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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May 30. 2023

연약한 우리는 끊어내며 살아간다_『절연』

콘텐츠_01

도서명: 절연

지은이: 정세랑, 무라타 사야카, 알피안 사아트, 하오징팡, 위왓 럿위왓웡사, 홍라이추, 라샴자, 응우옌 응옥 뚜, 롄밍웨이

펴낸곳: 문학동네




한국, 일본, 싱가포르, 중국, 태국, 홍콩, 티베트, 베트남, 대만. 아시아 아홉 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그들이 2022년 ‘절연’을 주제로 각기 하나의 이야기를 썼다. 아홉 가지 절연의 선율이 흐르는 악보집, 『절연』이다.    

  

정세랑 작가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아시아의 여러 작가들이 같은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녀는 주제로 ‘절연’을 떠올렸다. 격변하는 세계에서 끝없이 헤어지고 이어지는 사람들, ‘절연’은 이 시대를 함축할 수 있는 단어였다. 세계에 산재한 수많은 관계들이 어떻게 부딪히고 끊어져 가는지, 절연 이후의 사람들은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절연’이라는 짧은 단어가 작가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거쳐 얼마나 풍성해질지 그녀는 궁금했다. 완전한 끊어짐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아홉 명의 작가들이 빚어낸 ‘절연’의 세계는 닮은 듯 어긋났고, 낯익은 듯 낯설었다. 혼돈의 세계에서 벗어나 ‘무無’로 고립되려는 사람들(무라타 사야카, 「무」). 남편의 첫사랑을 두 번째 아내로 들이며 스스로 이상적인 아내라고 최면하는 여자(알피안 사아트, 「아내」). 긍정적인 감정만 수용되는 도시에서 폭발하는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하오징팡, 「긍정 벽돌」). 혁명의 불꽃 속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희미한 자신을 규정하려 애쓰는 청년들(위왓 럿위왓웡사, 「불사르다」). 남편을 비밀경찰에 넘긴 후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여자(홍라이추, 「비밀경찰」). 도회에서 버티고 시골에서 죽어가며 기억하고 이별하는 청춘들(라샴자,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있다」). 자식의 결혼식, 자식과 완전한 단절을 선언한 어머니(응우옌 응옥 뚜, 「도피」). 이별의 반복 속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보살피는 아이들(롄밍웨이, 「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갈등 끝에 끊어지는 사람들(정세랑, 「절연」).     



 

세계와 절연, 가족과 절연, 친구와 절연, 내 자신과 절연. 『절연』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절연이 등장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절연을 수행하고 받아들인다. 그 방식이란 때로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때로는 무심하고 자연스럽다. 혹은 개인의 의지로는 도저히 조절할 수 없는 압력 같은 것이어서 힘에 짓눌려 터진 채 그대로 흩어진다. 그리고 얽히고설키다 끊어진 상처 위에 또 다른 관계가 피어나기도 한다. 새로운 관계는 절연의 전제가 되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 끊어질지 모른다. 위태롭다. 그렇게 『절연』 속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절연』은 연이 끊어진 후 회복이나 성장의 희망적인 메시지보다 ‘끊어짐’이 주는 충격과 파동에 집중한다. 일상처럼 반복되고 돌출되는 절연에 애써 무감각해지려는 사람들에게 날을 들이민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불쾌함이 절연의 감각을 깨운다. 절연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나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끊어내며 그 관계가 속했던 세계와도 작별한다. 따라서 절연은 곧 새로운 세계와 마주함이기도 한다. 충격의 파동이 몰고 온 절망 이후에는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게 끊어내고 끊어내며 다음 세계로 향한다. 도피인지, 도전인지는 어느새 중요하지 않다. 그것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은 접어둔다. 고독하고 불안한,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이 시대에 나의 결심과 내 세계를 향한 굳은 믿음만이 연약한 생존을 보장할 것이다.

    


분명한 세계에 흐린 마음으로 디딘 것인지, 흐린 세계에 분명한 마음으로 디딘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정세랑, 「절연」 중    



       

전 세계는 팬데믹이라는 극단적인 고립을 경험했다. 개인은 파편화되었고, 국가는 강압적이었다. 그래서 아시아의 아홉 명의 작가들이 2022년에 쓰는 ‘절연’의 이야기가 더 절실하게 읽힌다. 소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각 이야기는 팬데믹과 정치적 격변기를 관통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직간접적으로 투영한다. 그 안에서 절연을 결심하며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그들을 말없이 지지한다. 자책보다는 불투명한 믿음이라도 놓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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