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겐 처음 마주하는 몰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필요하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거닐다가 길거리의 악사에 이끌려 잠시 발걸음을 멈춘 기억이 있는가? 음악의 힘이란 이토록 위대하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의 발길을 잠시 잡기도, 목적지 없이 걸어가는 이의 목적지가 잠시나마 되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의 삶에 있어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 영화 코다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말해준다. 그저 십 대 소녀의 한여름의 꿈같은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삶의 목적이고 이유가 되어 줄 수 있다. 우리가 열광하는(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단순히 노래를 잘하기로는 대단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에 감동하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코다는 사람의 인생에 있는 이야기를 말해준다.
1. 루비, 인생을 이야기하다.
작중에서 루비는 합창부에 가입을 하게 되고 귀가 들리는 청인들 앞에서 처음 불러보는 노래에 불안한 마음이 겹쳐 도망을 가게 된다. 물론 이후에 "나는 노래가 하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고 이 마음은 미스터 V 에게 전달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코다는 미스터V의 "노래를 할 때 어떤 기분이야?"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지만 재차 돌아오는 질문에 자신이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수어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장면에서 따로 수어의 자막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마음이 몽글몽글 하다'라고 말하듯 이러한 기분은 뱃속이 부글부글 하기도 하고 구름 위를 두둥실 날아다니다가 어느샌가 포근하게 사라지는 느낌이며, 이루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어느샌가 내 몸 어딘가를 짜릿하게 만들어 주는 기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귀가 잘 들리고 말도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말을 '잘'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장면이었다. 텍스트로, 음성으로 내 이야기를 전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나의 느낌을 전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간혹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루비의 이 신체적 언어 묘사가 정답인 건 아니지만 어떤 수단이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느낌대로 말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미스터 V는 루비를 제대로 지도해볼 필요가 있는 원석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런 위대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정말 필요한 부분이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물론 지금의 코다는 그걸 잘 아는지 모르겠다.
2. 물속으로 뛰어들 용기
루비와 마일스는 미스터V의 지도하에 듀엣 곡을 연습하게 되고 처음 해보는 듀엣곡에 혹평을 들은 이 둘은 루비의 집으로 가 연습을 하게 된다. 떨리는 마음에 마주 보고 노래하지 못하는 루비는 등을 맞대고 노래하자는 마일스의 제안에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노래를 시작한다.
you're all i need to get by
노래가 주는 장점 중 하나는 노래를 듣고 부르는 그 순간은 모든 상황을 망각하고 노래에 빠져들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루비는 떨리는 마음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일스에게 고백하듯 마음을 살포시 던져놓았다. 이후 둘 사이에 해프닝이 있었지만 마일스는 거듭 사과를 하고 루비는 화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호숫가로 그를 데려간다. 여기서 '수영금지 표지판이 있는' 호숫가로 뛰어드는 마일스의 마음가짐과 루비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마음은 같은 표현이라고 보였다. 용기를 내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행동임과 동시에 그 상황을 바꿔내는 힘이란 것을. 또한 루비는 용서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게 된다.
이들은 몰 속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아주 조그마한 통나무라는 선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그 선을 넘는 순간 영화는 급전개 되어나간다. 인생에서 이러한 순간들은 수없이 많으며 누군가는 저때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그리워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러한 빛나는 순간순간은 절대 그 어떤 값으로도 매김을 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들이다. 나, 그리고 여러분은 이렇게 미묘한 순간들, 조그마하고 귀중한 순간이 어떤 것이 있는가 한 번쯤 질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3.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포기한다는 것
마일스와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 이야기는 신속하게 전개되어 나간다. 대입을 위해 미스터V 와 함께 연습을 하는 루비와 부모님의 일을 도우는 루비의 모습이 대비되어 나오며 그 일들은 결국 하나로 합쳐진다. 아빠와 오빠는 농인이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어부들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들을 위하여 유니온을 설립하고 그들만의 룰로 생선을 직거래하는 등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루비가 없는 이들은 '농인'이기에 불가능한 일들이 많았고 결국 루비에게 많은 것들을 의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루비는 미스터 V와의 약속에도 계속해서 늦게 되고 그의 스트레스는 극에 치달아간다. 물론 루비가 없는 가족의 삶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청인(귀가 들리는 일반인들, 영화에서 이들을 청인이라 번역한 것도 너무 좋았다) 들의 사이에서 지극히 일반적인 일을 해야 하는 농인 가족들은 너무도 많은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고된 뱃일을 끝내고 술 한잔 마시러 간 바에서 소통하지 모하고 헛웃음만 지어대는 모습과 생선 포장, 판매를 하며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 모두를 답답하고 힘들게 하였다.
