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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10. 2021

(취업스토리1) 꿈을 버린게 아니야

 꿈을 찾기위한 연결고리

 20년이 넘도록 버리지 않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우주여행(둘리의 학습여행)"이라는 책이다. 너무 많이 읽어서 겉표지는 너덜너덜하고, 일부 페이지에는 아직 유치원생이었던 내가 남겼던 낙서들도 남아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책은 노랗게 변해있고, 책을 넘기다 보면 오래된 단어들도 쓰여있다. 너무 많이 읽어서 내용을 외우고 있다. 나에게 계절이 왜 생기는지 알려주고 태양이 왜 뜨거운지 알려주었다. 책이 재밌어서 천문학이 좋아졌는지, 천문학이 좋아서 책이 재밌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천문학자라는 꿈을 심어준 것은 이 책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에게 꿈을 심어준 소중한 책이지만, 한 때 그 책을 버릴까 했던 적이 있었다.


 장래희망은 항상 '천문학자'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 우리나라에 첫 우주비행사가 나왔을 때 열광했고, 나로호 발사에 실패했을 때 함께 슬퍼했다. 고등학생 때 '별볼일'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관측 실습을 하러 강원도를 갔었다. 수능을 보는 해에 금성이 태양을 통과하는 금성 일면통과가 있었다. 수능이 대수인가! 다음 금성 일면통과가 2117년이라는데. 선생님들이 천문학은 취업이 어려울 거라고 공대를 추천했지만, 아무도 나의 꿈을 꺾지는 못했다. 결국 천문학 관련 전공으로 대학교를 진학했다. 전공 수업에 만족하지 않고, 학구열을 불태웠다. 관측 동아리에서 변광성(밝기가 변하는 별)을 주제로 연구했다. 며칠 밤을 새워 관측하고, 또 몇 달 연구해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천문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했다. 동경하던 고흥의 나로도에서 인턴 생활도 하고, 소백산 천문대에서 겨울 방학 수업도 들었다. 졸업 후에  당연하게도 대학원에 진학했고, "달 탐사 연구실"에 소속되었다.


 처음 한 학기는 행복했다. 연구하는 것은 재미있었고, 달 관측은 순조로웠다. 새롭게 배우는 지식은 달콤하고 더 욕심이 났었다. 매주 교수님, 박사님들, 한 명의 연구실 선배와 함께 정기 회의를 진행했다. 한 주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발표하고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었다. 아직 주어지는 연구 숙제가 쉬웠었고, 큰 어려움 없이 해냈었기에 회의시간에 칭찬을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어지는 숙제가 어려워졌다. 더 복잡한 구조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요구하였고, 제 때 숙제를 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매주 하는 회의가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회의가 끝날 때면 등 뒤는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지옥이 시작되었다. 제때 숙제를 하기 위해 주말에는 노트북을 짊어지고 카페에 가서 연구를 진행했다. (주말마저 연구실에 가기는 정말 싫었다.) 회의하기 전날에는 성공적인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고자 밤을 새웠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노트북을 닫고 연구실로 출근을 했다. 밤을 새웠지만 결국엔 실패해버린 시뮬레이션 결과와 함께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했고, 회의 때 어떠한 변명을 해야 할지 머릿속은 복잡했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였을 뿐,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했고, 결국엔 교수님께 큰소리로 혼이 났었다. 자신감은 점점 떨어져서 결국엔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10년이 넘도록 천문학자를 꿈꿔왔고 이루기 위해 달려왔는데, 꿈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건 한순간이었다. 자신감을 잃은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는 내가 정말 천문학자로서 자질이 있는가 의구심이 들었다. 시뮬레이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앞으로 연구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두려웠다. 시뮬레이션과 관련된 영어 논문을 계속 찾아 읽고 물리와 수학으로 이루어진 공식들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시뮬레이션은 못하는지 해답을 찾지 못했었다. 두 번째는 천문학자로서 미래가 걱정되었다. 주변 선배들을 보면서 논문을 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해내고, 그 결과를 논문이라는 글로 풀어낸 뒤에 그 분야의 권위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이미 내 자질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에, 논문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취업도 문제였다. 어떻게든 학위를 땄지만 원하는 분야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연구실에 취업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실제로 졸업 후에도 취업을 하지 못해 계속 연구실에 출근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한번 시작된 자질에 대한 의구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비탈길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했다. 울면서 연구실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털어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교수님께서 나에게 실망한 것 같고, 앞으로도 교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할 것 같다고 한바탕 고민을 털어놓았다. 부모님한테도 말해야 했다. 내가 꼭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설득해서 갔던 대학원이었다. 과거에 호언장담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죄책감이 들어, 첫마디를 꺼내는 것이 어려웠다. 마지막 관문인 교수님께도 망설임 끝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천문학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 밤이 되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필 내가 좋아했던 달과 별은 밤만 되면 환하게 보였다. 과거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아무도 천문학의 천문, 달의 달은 꺼내지도 못했다. 당장 취업이 문제였다. 천문학 전공을 선택했던 내 과거를 후회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취업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고, 관측 동아리에만 열중했던 과거도 후회했다. 취업준비를 하며 만났던 사람들이 나에게 전공이 뭐냐고 물었을 때, 천문학이라고 대답하지 않았고 복수 전공했던 수학이라고 대답했다. 왜 천문학을 전공했는데, 왜 여기서 이런 것들을 준비하냐고 물을까봐 두려워서 회피했다. 10년이 넘도록 키워온 꿈을 잃으니 공허했다. 그 꿈을 포기하고 나니, 인생의 목표가 사라진 것 같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취업은 해야 하니까  흥미 있는 다른 분야를 공부했고, 취업을 하긴 했어도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후로, 2년이 지났다. 생각을 전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나갔다. 그와 동시에 나의 과거를 되찾기 시작했다. 한 때 천문학자라는 꿈을 꿨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외길을 걸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과거를 되찾으면서 깨달았다. 대학원을 그만 둘 당시에 나는 꿈을 버린게 아니었다. 진짜 꿈을 찾기 위해서 다음 과정으로 가기 위한 연결고리였던 것이다.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리눅스나 포트란이라는 SW 개발 기술을 배웠다. Python으로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면서 데이터 분석을 배웠다. 또, 훌륭한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선택했던 수학 복수전공을 통해서는 통계를 배웠다. SW 개발과 데이터 분석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결국엔 천문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배운 기술들로 또 다른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아직 공허함이 남아있고, 나의 꿈이 무엇인지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10년 동안 천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SW 개발과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공부한 것들이 연결고리가 되어 나의 꿈을 찾아준 것이다. 꿈을 찾고 나면, 그동안 축적된 나의 지식들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된다면, 예전처럼 상처입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지금까지 축적된 나의 지식들이 앞으로 나가게 이끌어 줄 것이고, 새로운 꿈을 갖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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