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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Apr 14. 2024

삶의 장애물에 맞서는 방법

Ray & Monica's [en route]_144


연극, <2014년 생>

서울로 부터 약 11,200킬로미터(약 6,965마일)의 지구 반대편인 멕시코 라파스에 있는 저희에게 때때로 한국의 일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 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곳의 소식을 접할 때 마다 그저 기뻐하거나 침통해할 뿐, 가족의 일들조차 아내와 나는 자기장 밖의 일처럼 무기력하다.


나는 작년 5월 큰딸, 나리( @naa.ri )가 연극 '오프 OFF'를 끝내자 마자 한국을 떠났다. 모티프원( @motif.1 )의 운영을 비롯한 내가 지고 있던 모든 번다한 일들은 큰딸의 일이 되었다. 


딸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 딸이 외길로 걸어왔던 일, 배우라는 일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이 아닐까 염려가 되긴했다. 모티프원의 일만으로 얼마나 벅찬 일인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떠난 뒤에도 몇 편의 연극을 올림으로써 나의 염려를 군걱정으로 만들었다. 두어 달 전에도 4월에 연극을 올릴 거라고 귀띔해 주었었다. 그 연극을 지금 하고 있나 보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4월 13일(토), 14일(일) 14시)에서 올려진 '214년 생(송김경화 작/연출)'이다. 이 연극은 세월호 참사에 관한 성찰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진실은 가라앉고 애도는 통제당했던' 그 해에 태어난 한 존재와 2014년 단원고 생존자들의 만남을 통해 애도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이 어떻게 서로를 연결하는가, 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업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의 슬픔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통한에 함께 다짐했던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기억의 풍화작용에 맡기지 않겠다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연극은 2023년 '제1회 이영만 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극작과 연출을 함께 해온 송김경화의 집필로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아내와 나는 딸의 연극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바하칼리포르니반도의 최남단, 로스카보스Los Cabos를 함께 여행했던 멕시코시티의 우남대학교(UNAM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 연극과 교수이자 연극연출가와의 대화를 상기하는 것으로 달랬다.


Morris 교수님은 심리학을 전공한 Arianna 따님과의 2주간의 연말 여행이었고 우리와 여정이 같아서 7박 8일을 함께했다. 그중 4박 5일은 교수님의 차에 우리가 편승했으며 나중에는 한 식구 같은 친밀감이 생겨 2박은 같은 방을 사용했다.


대화가 끊이지 않는 74세의 아버지와 30살 딸과의 여행은 세대 간의 장벽을 허무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누가 먼저 제안한 여행인가?

"(딸) 함께 계획했다."

-따님은 남자친구가 있나?

"(딸) 있다.

-남자친구 대신 기꺼이 아버지와의 여행을 택한 따님의 효심은 아버지의 좋은 가정교육 때문인가?

"(아버지) 딸은 내게 언제나 착한 소녀였다. 그것은 교육과 관계없는 천성이다.

-다른 식구들은?

"(딸)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결혼하신 적이 없다. 몇 년 전까지 여자친구와 함께 사시면서 저를 낳았다. 엄마에게는 아버지에게 오시기 전에 낳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그 아들이 엄마를 챙긴다."

-아버지는, 그리고 딸은 부녀가 함께 여행하니 어떤 점이 각별한가?

"(아버지) 취향이 비슷하고 갈등이 없다."

"(딸) 길 위에서도, 카페에서도, 숙소에서도 언제나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여정에서는 어떤 내용의 대화였나?

"(딸) 여행지의 기분에 따라 늘 과거가 소환된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릴 적 추억, 나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당신이 한국에서 오셨으니 나도 한국과의 인연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남자친구의 동생이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오, 어디에 살고 있나?

"(딸) 지금은 벨기에에 있다. 그러나 3가지 옵션을 두고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벨기에 남을지, 한국으로 갈지, 아니면 멕시코로 돌아올지에 대해..."

-행복한 고민이다. 그 모든 곳에서 살아보면 좋을 듯...

"(딸) 시간이 그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멕시코의 대학교수는 언제가 정년인가?

"내 경우는 정년이 없다. 내가 원할 때까지 강의를 할 수 있다."

-그럼 언제까지 강의를 계속할 예정인가? 일을 놓고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생각은 없나?

"(아버지) 내 일이 너무 즐겁다. 그래서 은퇴보다 일이 행복하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이상 이렇게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자유를 누린다."

-맞다. 할 일이 없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람인 것 같다. 당신은 보람을 통해 행복을 발견하는 것 같다. 당신은 연극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연출도 하는 사람이다. 연극은 다양한 인생의 스펙트럼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하니 연극이야말로 인생을 성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평생 연극을 가르치면서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버지) 그 물음이 셰익스피어를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작품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단지 잘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명쾌하게 정의해 주었다. '잘 사는 것이 어렵다'라는... 교수님이 생각하는 삶의 장애물에 맞서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버지) 사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고 누구에게도 가르칠 수 없으며 답은 모두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I believe that there is no single way to live and that no one can teach anyone and everyone has to find the answer within themselves.)"

-당신이 연극 연출가이면서 연극을 강의한다고 해서 놀랐다. 내 딸이 연극을 전공했고 배우이다. 좋은 배우의 자질과 태도는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사람들과 관계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흥미를 느끼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It is to be true to yourself and to be interested in all the things that happen in the world with people and with all the problems in the world that interest you.)"

-딸에게 전하겠다. 배우 딸에게 나는 어떤 태도여야 하겠는가?

"아무 말도 안 해도 될 것 같다. 오히려 직업적으로 응원해 주고 딸이 하는 일을 즐기고 그녀를 많이 존중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I think you don't have to tell her anything, but rather support her in her profession and enjoy what she does and respect her a lot.)"

-당신이 아버지와 여행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겠다. 당신은 멋진 아버지와 여행하고도 싶지만 좋은 스승과 여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딸)ㅎㅎㅎ 맞다."


●연극 오프 OFF, "노동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https://blog.naver.com/motif_1/223095976578

●이영만연극상

https://blog.naver.com/motif_1/223021814521

●<2014년 생(송김경화 저, 아를 간> 도서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5650723



#214년생 #이나리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로스카보스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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