위와 같은 일이 있어서일까 코다는 가족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계속 도울 수는 없다고 말을 하고 가족들은 루비가 없어서 느낀 옆자리를 더 크게 느껴왔던 터라 '네가 없으면 우리는 어떡하냐'라는 말을 뱉어낸다. 코다는 드디어 찾은 인생의 꿈이자 앞길에 흥분되는 마음을 뒤로하고 나를 일평생 사랑해주고 내가 일평생 사랑해왔던 가족을 위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여러 장면들이 지나가고 학교의 졸업무대로 장면이 전환된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노래들을 차분하게 불러낸 이들은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게 되고 루비의 가족들 또한 루비를 박수로 응원해준다. 많은 발표기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 중 하나는 아주 잠깐의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이러한 장면을 잠깐 보여준다. 아빠의 시점으로 돌아가 주변의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농인들의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불쌍하고 슬픈 게 아니다. 그저 함께 감동할 수 없음에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결국 공연이 끝나고 아빠는 루비와 함께 집 앞에서 잠시 시간을 갖는다. 귀로 들을 수 없지만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느꼈던' 아빠는 루비에게 가까이 와서 노래를 들려달라고 청한다. 루비는 온 마음과 감각을 통해 노래를 전달한다. 아빠는 루비의 심장소리를 목의 떨림을 그리고 공기의 울림을 느끼고 마음을 먹게 된다. 내 딸 루비는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하고 우리는 우리의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4. 노래를 잘한다는 것
both side now
루비는 알람 없이 일어난 다음 아빠가 깨우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게 되고 몰래 루비를 오디션장으로 보내려는 부모님의 노력에 오디션장으로 출발하게 된다. 다들 한껏 꾸미고 오디션장으로 왔지만 루비는 그냥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왔을 뿐이었다. 그저 나를 보여준다 라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공연장으로 올라섰다. 당연히 가사집이나 악보는 준비하지 못했기에 반주자는 반주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순간 미스터 V는 '잘 나가는 동문들'이 심사를 보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 반주자를 자처한다. 루비는 노래를 시작하고 긴장감에 노래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미스터 V는 자신의 실수인 척 반주를 틀리게 하고 루비와 눈빛을 교환하며 노래는 다시 시작된다. 그러한 장면 사이에 몰래 2층 관람석으로 들어온 가족을 발견한 루비는 노래를 '잘'하는 방법을 아는 듯 수화와 함께 노래를 다시 한번 시작한다. 앞선 장면에서의 말을 '잘'한다는 의미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잘 부르지만 제대로 '잘'불러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루비는 아빠에게 전달한 감동을 여기의 심사위원을에게도 전달해냈다. 영화는 흘러 청인들 사이에 적응한 가족들과 대학교에 합격해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에 루비가 떠나면서 이러한 손 모양을 하는데 "I love you"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그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사였고 '잘 지내' 나 '다녀올게'라는 말보다 더 간단하고 강한 표현인 것 같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사실 코다에 관한 평은 꽤나 갈리는 편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화인 건 맞으나 전개가 너무 빠르고 해피앤딩으로만 끝난 게 아닌가 하는 말이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화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받아들이는 것도 인생에 있어 필요한 순간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코다는 마음이 울적한 순간, 기분이 들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순간의 모든 때에 어울린다. 한 번쯤 이런 따뜻한 영화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평점 : 5점 만점에 4.0점
한 줄 : 이토록 따뜻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