필요했다.

프루나를 활용하여 다운로드한 영상들로 자율학습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이렇게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과 함께 성장했다.

그랬음에도,

나 때는 요즘 애들처럼 안 그랬다.

요즘 애들은 전자기기로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축구가 좋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들었다.

친구들과 동네 소운동장을 장악하고 때거리 축구를 손보였었다.


저녁에는 동네 태권도 학원에서 심신을 수양했다.

흰색-노란색-녹색-파란색-갈색-빨간색의 띠의 계단을 넘었다.

검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품띠를 받기 위하여 국기원에서 심사를 받기도 했다.



여름이 찾아오면 잠자리채를 말매미를 잡으러 동네의 풀밭을 해치고 다녔다.

채집통에는 하늘소, 풍뎅이, 달팽이 등 손이 닿는 곳에 사는 가여운 곤충친구들로 가득했다.

땅속의 매미 애벌레를 잡기 위해 땅속을 휘져었다.

모종삽에 여린 매미 애벌레는 두 동강이 났다.

그 뒤로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며칠간 침대에서 이불 밖으로 발도 내밀지 못했다.


팽이치기를 했다.

시멘트가 반들반들하게 깔린 아파트 복도에서 모두가 자리를 잡고 팽이싸움을 했다.

부모님이 어디선가 얻어다 주신 삼성 라이온즈 팽이를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딱지치기도 했다.

TV만화로 시작된 포켓몬스터 열풍에 팽이는 서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백 원짜리 몇 개를 들고 근처 문구점에 가 조그마한 박스에 든 포켓몬 딱지를 샀다.

전기 물 불 모두로 진화할 수 있는, 강아지처럼 귀여운 이브이를 바랐다.

하지만 대부분은 경우는 피카추와 친구들(피존, 이상해씨, 꼬렛 등등)이 들어있었다.

그리곤 팽이가 돌던 아파트의 복도는 이제 딱지치기의 전쟁터로 바뀌었다.

만화 프로그램의 재편성되며 딱지는 피카추에서 디지몬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팽이치기를 했다.

서랍 속에 있는 삼성 라이온즈 팽이의 시대가 되돌아온 것이라면

부모님의 등과 뼈는 지금보다 곧고 튼튼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팽이는 이름이 팽이가 아니었다.

탑 블래이드였다.

차이점은 팽이 위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 팽이에 그려져 있었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팽이 전용구장이 필요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아파트의 시멘트 복도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 많은 놀이들 중에서도 숨바꼭질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못 찾겠다 꾀꼬리!”가 들리면 장군처럼 뛰어나가던 게임.


술래는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방법인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놀이의 장소도 중요했다.

익숙함 여부에 따라 숨을 공간이 많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놀이터는 나의 홈그라운드였다.

처음엔 유아용 미끄럼틀 아래에 숨었다.
곧 들켜서 더 깊은 곳으로 갔다.
헌 옷 수거함, 재활용통, 심지어 일반 쓰레기통까지.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며 뛰쳐나온 날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는 실내 숨바꼭질이었다.
나의 집은 작아서 자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귀했다.
여름방학이면 외가댁에서 형들과 숨바꼭질을 할 수 있었다.

아침엔 과수원에서 복숭아와 옥수수를 따고,
낮엔 바닷가에서 조개를 찾고 튜브에 떠 있다가,

저녁엔 냇가에서 씻고 돌아와 고기를 먹었다.


그 모든 하루의 끝이 숨바꼭질이었다.

외가댁은 방이 여러 개였고 옥상까지 연결돼 있었다.
숨을 곳은 많았지만 나는 늘 같은 곳에 숨었다.


peru.jpg 할아버지방의 이불장


할아버지 방 뒤, 이불장.

깜깜하고 조용하고 포근했다.
두꺼운 겨울 이불 사이에 파고들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 같았다.
구미호도, 방학 숙제도,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그곳은 나만의 에덴동산이었다.

지금은 커져버린 몸 때문에 들어갈 수도 없다.
문을 닫으려 하면 늘어난 갈비뼈에 문이 닫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기억의 옷장’을 만들었다.

물리적 제한이 없는, 내 머릿속의 깊은 곳에

심연의 옷장을 만들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주말 아침 침대에서도,
순간순간 옷장 문이 열린다.

일상이라는 현실에 갇힌 지금,
나는 그 옷장을 통해서 그 시절 다시 페루로 떠난다.
2013년의 햇살과 공기와 사람들 속으로.
그때의 나와 마주 앉아, 천천히 행복을 더듬어 본다.


오늘의 서울을 살아가며,

‘2013년 페루’라는 나만의 기억 속 옷장 속에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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