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옆집에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가 살았는데 그 언니에게는 7살 차이가 나는 중학생 언니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언니는 아는 것도 많고, 신기한 물건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겉면이 영자신문으로 싸인 하드보드지로 만든 필통 같은 것들.
두 살 어린, 장난꾸러기 남동생이 유일한 핏줄이었던 나는 그 언니가 무척 부러웠다.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살면서 친언니 같이 나를 챙겨주고, 내 속을 얘기할 수 있고 좋은 게 생기면 함께 나누고 싶은 언니들이 몇 명 생겼다. 그 언니들을 생각하면, 크리스천이 되기 전의 엄마가 젊은 시절에 보았던 내 사주에서, '인복'이 많다는 풀이를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제는 그 언니들 중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띠동갑 언니네 가족과 저녁을 함께 했다. 언니는 내가 육아로 가장 힘들던 시기에, 구세주 같은 분이었다. 엄마가 건강이 나빠지셔서 더 이상 아이를 봐주기 어려워지셨을 때 단지 놀이터에서 만난 인연으로 3년이나 딸아이를 등원, 하원시켜주고 하원 후 집에 데려가셔서 저녁도 먹여주시고, 책도 읽어주시고... 딸은 그렇게 이모가 읽어주는 책을 통해 한글을 뗐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우리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엄마가 늦는 날은 이모네 가서 TV도 보고 저녁도 먹고 숙제도 하고. 그렇게 자유롭게 왕래하는 사이가 된 우리는, 남편들끼리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 함께 골프도 치고 술도 한잔하고 자전거도 타러 다니는 사이가 되어 진정 가족 같은 이웃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일 년간 덴마크에 가면 서운해서 어쩌냐며 밥 먹자고 집으로 초대를 하셔서 어제 배달 온 홍감자 여남은 개와 만들어 놓은 빵을 들고 편한 맘으로 갔는데... 이건 뭐,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덴마크에서 먹기 어려운 음식들로 준비하셨다며, 처음 내놓으신 것은 오징어 초무침이었다. 뒤를 이어 깻잎 전과 갈비찜, 갈치조림에 잡채, 전라도식 양념게장까지! 우리 부부의 입맛을 저격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게장이었다. 이건 정말 덴마크에서는 사 먹기는커녕 만들어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이 아닌가.
고향이 전라도인 언니는 손도 무척 커서 평소에도 맛깔난 전라도 음식을 자주 나눠주셨기에, 음식 솜씨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많은 요리를 하려면 낮부터 얼마나 애를 쓰셨을지... 정말, 나는 복도 많지.
맛있는 음식들의 향연에 술이 빠질 수 없어, 남편들과 언니네 큰아들은 소맥을, 나랑 언니와 언니 딸은 맥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날이 월요일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로 자정을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이 길었던 대화의 결론은 대기업에 다니는 언니네 아들이 인센티브를 받으면 언니네 부부의 비행기표를 대 줄 테니 덴마크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야호! 언니가 진짜 덴마크에 온다면, 몇 주는 한국 음식 먹으며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