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作 -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외모지상주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소프트웨어 '칼리'가 출시되었다. SF의 거장인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 책 하나로 테드 창은 네뷸러상, 휴고상, 로커스상, 스터전상, 켐벨상, 아시모프상, 세이운상, 라츠비츠상을 석권하였으니, 더 이상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다.
아마 가장 유명한 건 드니 빌뵈브 감독의 영화 <컨텍트>로도 개봉된 <네 인생의 이야기> 일 것이다.
이 책의 단편들은 하나 같이 모두 훌륭하지만, 나는 그중 맨 마지막 단편인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를 리뷰하고자 한다.
가까운 미래. '칼리'라는 소프트웨어를 눈에 장착하면, 사람들이 모두 성형수술을 한 상태처럼 보여지게 된다. 개인의 시각에는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뾰족한 턱, 삐뚤어진 코, 매끄러운 피부 같은 사항은 구분할 수 있지만, 이런 차이들에 대해 아무런 심미적 반응도 경험하지 않게 함으로써 외모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과연 당신은 칼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내 선택에 참고하라는 듯, 칼리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논쟁들이 인터뷰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중 '타메라 라이언스'라는 여자 아이는 칼리가 의무화된 학교에 다녔다. 자기 자신만 칼리를 끼는 것이 아닌, 학교의 모든 이들이 서로를 외모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를 그 학교에 보낸 부모님의 이유는 무엇일까?
[타메라의 어머니]
제가 처음에 가본 교실에서는 열두어 살 먹은 학생들이 반장을 뽑고 있었는데, 반장으로 뽑힌 아이는 얼굴 반쪽에 화상 흉터가 있는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의 행동거지는 보기에도 정말 편하고 자연스러웠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았습니다. 다른 학교였다면 아마 바로 그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당했겠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환경에서 내 딸을 키우고 싶다고.
여자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가치가 용모에 직결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어떤 업적을 이루더라도 예쁘면 크게 각광받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평가절하됩니다. 더 나쁜 경우가 있다면, 여자아이들 일부가 자신의 외모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수용하고 정신적 성장을 멈춰버린다는 사실이죠.
저는 타메라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가 아니라, 정신과 육체 모두를 함양해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기를 바랐습니다.
[타메라의 아버지]
타메라가 성인이 되어 칼리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해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저희 부부의 결정은 결코 타메라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학창 시절을 칼리를 낀 채로 살아온 타메라는, 대학에 입학하며 칼리를 빼는 선택을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을 본 타메라는, 자신이 아주 아름답다는 사실에 행복해한다.
타메라의 대학에서도 칼리를 의무화 하자는 견해와 반대 견해가 서로 대립하며 의견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작가가 써 놓은 각자의 입장에 대한 글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남한산성>에서 당파 간의 현란한 말싸움을 읽을 때처럼 혼란스럽다.
[칼리 의무화 반대 의견]
이것이 사람들이 '도움받은 성숙함'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걸 성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전문가 시스템이 당신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일 뿐입니다. 성숙함이란, 차이를 눈으로 보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론]
전문가 시스템에게 당신의 판단을 맡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성숙에 관해 말하자면, 칼리를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성숙함의 증거입니다. 누구나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인간의 장점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것은 교육 덕택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 세상이 선의로 가득하다 해도 사람들은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외모가 매력적이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잘생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유능하고, 좀 더 정직하며,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지만, 그들의 외모는 우리에게 그런 인상을 줍니다.
칼리는 눈가림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칼리는 당신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던 중 타메라는 친구에게 '개럿'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개럿은 타메라가 고등학교 시절 많이 좋아했었지만, 헤어지게 된 남자 친구였다. 타메라의 친구는 타메라가 개럿에게 차였다는 사실을 듣고는 경악한다. 개럿이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칼리가 없는 학교였다면 타메라와는 감히 데이트도 하지 못했을 거라며 개럿을 비난한다.
하지만 타메라는 개럿이 여전히 귀엽다고 생각했고, 칼리가 있었던 덕분에 개럿과 사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만약 개럿에게 칼리가 없다면, 나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개럿은 아직 칼리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타메라는 개럿에게 칼리를 끄라고 설득한다.
[칼리 의무화 반대 의견]
이 칼리라는 건 정말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전 남자들이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요. 만약 안 그렇게 된다면 정말 실망할 거예요.
이 모든 일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 잘생기지 못한 사람들이 좀 나은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실행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기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벌하는 거죠. 정말 불공평해요.
[반론]
사람들이 저한테 친절한 건 제 용모 때문이에요.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걸 좋아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론 가책을 느낀답니다. 전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거든요. 어떤 남자가 좋아질 때마다, 그 사람이 내 자신에 대해 흥미를 느낀 건지 아니면 내 외모에 흥미를 느낀 건지 궁금해하곤 하죠.
타메라가 다시 개럿에게 연락을 했을 때, 개럿은 결국 칼리를 끈 후였다. 그는 평소와 달리 자신의 외모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있다. 대학의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려웠던 것이 자신의 용모 때문이었을 거라 판단하고 자존감이 하락한다. 칼리가 모두에게 의무화였던 고등학교 때의 개럿은 똑똑하고 멋지고 재미있었지만, 대학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고민하던 개럿은 결국 칼리를 다시 착용한다.
타메라는 그렇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아아, 도대체 저는 누구를 속이려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저 좋자고 개럿이 칼리를 끄기를 원했어요. 개럿이 저의 매력에 두 손을 들고, 자기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닫게 되리라 꿈꿨던 거예요.
작가는 과거 어느 실험에서 이 단편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가짜 대학 입학원서를 여행자가 깜박 잊고 간 것처럼 공항에 놓아두는 실험이었다. 원서의 여러 항목에 기입된 글은 모두 동일했고, 다만 지원자의 사진만 바꾸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지원자의 용모가 매력적일 경우 원서를 주운 사람들이 그것을 대신 우송해줄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들을 선호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 학창 시절을 반추해 보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 피부가 지저분한 아이, 키가 작은 아이 등 외모로 많은 차별을 받고,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았다. 그 아이들은 갈수록 주눅이 들고, 소극적인 아이로 변해 갔다.
반면 어렸을 적에는 소극적이었던 아이들도, 외모가 괜찮으면 자신감이 늘어나고 당당해졌다. 나는 꽤 어렸을 적부터 한 개인을 오직 외모만으로 좋지 않게 판단해 버리는 아이들의 편견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외모의 우열은 능력의 우열이 아니며, 성격과도 하등 상관없다. 사라마구가 저술한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면 껍데기는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교우 관계에서도, 취업에서도, 외모는 한 개인의 인생의 방향을 좌우한다.
나 또한 외모가 출중한 사람에게 한 번 더 시선이 가고, 나도 모르는 새에 편견이 생겨가는 성숙하지 못한 한 명의 인간이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를 좋아하고, 은연중에 그들은 선할 것이라는 착각도 한다.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고,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외모로 타인을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우수한 외모에 이끌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해도, 부족한 외모로 차별과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나는 '칼리'가 개발된다면 꼭 착용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