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04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아내가 홀로 한 시간을 통곡한 이유'를 읽으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께서 힘을 북돋는 말씀과 함께 길을 갈 수 있음에 대한 축복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한 분은 '톨스토이가 눈물을 흘린 100가지 이유'라는 책을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공감능력'때문이라고요. 그래서 또 살아갈 수 있다고요.
지인 작가님께서는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집이 있다는 것으로 울수 있는 건 축복'이라고, 그리고 '민지님 보고 싶다'는 말로 위로를 주셨습니다. '톨스토이가 눈물을 흘린 100가지 이유'라는 책은 그래픽 아티스트인 까쨔 구씨나씨가 러시아문학의 거장 ‘톨스토이’가 울보였음을 말한 뒤, 콜라주 방식의 그래픽으로 그의 울음의 이유를 추적합니다. 찌질한 울음까지도... 이 울음들은 창작의 동력이며 약자를 포용하고 부패와 부당 함에 맞설 힘이었습니다.
그의 울음 사례 중 하나는 고향이 그리워서 울었던 얘기입니다. 이미 작가로도, 귀족으로도, 상류층 젊은이로도 살아보고 그 모든 것에 실망한 톨스토이에게 그의 큰 형은 캅카스 지역의 군에 입대하라고 제안합니다. 그 충고를 수용한 그는 입대해 캅카스의 한 마을에 머물게 주둔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러시아를 떠난 지 40년 가까이 된 한 농노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남자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된 톨스토이는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를 그리며 눈물을 터뜨리게 됩니다. 톨스토이를 통해 '울 수 있는 건 축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또 다른 분은 홀리 헌터의 예를 들어주었습니다. 영화 '로드캐스트 뉴스(Broadcast News)'에서 제인 크레이그(Jane Craig)라는 뉴스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아침마다 티슈 한 곽을 다 쓸 만큼 펑펑 우는 습관이 있었답니다. 그래야 남은 하루를 깔끔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요. 이렇게 통곡의 효용과 효능을 알고 그것을 매일 복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즘 은퇴 후 삶의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다는 분께서는 노년에 함께 같은 길을 가는 파트너가 있음의 은총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을 꾸준히 해오신 분께서는 최근 인도네시아 중앙자바주 족자카르타 불교 사원, 보로부두르(Borobudur)에 다녀오신 얘기를 주셨습니다.
이 사원은 불교 우주론을 감각의 영역(Kāmadhātu), 형의 영역(Rūpadhātu ) 그리고 무형의 영역(Ārūpyadhātu)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불교적 가치를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로 설계하고 건축해 조각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구현해 둔 곳입니다.
수행 때문에 그리움을 참는 것에 안타까워하시면서 "왜 그런 수행을 하는지..."에 대해, 기도는 하면서 종종 부족했던 이해를 풀고 싶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 동기와 이유는 각각일 테지만 저희는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불가의 출가자들이 지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유와 쾌락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내적 평화와 충만이지요.
당연한 사회적 의무로서 직장, 육아, 봉양의 의무를 마친 저희들은 '일상'이라는 열차에서 내려서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비추어보자는 마음으로 한국을 떠난 것입니다. 은퇴전에도 비슷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가속도가 붙은 '일상'이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매번 관성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절감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은퇴라는 제도에 힘을 빌려 겨우 질주하던 일상의 궤도에서 탈주할 수 있었습니다.
수행의 방법으로 면벽대신 길 위에 있기를 택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저희가 길 위에서 조우한 한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하는 것이 더 명쾌한 설명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태 전, 미국 LA의 아이롤로 스트리트(Irolo St)를 걷다가 스님과 대좌했습니다.
기꺼이 저희를 환대해 주신 스님께 저희를 먼저 소개 드리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저희는 생업으로서의 일을 하다가 은퇴하고 집에 앉아 공부하는 대신 아직 무릎이 성할 때 행선(行禪)을 위해 나라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무릎이 아파질 때까지 순례를 계속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부유하며 사람과 자연의 존재방식과 관계에 관한 세상 공부를 적어도 10년 이상은 하고 싶습니다."
스님과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여전히 청년이시군요. 잘 오셨습니다. 저는 한국을 떠난 지 33년째입니다."
"불과 3개월 된 저희의 큰 스승이십니다."
"저도 견문을 넓히기 위해 나왔습니다. 지리산 반야봉에 칠불암이 있습니다. 김수로왕 일곱 왕자가 수행해서 성불했다고 해서 칠불암이 되었는데 제가 그곳에서 3년 동안 묵언정진했습니다. 공양을 위해 내려왔다가 채근담의 '덕수량진 양유식장(德隨量進 量由識長)'이라는 구절을 한용운 선생께서 주해한 것을 읽었습니다. '덕은 그릇(도량)으로 말미암아 커지고 그릇은 견문(식견)으로 말미암아 커진다. 우물 안 개구리는 태평양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고 사람은 보고 듣는 것밖에 생각을 못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낮다.'라는... 맞는 말씀이잖아요. 참선을 하더라도 세상 구경을 좀 하고 앉아있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망상이 일어난 직후 '속인 (俗人)'이라는 말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속되다'는 뜻의 '俗'자는 사람인 변(亻)에 계곡 곡(谷) 자로 만들어진 글자인데 이 뜻글자 속에 담긴 의미가 바로 '계곡에 앉아 있는' 나를 두고 한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계곡을 나가 세계 일주를 하는 원력(願力)을 세웠어요. 그렇게 나와서 38개 국가를 포행하고 유럽 2번, 중국 10번, 일본 10번, 북한에도 가서 북한의 시골까지 두루 둘러보았죠.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반야사(Prajna Gate Buddhist Temple)의 현철(玄徹) 스님보다 그 이유를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스님의 이 말씀은 저희의 이 길이 고된 오르막으로 느껴질 때 여전히 힘을 주는 지팡이가 되고 있습니다.
출가 스님들과 달리 재가 수행자인 저희에게 그리움은 여전히 중요한 원심력이 되고 있습니다. 무한의 공간으로 흩어지지 않고 가족과 친구, 이웃의 사회적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잡아주는... 그 그리움이 우리의 모천회귀(母川回歸)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아내가 끓인 삼계탕으로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 맛은 이 숙소의 동료들이 보증했습니다. 한 그릇씩 맛을 본 기타리스트인 데이비드(David)가 말했습니다. "천상의 맛이야!" 조각가 루이스(Luis)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새로운 정보를 주었습니다. "만약 인삼이 필요하면 분말을 파는 곳을 알려줄게!"
아내는 오늘 어제의 통곡은 잊고 칵치켈 마야(Kaqchikel Maya)인인 마틸다(Matilda)가 자신과 같은 옷을 입자며 선물로 내민 우이필(Huipil)를 입고 함께 헌 우이필을 가방과 숄로 업사이클 하는 일에 빠져있습니다.
●아내가 홀로 한 시간을 통곡한 이유
https://blog.naver.com/motif_1/223770241422
●반야사에서 구한 '반야'
https://blog.naver.com/motif_1/22318239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