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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Apr 02. 2021

평행우주는 실재하는가?

브라이언 그린 作 - <멀티 유니버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주는 나에게 언제나 호기심의 영역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인터스텔라>이고, 좋아하는 책 중의 대부분이 SF(Science Fiction) 영역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주에 관한 궁금증에 다양한 질문을 했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귀찮아하며 대답해주시지 않거나,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며 혼냈었다. 성인이 된 지금 그 시절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질문 중 쓸데없는 질문은 없었고, 그저 선생님들이 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라이언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는 그런 호기심들을 과학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마법처럼 느껴지지만 과학이듯이, 평행우주와 도플갱어도 모두 과학을 기반으로 설명된다.


cf. 작가 브라이언 그린은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 로즈장학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다. 그리고 번역가 박병철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전문적인 분야의 책들은 번역기 돌린 느낌의 딱딱한 문장들이 많은데, 박병철 번역가는 자신의 전문 분야라 그런지 아주 매끄럽게, 이해하기 쉽게 번역을 해준다. 그래서 둘의 조합은 항상 옳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는 2장 <끝없이 늘어선 도플갱어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우주란 무엇일까?


우리 은하의 안에 태양계가 있고, 그 안에 지구가 있듯이 무한히 큰 우주의 머나먼 곳에는 또 다른 은하가 있다. 그 안에는 우리의 태양과 비슷한 별이 있고, 그 주변에는 지구와 똑같이 닮은 행성이 있다.



그 안에는 우리 집과 똑같은 집이 있으며, 그 안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이 글을 보며 머나먼 은하에 있을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상상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똑같은 복사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무한히 큰 우주에 똑같은 복사본들이 무한히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평행우주이며, 그 먼 곳을 직접 관측할 수는 없더라도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무한히 큰 우주에는 무한히 많은 평행우주가 존재한다.



우선 평행이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간단한 예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친구 이멜다는 아름다운 수가 놓인 500벌의 옷과 1,000켤레의 수제구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멜다가 매일같이 옷과 신발을 갈아입는다면(또는 갈아 신는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조합이 모두 소진되어 예전과 같은 차림새로 나타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간단한 계산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500벌의 옷과 1,000켤레의 신발이면 총 50만 가지의 조합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멜다는 50만 일, 그러니까 약 1,400년 동안 매일같이 변신을 시도할 수 있다. 만일 그녀가 충분히 오래 산다면 언젠가는 옛날과 같은 옷차림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멜다가 신의 축복을 받아 수명이 무한대로 길어졌다면 1,400년을 주기로 똑같은 패션을 반복적으로 선보일 것이고, 시간이 계속 흐르다 보면 동일한 패션을 무한 번 반복하게 될 것이다. 시행 횟수가 무한대인데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유한하다면, 각각의 경우는 결국 무한 번 나타나게 된다. (57p)


위 개념이 무한 우주이론(우주가 무한히 크다는 이론)의 핵심이다.


지구로부터 얼마 이상 떨어진 곳은 아무리 뛰어난 장비로도 관측할 수 없다. 배가 수평선을 넘어가면 해변가에 서 있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천문학자들은 너무 멀어서 관측할 수 없는 천체를 두고 "우주 지평선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구에서 방출된 빛은 아직 우주 지평선 너머로 도달하지 않았다. 그곳에 사는 생명체들에게는 우리가 우주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신호나 정보 등 이 세상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주의 두 지점이 빛을 교환하기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들 사이에는 어떤 영향도 오갈 수 없다. 두 지점의 생명체들은 완전히 고립된 채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쉽게 생각하기 위해 우주를 2차원으로, 지평선을 패치(동그란 조각)라고 생각해 보자. 빛의 속도는 유한하므로 패치의 중심에 사는 관측자는 자신이 속한 패치 안에 있는 대상들하고만 신호를 교환할 수 있다. 다른 패치에 사는 생명체와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접촉이 불가능하다. 패치들이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배열되어 있으면 각 패치들은 이웃한 패치와 아무런 영향도 주고받지 않은 채 각자 독립된 세상으로 진화할 것이다. (우주 지평선은 원이 아닌 구의 표면이지만 그 외에는 똑같이 결론이 내려진다.)


