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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서히 May 27. 2024

[서평] 관객모독

페터 한트케/민음사

페터 한트케는 1942년생 오스트리아 작가로서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독일 문단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이며 <관객모독> 외 국내에도 페터 한트케의 소설집 <소망 없는 불행>, <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과 같은 책들이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관객모독>은 희곡의 형식으로 씌여져 있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희곡의 형태는 아닙니다. 즉 희곡의 형식(지문, 대사, 해설)은 따르고 있으나 희곡의 내용적 3요소(인물, 사건, 배경)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말씀드리면, 천지개벽할 수준으로 기존 희곡의 형태를 깨 부수어 놓았습니다. 이 책은 두껍지 않아서 출퇴근길에 금방 읽으실 수 있는데요. 읽고 나면 차가운 각얼음을 부주의하게 오독오독 씹었을 때 느껴지는 머리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큰 물음표가 차오릅니다. 

이게 뭐지? 

연극의 등장인물은 네 명이며 한트케는 서두에서 배우를 위한 규칙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부만 옮겨 보면 대략 이런 것들입니다. 초반에 이 규칙들을 읽었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나 책을 다 읽고 나면 한트케가 주창했던 혁신, 파격과 배우들을 위한 이 규칙들이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데모하는 군중들의 구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롤링 스톤스가 부르는 <텔 미>란 노래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서부에서 온 사나이>라는 영화에서 게리 쿠퍼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것.


그리고 두 장 분량의 지문이 등장하고 바로 대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대사는 등장인물 네 명간 구분조차 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말한다' 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희곡이 실제 연극 상연 용도로 씌여진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관객모독>은 1966년 6월 8일 프랑크푸르트 탑 극장에서 첫 공연을 감행했더라고요. 국내에서는 1978년 극단76에서 초연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긴 대사를 배우들은 어떻게 배분하고 연기했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다시 공연을 하게 된다면 꼭 한 번 보러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럼 대사의 일부를 한 번 옮겨보겠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욕설을 하게 되면, 여러분은 우리가 한 말을
그냥 흘려듣지는 못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우리 사이 거리는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욕설을 듣게 되면, 여러분의 몸은 부동자세로 경직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을 욕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하는 욕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욕들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 뿐입니다. 여러분은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전에 주의를 받았으니까, 욕설을 들어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욕설을 구성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쉬지 않고 '너'라고 말할 것입니다.
너희들이 우리 욕설의 주제입니다.
너희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경청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들, 눈딱부리들아.


이 대사 이후로 줄곧 관객을 향한 욕설이 시작됩니다. 욕설이라고 해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친 욕설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욕설 러쉬가 이어지다가 연극은 갑자기 끝납니다. 그리고 배우가 마지막 대사를 합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환영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없고 이야기의 전개도 없으며 배경조차 없는 즉, 희곡의 내용적 3요소가 모두 배제된 이러한 희곡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페터 한트케는 사건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서 어떤 상(想)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단어와 문장만으로 작품을 구성했다고 합니다. 즉, 작품의 내용은 없고 단어나 문장이 비트 음악처럼 반복되는데 한트케는 이를 언어극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대중음악계에 갑자기 랩이 등장했을 때 이런 파격적인 느낌이었을까요? 아니죠. 랩조차 내용과 스토리가 있잖아요. 이것은 차라리 비트박스로만 음악 한 곡을 완성했을 때의 파격과 맞먹는다고 예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문학 작품은 수세기에 걸쳐 내용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독자들은 작품 내용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동을 얻어 왔습니다. 그러나 한트케는 이전 시대의 수많은 작가들이 같은 낱말을 사용하고 문장을 구성하여 의미를 부여해 왔으며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는 건 낡고, 서술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내용을 배제한 채, 단어만으로 문장을 형성하여 연극을 구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단어들을 붙여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은 의미를 포함하지 않도록 구성함으로써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던 문학 작법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한트케와 동시대에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 철학이나 의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기존 체제나 이론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페터 한트케도 문학계에서 'New movement'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겠죠. 

아방가르드한 그의 연극 작법에 대한 이론과 주장은 문학의 스토리를 사랑하고 중시하는 저에게 깊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수세기에 걸쳐 견고히 축적되어 온 문학계의 전통에 혁신과 파문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혁신과 파문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통하지 않았을 것임을 잘 알기에,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짚고 넘어갈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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