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tif Apr 20. 2024

아버지와 엄마의 남편

Ray & Monica's [en route]_147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제법 했다는 저희 부부에게 당장 시간을 되돌려 40년 전쯤으로 되돌아가 출발점에 다시 선다고 해도 이 사람들처럼 액티브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생에서는 이미 따라잡을 수 없는 어나더 클래스의 여행자! 인생의 결혼과 이혼, 재혼, 그리고 이혼, 삼혼... 맞다. 부부가 인생을 동행하는 여정을 말한다. 옥스나르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옥스나르의 아버지는 5혼, 어머니는 3혼 째 비로소 서로에게 안정된 배우자를 만났다.


옥스나르가 우리에게 꿀 한 병을 주면서 말했다.


"아버지께서 직접 벌을 쳐서 생산한 양봉꿀입니다.“


나는 의문을 남겨놓고 지나갈 수 없어서 다시 물었다.


"파라스에 계시는 아버지 말이야, 라리베라La Ribera에 계시는 아버지 말이야?"


앞의 분은 옥스나르의 엄마, 재클린의 첫 번째 남편이고 뒤의 분은 현재의 남편을 말한다.

옥사나르는 단호하다.


"제 아버지는 단 한 분뿐이에요."

"엄마가 재혼을 하셨어도 우리는 현재의 엄마 남편을 아버지라고 부르거든."

"저의 몸을 만들어준 사람이 저의 아버지지요. 현재 엄마의 남편은 '엄마의 남편'이지 제 아버지가 될 수는 없죠."


우리가 옥스나르집에서 이곳으로 이사 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 옥스나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아버지께서 저희를 초대해 주셨어요. 저녁에 바비큐 파티를 할 겁니다. 오후에 모시러 갈게요."


우리 집으로부터 1.4km. 걸어서도 20분이 되지 않는 거리였다. 그날 오후 그의 아버지 댁으로 옥사나르를 따라나섰다.


옥스나르가 태어났을 때 옥스나르의 엄마 재클린Jacqueline은 17살이었고 아버지 카를로스Carlos는 19살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옥스나르가 태어나자마자 갈라섰고 어린 아기는 지금 살고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외할머니의 돌봄으로 자랐다. 자신도 기억할 수 없는 서너 살 무렵에 친할머니 댁으로 보내졌고 친할머니 댁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친할머님의 건강 때문에 큰아버지 댁으로 가서 살았고 그 후로도 친척 집을 전전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자 재혼한 새 가정을 꾸리면서 새로운 출산과 양육으로 옥스나르를 거둘 처지가 아니었다. 옥스나르는 혼인이 지속되지 못한 조혼 가정의 피해자가 된 셈이다. 친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옥스나르는 각기 다른 가정에서 자라면서 겪었을 정서적 격변은 짐작대로이다.


그도 19살에 첫 여자친구에서 얻은 딸의 아빠가 되었다. 학업을 위해 고향 라파스를 떠나 멕시칼리로 갔던 대학교 1학년생의 그에게 아빠와 가장의 무게가 실린 것이다. 하지만 이 동거는 출산 후 1년 만에 결별 수순을 밟았다. 헤어진 후에도 혈육을 책임져야 하는 도리와 의무가 뒤따랐고 딸의 양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국 수의학 공부를 마칠 수 없었다. 몇 년 뒤 직장에서 만난 또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이 여자친구와의 동거에서 두 아들을 얻었다. 그 사랑도 5년 만에 깨지고 1년 반전에 홀로 라파스로 돌아왔다.


32살의 옥스나르는 두 명의 전 여자친구와 세 아이가 살고 있는 1,400km 북쪽 멕시칼리를 향해 수시로 눈물짓는다. 헤어진 여자친구는 잊었지만 세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더불어 양육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 항상 그의 시간을 옥죈다. 이 모든 긴장 상태는 그의 내면을 압박했고 심리상담사의 조력을 받아 균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옥스나르와 함께 수시로 그의 친척과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 중 조혼 후 재혼, 혹은 이혼 상태인 경우가 흔하다. 초면의 소개에서 누구와 누구의 관계를 설명할 때 내가 헛갈려 하면 옥스나르는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It's Mexican style!”


옥스나르와 함께 20분 거리 10여 블록 정도 떨어진 옥스나르 아버지 댁까지 가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거리마다 그의 어릴 적 추억으로 가득했다. 친구를 만나러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집을 잃고 경찰관의 도움을 받았던 곳, 여러 명의 친한 친구로 기억되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공터를 지나 자신의 생일 피티에 초대했던 중학교 동기 여학생의 집 앞에도 잠시 머물렀다. 그녀는 결혼했지만 그가 기억하는 그 집에 살고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ᐧ아버지 역할을 대신해 주셨던 그의 할머니ᐧ할아버지 댁에 닿았다. 그 집은 큰 나무로 울창했다. 조부모 두 분 모두 돌아가신 뒤 빈집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 모두에게 공동 상속되었으며 매물 리스트에 올라있다. 그는 철 담장 너머의 모서리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곳이 제 방이었어요."


그 집 옆집이 큰아버지 집이고 큰아버지 집 옆집이 아버지 집이었다.


#조혼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라파스 #세계일주 #모티프원

작가의 이전글 어느 구두수선공에게 이해되지 않는 질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