대충 이런 패치 모양을 상상하면 된다. 각 패치는 우리가 사는 공간과 비슷하고, 이런 패치들이 무한히 나열되어 있다.


공간이 매우 크긴 하지만 유한하다면, 우리는 이 공간을 유한한 개수의 고립된 패치로 나눌 수 있다. 그 반대로 공간이 무한하다면 고립된 패치가 무한개 존재하게 된다.


이 중 임의의 패치에서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이 배열될 수 있는 가능한 조합의 수는 유한하다. 그리고 우주가 무한히 크면 패치의 수는 무한개이다. 여기서 이멜다의 사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수 있다.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유한한데 시행 횟수가 무한히 많아지면, 각각의 경우는 무한 번 나오게 된다. 즉, 무한개의 패치들이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면 입자의 배열이 완전히 똑같은 패치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우주가 무한히 크다면 똑같은 패치가 '어딘가에 있는' 정도가 아니다.
이런 우주에는 패치의 수도 무한대일 것이므로
완전히 똑같은 패치가 무한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종 결론이다.


이 관점을 수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패치와 입자 배열이 완전히 똑같은 다른 패치가 존재한다면, 그 세계는 모든 것이 우리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가 무한히 크다면, 지금의 당신과 같이 행동하면서 당신과 동일한 실체를 느끼는 존재가 우주 어딘가에 또 있다는 뜻이다. 무한한 우주에는 당신과 똑같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복사본이 무한히 존재하며, 이들 중 어느 것이 '진정한' 당신인지 판별할 방법도 없다. 모든 버전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70p)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렸던 모든 결정은 입자들을 어떤 특별한 배열 상태로 만든 것에 해당된다. 길을 걷다가 좌회전을 했다는 것은, 내 몸을 이루는 입자들이 일제히 왼쪽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며, 우회전을 했다면 그 입자들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네'라고 말했다는 것은 뇌와 입술, 목청 등을 이루는 입자들이 일제히 하나의 패턴을 따라 움직였다는 뜻이고, '아니오'라고 말했다면 그 반대의 패턴으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모든 가능한 행동들, 당신이 내린 모든 선택은 어딘가 다른 패치에서 이미 행해졌거나 앞으로 행해질 것이다. 어떤 패치에서는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으며, 또 어떤 패치에서는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패치에서는 입자의 배열이 우리와 아주 조금 다른데, 그 효과가 누적되어 완전히 다른 환경이 조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패치에서는 입자의 배열이 생명체의 조성과 전혀 딴판으로 이루어져서, 적어도 우리가 아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71p)


물론 내가 그랬듯이, 이렇게 내려진 결론이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중간에 무언가를 잘못 가정했기 때문에 내려진 결론은 아닐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고 싶을 것이다.


우주 지평선 바깥에서 물리학의 법칙이 돌변하지 않을지, 입자가 우주 전체에 걸쳐 존재한다는 가정이 잘못되었다거나, 또는 '우주 지평선 바깥에서 물리학의 법칙이 돌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이라든가, '우주가 무한히 크지 않고 유한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들을, 브라이언 그린은 그다음 장들에서 증명해 보여준다.



물론 천하의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수학을 무한정 믿지는 않았듯이, 다중우주의 가설 또한, 수학을 너무 신중하게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충분히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는 시간이 더 흘러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중우주는 정말로 존재하는가?
나도 잘 모르겠다. 결과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한계를 파악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하고,
광대한 진리를 찾으려면 합리적인 이론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아무리 낯설고 이상한 세계로 인도한다 해도
수학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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