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tif Jul 06. 2024

64세 은퇴 여성의 멕시코 사막 '산악 자전거대회' 참

Ray & Monica's [en route]_187


2024년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주 산악 사이클링 선수권 대회

우리 부부는 몇 개월간의 정주를 위해 멕시코 라파스 로스 올리보스(Los Olivos) 마을로 이사 온 직후 우리가 머무는 동안 자전거를 빌릴 수 있을 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웃 자전거 수리점을 방문했다. 세르히오(Sergio)와 마릴루(Marilu)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이 동네에 3, 4개월쯤 머물 예정입니다. 그동안 탈 수 있는 자전거가 있을까요?"

우리의 물음에 세르히오 씨가 말했다.


"중고자전거는 빌리는 거나 사는 거나 비용은 비슷합니다. 싸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에게 기증된 자전거가 한 대 있습니다. 바퀴 사이즈가 작고 오래된 자전거이지만 원하시면 낮은 안장은 조절해 드릴게요. 대신 무료로 타세요."


낯선 동네로 처음 이사 온 날, 동네도 사람도 모두 낯선 곳에서 심성 고운 부부를 만난 것이 자전거를 얻게 된 것 보다 더 안심이었다. 세르히오 씨는 MTB 선수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부부가 함께 MTB클럽인 게레로스 데 오스 사이클링 클럽(Club de ciclismo Guerreros de Dios)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저녁 5시부터 몇 시간씩 사막 산을 달리는 그 클럽의 활동에 참여했다.


아내의 참여로 8세부터 25세까지였던 멤버들의 나이 영역이 64세까지로 확장되었다. 아내는 빌린 자전거로 MTB 훈련에 참가하고 나는 트랙이 있는 주변 산들을 트래킹 했다.


짧게는 수 km에서 길게는 100km가 넘는 트랙까지 라파스 주변 사막산에는 MTB 트랙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MTB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서 저녁시간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막산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냈다.


이 클럽에서는 라파스의 각기 다른 지역에 위치한 4개의 트랙을 날짜별로 달리해서 달렸다. 아내는 바위와 거대한 선인장들 사이로 난 좁은 트랙을 달리는 것에 매료되었다. 내게도 홀로는 올 수 없는 사막 산에서 라파스만 너머로 지는 노을을 감상하며 걷는 것은 매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찬란하지를 증언하는 장엄한 세리머니였다. 감정이 격해지는 감동의 순간에는 종종 발길을 멈추었다.  노을이 박명으로 바뀌고 도시의 불빛이 밝아지는 모습을 내려보는 것에 완전히 마음이 홀렸다. 달빛을 따라 산을 내려와 다시 도시로 돌아오면 마치 인간의 영역이 아닌 곳을 여행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참여하는 청소년들 중에는 장래희망이 MTB 선수인 이들이 여럿이었다. 아내는 다리와 얼굴에 매일 상처가 늘어갔지만 산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일주일에 6일을 달리는 훈련에 참여한지 2달이 넘었을 때 세르히오 씨가 말했다.


"민지! 이번 달 4번째 일요일에 MTB대회가 있어요. 민지도 함께 참여해 보지 않겠어요?"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주에서 열리는 '2024년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주 산악 사이클링 선수권 대회(Campeonato estatal de ciclismo de Montaña 2024, 2024 state mountain cycling championship)였다.


아내는 며칠을 망설였다. 겨우 2달 연습한 나이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가 대회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를 걱정했다. 내 생각을 얘기했다.


"당신이 참가하면 이 대회가 국내대회에서 국제대회가 되는 셈이니 대회를 빛내는 일이지. 게다가 당신은 남을 이기려고 라이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려고 하는 거잖아요?"


다음날 아내는 참가등록을 하고 왔다.


그 대회 날이 지난 6월 23일이었다. 새벽에 5시에 집을 나서서 경기장인 샤크 트랙(Pista Shark)으로 갔다.

어린이와 청소년, 남자 프로, 일반중급, 여자프로, 일반중급 등 선수 14개 부문으로 세분화된 경기가 아침 7시부터 진행되었다.  3,4살짜리 아이들이 페달도 없는 자전거를 발로 차며 가는 '기저귀'부문도 있어서 부모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우리 클럽에서 참가한 모두에게 세르히오가 당부했다. 


"사이클링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단련하는 것이야. 그러니 모두들 최선을 다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면 안돼. 완주가 제일 중요하다."


아내는 여자초급 부문에 참가했다. 6km의 다섯 개 사막산을 한 바퀴 도는 트랙이었다.


출발 전에는 아내가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출발선을 떠나 아내가 산속으로 내 시야를 떠나고부터는 그 긴장이 내 몫이 되었다. 완주는 가능할지... 27분이 지나자 함께 출발한 여성이 들어왔다. 그로부터 10분이 지나도 아내의 모습이이 보이질 않았다. 긴장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배낭에 물을 넣어가려던 것을 두고 가라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탈수로 중간에 쓰러지지는 않을까?" 몇몇의 다른 여성이 들어오고도 다시 10분이 지났다. "길을 잘못 드는 것은 아닌가?" 어린이용 같았던 아내의 자전거도 뇌리에 아른거렸다. 걱정은 다시 후회로 바뀌었다. 분수를 모르고 괜히 참가를 부추긴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피니시 라인에서 눈을 떼려고 할 때 드디어 멀리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과는 달리 탈진한 모습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기록을 보니 56분이었다.


"중간에 갈림길이 있어서 헛갈렸어요. 다른 길로 가려는데 세르히오가 그곳을 지키고 있다가 바른 길을 알려주었고 가파른 바위 오르막을 겨우 오르고 장애물을 넘다가 앞으로 꼬꾸라졌지만 바로 일어날 앞으로 달렸어요. 죽어라 달리니 수영으로 아팠던 어깨도, 태양빛으로 아팠던 눈의 통증도 간 곳 없이 사라졌어요. 앞만 보고 달렸더니 골인지점이었어요." 


부문별 5등까지 시상하는 현장에서 함께 달렸던 여성들과 비로소 얘기를 섞을 수 있었다. 20대에서 50대까지 10여 년 이상 사이클링으로 건강을 도모해온 대단한 여성들이었다.


세르히오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자부분 최고령이 52세였어요. 60대는 민지밖에 없어요. 당신은 완주만으로도 여전사예요."


아내도 세르히오에 대한 넘치는 감사를 전했다.


"당신과 함께하는 훈련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이 기쁨을 언제 다시 느낄 수 있을까요? 이제 앞으로의 우리 여정에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힘들게 여겨지지도 않을 거예요."


참가 넘버 'VF183'은 아내의 자부심이 되었다. 


●근육의 반란, 행복한 진압

https://blog.naver.com/motif_1/223446162690

●수영과 MTB

https://blog.naver.com/motif_1/223487070130

●내가 치열한 이유, 꼴찌의 효용

https://blog.naver.com/motif_1/223473474697

●사막에서 홀로..., 라파스의 BMX 트랙

https://blog.naver.com/motif_1/223437039210


#2024년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주산악사이클링선수권대회 #산악자전거 #MTB #라파스 #멕시코 #10년세상순례 #모티프원 #인생학교


                    





작가의 이전글 여행자의 배낭을 비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