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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Apr 21. 2024

카를로스는 왜 다섯 번이나 결혼을 했을까?

Ray & Monica's [en route]_148


인생 요리사, 카를로스의 바비큐 파티



자신의 집과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한 것을 안 옥스나르의 아버지, 카를로스Carlos가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바비큐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옥스나르와 함께 골목마다 빼곡한 옥스나르의 추억을 반추하며 걷다 보니 카를로스 집까지 가는데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지만 옥사나르는 아버지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옆집 큰아버지 댁을 먼저 노크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세요. 안수와 민지 부부입니다."

옥스나르가 큰아버지께 우리를 소개했다.

"그럼, 여행을 오신 건가요?"

"네. 전 은퇴한 아내가 여행을 간다길래 저도 서둘러 일을 정리하고 따라나섰습니다."

"멕시코에는 얼마 동안이나 머물렀나요?"

"멕시코시티에서 40일, 그리고 티후아나에서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를 종주해서 오늘 선생님 댁까지 오는데 174일이 걸렸습니다."

"100일 너머 계셨으면 이미 멕시코를 알만큼 아시겠네요. 그렇지만 과나후아토와 미추아칸은 가지 마세요."

"왜요? 우리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그곳인데요."

"위험해요. 몸을 잘 보존해야죠."

"그곳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이 위험한 곳인지는 뉴스로 확인할 수 있잖아요."

페르난도Fernando는 가정의였다. 그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느라 진료실 밖의 소식은 주로 미디어에 의존하는 것 같았다. 가보지 못한 곳의 인상은 미디어가 전하는 몇 가지의 사건을 통해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내 카를로스 집에 도착했을 때 저녁 8시가 가까워서였다.

카를로스가 '퀸 Queen'이라 부르는 부인 루피타Lupita와 '프린세스Princess'인 딸, 카밀라Camila와 함께 우리를 맞아주었다. 모두는 이미 옥스나르집에서 만났던 구면이었다. 카를로스는 먼저 집안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먼저 와인으로 건배를 하고 준비 중인 특별한 요리 재료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야생 사슴고기에요. 지난겨울에 직접 사냥해서 손질한 다음 별도의 냉동고에 보관해두었던 것이죠. 먼저 사슴고기구이부터 시작할게요."

사냥 쿼터를 사서 매년 한 마리를 잡아 얼려두었다가 1년 내내 먹는 고기를 우리를 위해 기꺼이 녹였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그동안 그는 사슴고기를 주방의 가스불로 프라이팬에 익혀왔다. 그것은 와인 안주였다.

지난 연말에는 한 잔의 술도 먹지 마시지 않았던 14살의 카밀라에게도 아버지는 와인 한 잔을 따랐다. 그녀는 한 모금 입을 적시고 잔을 내려놓으면서 왜 이런 걸 마시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카를로스는 바비큐 그릴에 장작을 올리고 불을 지폈다. 사슴고기처럼 간편하게 가스에 굽고 자리에 함께 하자고 했다.

"요리는 저의 즐거움에요. 즐겨만 주세요. 이 나무는 팔로 피에로 Palo fierro인데 아주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예요. 이 장작은 고기에 독특한 스모키한 향을 더해주어요. 가스불이 아니라 바비큐를 해야 하는 이유죠."

양념한 닭날개 구이를 내놓았다. 장작구이만의 향이 그윽했다. 그는 투명한 데킬라 병을 보여주며 따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의 표정에는 이것이 본령이다, 하는 부드러운 강요가 담겼다. 내민 길고 깊은 잔을 받아들자 잔이 찰랑거릴 만큼 따랐다.

"첫 잔은 한숨에 마셔야 해요. 그것이 멕시코 주법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주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단숨에 마신 다음 내 머리 위로 잔을 올려 뒤집어 보여주었다.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잔을 채웠다. 따라 해보라고 했다.

"Pa arriba, pa abajo, pal centro y padentro(위로, 아래로, 가운데로, 그리고 안으로)!"

함께 잔을 그 구령대로 움직인 다음 단숨에 마셨다. 건배의 방식까지 한국인의 기질과 이렇게 닮은 꼴인지...

멜리사 Melissa가 합류했다. 루피타가 그녀를 소개했다.

"저의 첫딸입니다. 카밀라의 언니에요. 31살 고등학교 스페인어 선생으로 이 집과 인접한 곳에 홀로 독립해서 살고 있어요."

멜리사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저는 엄마와 멕시칼리에서 단둘이 살고 있었죠. 그런데 엄마가 사랑을 찾아서 먼 곳으로 가신다는 거예요. 저도 엄마를 따라나선 거지요"

"하지만 친구도 친척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어요?"

