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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OK Jul 29. 2022

멋없이 나로 사는 법

'꼭.. 뭘 해야 해?' 힙하고 트렌디하게 열심히 사는 게 힘든 사람

모두가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시대다.




 '너도 책 하나 써봐'. 근 일 년 사이, 공사 구분 없이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다 한 번씩은 나온 주제였다. 9 to 6를 넘어 야간과 주말 초과근무까지도 소화해내는(그리고 해내야 하는) 보통의 직장근로자들 사이 떠오른 '사이드잡' 유행 덕분이다. '다능인' '멀티 페르소나' '부캐' 등 이전엔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로 자가 복제되어 튀어나오기 시작한 이 유행은 최근 몇 년간 #자기계발 키워드를 앞세워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독립 출판계를 휩쓸었다. 좋게 말해 유행이지, 실제 직장생활을 하며 체감하는 이 트렌드의 위력은... '안 하면 바보' 정도의 느낌이었다.


나만 힘들어?


 광고회사에서 멋없게 살기


 현재 내가 일하는 곳은 광고회사. 트렌드에 민감해야만 하는 업종 특성상 이런 전복적이고 소위 '힙해 보이는' 흐름이 구성원들 사이에 보다 빠르고 거침없이 침투하는 편이다. 회의 하나를 들어가도 '제가 이번에 에세이집을...' 'OO님이 팟캐스트를 하는데...' '이번에 제가 티셔츠를 하나 만들어서...' 같은 이야기가 무심한 듯 툭, 슬쩍 부럽고 뿌듯한 뉘앙스와 함께 들리곤 하는 것이다.

 

 나는 미대를 나왔다. 태생적으로 작가주의나 예술성 따위와 거리가 멀고, 성격유형검사에서도 '공무원 유형'이 나오는 노잼 인간임에도 어쩌다 보니 입시미술 몇 년 하고 미대에 진학했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미대라는 공간은 소위 말하는 '힙스터 예술충'의 다각적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미대 안에선 '자기 세계가 확고하네!', 밖에 나가면 '뭐야..' 소리 듣는 극 마이너 취향 힙스터부터, 요즘 잘나가는 신생 브랜드는 다 꿰고 있는 얼리어답터 힙스터까지. 그러나 그 유형과 레벨은 달라도 그들의 본질은 하나다. 힙스터의 기본 덕목인 '남들이 잘 안 하는' 무언가를 '최대한 빨리' 선점하여 '원래 나는 알고 있었다는 듯' 무심하게 SNS에 ‘해시태그 없이’ 업로드하는 것이 체화된 집단이라는 것이다. (나의 동기 친구들아, 사랑한다.)

 이런 미대에서의 5년은 고터에서 만 원짜리 보세 옷 사 입는 게 최선의 멋 부리기였던 '멋알못' 뱁새가 '아~ 그 브랜드?' 하며 얼추 다리 찢는 흉내를 낼 정도로 성장하게 된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다만 문제는, 뱁새는 얼추 찢는 흉내만 낼 줄 알 뿐 진짜 고고하게 성큼성큼 걷는 법을 터득하긴 태생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광고회사는 미대보다 더 고도화되고 세분화된 힙스터 컴피티션이었다. 주로 개인의 외적 스타일을 기준으로 '힙스터'의 척도가 정해졌던 미대와 달리 광고회사의 힙스터가 되기 위해선 회사 내에서의 모습보다 회사 밖에서의 아이덴티티가 더 중요한 듯했다. '저는 퇴근하고 강의해요, 저는 소셜 모임 리더예요, 이번에 출판 계약했어요'⋯. 얼추 미대 눈칫밥으로 겉치레만 따라가던 나만 황망해졌다.

아니, 다들 언제 이런 걸 다 하는 건데?


  

난 열심히 산 줄로만 알았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입사 전까지 난 스스로 어디다 내놔도 '열심히 사는' 사람임을 자신했다. 10대 때 시키는 대로 착실히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탈궤도 없이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고, 사회가 정해놓은 '참된 젊은이'의 규격에 어긋나지 않게 신입사원 입사 적정 연령에 맞춰 취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밟는 동안 흔히들 경험하는 입시지옥과 자기소개서의 늪, 면접 탈락의 자괴감 등의 고비를 겪었고, 이러한 고비들이 내가 '열심히 산' 근거가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 위와 같은 나의 '열심 경험'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회사원이 된 지금은 정해진 근무시간에 맞춰 하루 8시간 이상을 충실히 일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3시간 이상 이동하며, 일을 위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매일 각종 미디어와 시사정보를 훑는다. 그러나 그것들 또한 월마다 지급되는 이백여만 원의 급여 외에 어떠한 값어치로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위 기술된 모든 사건들이 남들이 볼 수 있는 어딘가에 '멋져 보이게' 전시 - 즉, 콘텐츠로 셀프 브랜딩 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셀프 브랜딩.. 이 뭔데요?


