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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Jul 30. 2024

[건강한 책읽기] 바깥은 여름

김애란

강남으로 출근을 하게 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똑같이 빌딩 숲에서 빌딩 숲인 동네로 온 것이지만 뭐랄까 훨씬 어수선하고 정을 못 붙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량진을 이웃하고 있는 동네와 고속 터미널을 옆에 두고 있는 동네의 차이랄까.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에서 산책을 하는 것도 고역이다. 마치 친척 결혼식이 끝나고 우르르 식장에서 빠져나가는 인파에 섞여 있는 느낌이다. 반짝이는 웨딩홀 건물의 아름다움이나 가꿔진 조경을 눈으로 즐기지 못하고 그저 주차장으로 향하기만 하는 것 같은 산책.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지는 기분이 문득문득 드는 곳, 그곳이 바로 강남이다.



작년 이맘때 회사의 적을 옮기고 한 해가 지나 또다시 여름이다. 빽빽하고 눈부신 회색 건물들 숲. 그리고 그 숲의 한 가운데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가면 환기가 안되어 멈춰있는 공기가 나를 맞이해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땀이 송골송골 나기 시작하는 곳.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ESG 광풍에 우리 회사도 발 벗고 나서서 에어컨부터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요새 같은 더운 날씨엔 사무실에서 땀 냄새가 은은하기까지 하다.ㅋㅋ 회사 건물 1층에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자랑스러운 은장 명패까지 걸려있으니 말이 필요 없다. 


강남이 즉 사무실인 내겐,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여름날의 인상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매일 아침 돈 벌러 그 여름의 동네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시원한 아침 7시의 2호선, 바깥은 그야말로 여름이었던 어느 날에.



 

바깥은 여름 김애란

흔하듯 흔하지 않은 소재와 메시지를 하나씩 꾹꾹 담은 단편을 엮은 책. 김애란 작가님과 차 한 잔(어쩌면 소주 한 잔) 하면서 나의 깊은 아픔을 털어놓고 싶은, 혹시 그가 나와 비슷한 아픔이 있다면 함께 들어주고 싶은 그런 소설이었다.




1. 입동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 바깥은 여름, 입동 중- 


다섯 살짜리 아들을 잃은 부부의 이야기다.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래도 일상을 회복해보려고 한 걸음 내딛는 가여운 이야기, 그렇지만 평범한 이야기. 태어난 이상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이별을 해야만 하도록 설계된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건 영화나 소설 속에서 나 있는 일’인 양 살아간다. 가끔은 그 점이 나를 한없이 너그럽게 만들어준다. 시시하고 사소한 하루하루가 살아가는 이유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아주 가끔씩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세상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며 무섭기도 하다. 회사 포털 첫 페이지 정중앙에는 우리 동료들의 가족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렇게 매시간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가족과의 이별에 낮에는 울고, 저녁에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방문을 어른스럽게 맞이한다. 그리고 행정적인 것들을 처리하고 마른 눈으로 다시 사무실에 출근한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무실 복귀 후에는 그가 슬픔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도, 사람들이 그에게 묻지 않는다. 이렇게 시치미 떼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2. 가리는 손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깥은 여름, 가리는 손 중-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엄마가 겪는 내적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sns를 뜨겁게 달군 노인 폭행 사건,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아이. 폭행 현장이라며 떠돌던 영상 속에서 보았던 아이의 얼굴. 아이는 폭행에 동조했던 것일까. 최소한 방조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이의 말대로 그저 운 나쁘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엄마로서 아이의 말을 믿고 싶은 마음과 불안, 진실을 샅샅이 알고 싶지만 동시에 덮어두고 싶은 아슬아슬한 마음.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크고 작은 많은 것들을 눈감아주고 방어했을까. 혹은 용서했을까?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후, 아이의 생일 케이크 초 너머 보이는 눈동자와 얼굴 근육의 움직임에서 화자는 어떤 것을 보았다. 애써 모른 척 생각하기를 억누르던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 결국은 스스로의 마음의 안정과 서로 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적인 인간의 본능일 거다. 내 마음이 편한 쪽으로 양심과 마음을 정했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불안감. 그리고 가장 가까워야 하는 존재에게서 느끼는 낯선 감정과 함께 남은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나와 다른 존재로부터 다소간의 실망, 내가 알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면서 낯섦을 경험한다. 하지만 곧 씩씩하게도 잘 잊고 회복하고 살아간다. 그런 감정선을 포착하여 재미있게 그려낸, 평범한 인간사를 다룬 소설.  






올해 여름은 평년보다 덥다고 한다. 후덥지근하고 빡빡한 강남살이를 위해 좋은 책을 다시 좀 보려고 한다. 그리고 단초로운 나의 인터넷 공간인 이 블로그에, 오랜만에 서평을 쓰고 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밍밍해진 아메리카노와 살얼음 낀 티라미슈를 먹으며.. 바깥은 여름인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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