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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Oct 27. 2024

새 것은 찬 것일까

에세이_7

충치가 생겨 치과에 갔다. 오래 전 '레진'이라는 이름으로 떔질한 치아들도 조금씩 망가져 수리가 필요했다. 안경을 벗고 치료의자 위에 올라 반쯤 누운 채 천정을 보았다. 조명에 눈이 부셨다. 이를 갈아내는 차가운 기계음이 들렸다. 자욱한 소음에 나른해졌다. 곧 내 차례일 터였다.

내가 6살일 무렵 우리 가족은 1층 단독주택이 모인 작은 마을에 살았다. 마당이 딸린 집에서 개와 뛰놀고 고구마를 구워먹었더랬다. 그리고 내가 8살이 되던 해 우리는 도심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아직 가구가 들어서지 않은 빈 집에 엄마와 나, 동생이 먼저 들어갔다.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냄비와 후라이팬, 각종 식기도구를 정리했다. 나는 빈 방 하나를 차지하곤 미리 챙겨온 블럭을 바닥에 쏟았다. 꼭 무얼 만들겠다는 목적지 없이 블럭을 쌓아올렸다. 옆으로 위로 이어가다 다시 허물었다. 그때 그 방이 참 넓고 밝다 생각했다. 내가 등진 벽으로부터 내가 바라보는 벽까지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엉덩이를 떼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댄 채 블럭을 조립했다. 가끔 정면의 벽을 봤다. 또 가끔 문밖에서 들리는 엄마의 움직임에 귀기울였다. 새 집이 마음에 들었다. 마을을 떠나며 일곱마리 개를 보내던 때 쏟았던 울음이 조금씩 말라갔다. 바닥이 찼다. 새 것은 찬 것이구나, 그렇다면 헌 것은 따뜻한 것일까. 엄마가 나를 불러 밖으로 나가보니 부엌에 딸린 테이블에 팥죽이 놓여 있었다. 회색 새알심을 품은 눅진한 죽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그날이 동지였다. 밖은 일년 중 가장 긴 밤이 도달해 어두웠다.  눈이 내렸는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겨울이었고, 그밤 나는 한뼘 더 자랐다.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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