"16살의 제가 홀로 남을 수는 없잖아요. 멕시칼리를 떠나는 것이 몹시 싫었지만 엄마의 운명에 동승할 수밖에요. 그래서 지금도 1년에 두 번 친구들을 만나러 멕시칼리로 갑니다."

멕시칼리에서 10년을 산 옥스나르에게 혹시 루피타와 아버지의 사랑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물었다.

"아니요! 저는 두 분의 사랑이 성사되어 루피타가 라파스로 오시고 카밀라가 태어나고도 5년이 지난 뒤에 멕시칼리로 갔어요."

카를로스가 다시 연어 바비큐를 가지고 테이블에 합류했다.

"여왕님과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데이트 앱의 도움이었어요. 내가 루피타에게 말을 걸었고 여왕님이 호응을 한 거였어요."

루피타가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카를로스가 멕시칼리로 날아왔어요. 많은 얘기를 나누고 돌아갔고 그가 다시 나를 라파스로 초청했지요. 이곳에 와서 그와 데이트를 하고 멕시칼리로 돌아갈 때 말했죠. '짐 싸서 올게!'"

"이미 4번을 결혼했던 남자와 재혼을 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나요?"

"카를로스와의 사랑을 따르기에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았지요. 멕시칼리의 내 일들도 모두 접어야 했고 멜리사가 라파스의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죠. 그러나 카를로스를 차지하는 최종 승자가 되어보자고 결심을 하고 이곳으로 왔어요. 버리는 것이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잖아요."

"15년 전의 그 결정에 후회는 없나요?"

"그 결정은 현명했어요. 그는 나를 여전히 여왕으로 예우하고 멜리사도 잘 적응해서 독립했고 카밀라도 이렇게 잘 자라고 있으니... "

더욱 흡족한 표정이 된 카를로스가 작은 오크통을 들고나왔다.

"이것은 우리가 할리스코 주의 데킬라 마을로 결혼기념 여행을 갔을 때 데킬라를 숙성하는 통을 구입하고 우리 두 사람의 성, 라미레즈Ramirez와 투린시오Turincio를 통에 새겼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 오크통속의 술처럼 잘 숙성되기를 원했죠 데킬라를 넣고 6개월을 두면 알코올이 나무와 상호작용하여 맛과 향이 만들어집니다."

오크통속의 브라운 데킬라를 두어 잔 비웠을 때 낡날개와 연어를 바비큐 하는 동안 만들어진 숯위에 프라이팬을 얻어 조리한 '갈릭 버터 새우(Garlic Butter Shrimp)'가 서빙되었다. 올리브오일을 가열하다가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을 때 직접 손질한 새우를 넣어 조리했다. 그 향미는 오크통을 모두 비워도 모자랄 맛이었다. 도대체 이런 요리 솜씨라면 52살의 카를로스에 대한 여성들의 도전에서 루피타가 최종 승자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성급하다 싶을 정도였다. 이 솜씨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물었다.

"관광선의 셰프였어요."

라파스에는 에스피리트 산토섬(Isla Espíritu Santo)섬을 비롯한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안내하면서 모든 음식을 제공하는 관광선이 발달한 곳이다. 그는 이런 배를 책임졌던 프로페셔널 셰프였던 것이다.

이날 밤 옥스나르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분은 요리를 너무나 즐겼다. 바비큐를 진행하면서 홀로 불을 조절하고 긴 잔에 가득 술을 따르고 연거푸 원샷을 부추겼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술을 삼가해 왔고 여행 중에도 웬만하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은 카를로스가 권하는 모든 술을 사양치 않았다. 와인으로 시작해 투명한 데킬라, 오크통속의 주황색 데킬라, 맥주에 토마토주스와 핫소스 같은 여러 가지를 넣은 미첼라다Michelada까지 모든 것이 달았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취기를 경험했다.

결국 결혼을 왜 다섯 번이나 해야 했는지는 묻지 못했다. 사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너절한 일로 채워지는 일상이다. 간혹은 단호해지려고 마음을 굳게 다잡곤 하지만 결의가 단단할수록 쉬 깨지고 만다. 간혹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난날들에서 방황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너무 늦은 밤길은 피해야겠다는 작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파티는 자정을 넘고 말았다. 걸어가겠다는 우리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는 이미 차 시동을 걸어두었다. 카를로스가 나보다 더 많은 데킬라를 마신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 차에 올랐다.

카를로스의 다섯 번의 결혼도 작심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흐름이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그렇듯 나는 또 다른 단계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wP989Z_1GHM

●아버지와 엄마의 남편,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https://blog.naver.com/motif_1/223421596867


#결혼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라파스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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