 셀프 브랜딩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기업에, 브랜드에, 제품에 부여하던 '브랜딩'의 개념을 사람한테까지 부여하다니! 그리고 그걸 내가 나한테 해야 한다니! 당시 나는 대세감이 느껴지면 일단 반감부터 갖고 보는 미대 힙스터의 반골 정신에 과몰입했던 탓에, '흥, 보여주기 식으로 꾸며내는 건 멋없어. 난 내 할 일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으니 살다 보면 뭐가 되겠지.' 하며 슬금슬금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곤 했다. 그렇게 훽 돌려버린 고개가 다시 돌아오기도 전에, 선택이 아닌 ‘뭐라도 남기기 위한 필수 생존수단’으로써의 셀프 브랜딩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버렸다.

 셀프 브랜딩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결국 본질은 '보기 좋게 꾸며내기'이다. 그 앞에 놓일 수 있는 대상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남들은 못해본 엄청난 경험, 나만의 획기적인 기술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극히 사소하고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그 누구도 '꾸밈'없이는 주목하지 않을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퇴사가 있다.



언제부터 퇴사가 힙한 거였니


 퇴사는 셀프 브랜딩계에 어마어마하게 큰 한 획을 그은 테마다. 지금 당장 서점에 가서 #퇴사 키워드가 들어간 에세이집만 찾아도 수십 권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냥 '남 회사 때려치운 얘기'인 퇴사 에세이가 이렇게까지 도서계의 히트 키워드가 된 데에는 셀프 브랜딩 열풍의 덕이 컸다. 성실하게 월급 받고 일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엄청나게 대단한 도전(세계일주라던지)을 하러 퇴사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그 용기와 과감함에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냥 힘들어서, 나에 대해 생각 좀 해보려고, 해방감을 위해 퇴사하는 사람들은 아예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았다. '퇴사' 그 이후에 따라붙는 마땅한 서사 없었기 때문이다.


퇴사한 게 뭐... "근데?"

 

 

 하지만 셀프 브랜딩 선구자들의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홀대받던 지극히 개인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들(예전이었으면 '이런 걸 누가 궁금해해?' 했을 만한 것들)을 조금은 뻔뻔스레 수면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을 거치며 ‘그냥 힘들어서 한 퇴사’는 현대인의 보편적 번아웃을 좌시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 용기가 되었고, ‘하는 일이 안 맞아서 한 퇴사’는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진 탓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것을 과감히 거부한 능력자의 인사이트가 되었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엄마한테 등짝이나 한 대 얻어맞았을 법한 퇴사 사유들이 에세이로, 팟캐스트로, 유튜브로 전에 없던 서사를 입으며 '있어 보이게' 전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아무튼’ 퇴사가 힙해지고, 그 어떤 평범한 이야기도 대단히 거창하고 특별한 이야기처럼 포장해서 꺼내놓는 게 '멋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된 게.


이제 멋있음의 척도는 실체가 있는 과정이나 결과물이 아닌 '전시하는 행위'에 달렸다. 7시에 일어나서 씻고 버스 타고 출근해서 일하고 밥 먹고 퇴근하고 운동하다 넷플릭스 좀 보고 자는, 지독하게 무난하고 무력한 그 사이의 하루를 살더라도-이 모든 서술은 슬프게도 당사자성에 근거한다- 이 하루가 유튜브에, 브런치에, 노션 포트폴리오에 전시됨으로써 그 사람의 시간은 특별한 업적이 된다. 그냥 직장인의 하루가 '8am 출근 갓생 직장인의 24시간 셀프 매니징 tip'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게 쌓이고 쌓여서 시리즈가 되고, 인기글이 되고, 출판사의 눈에 띄고, 유명 자기 계발 유튜버의 채널에 게스트로 출연하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비로소 요즘 멋쟁이 되기 1단계를 통과하셨습니다!



그래서 멋없는 나는 이 멋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사실 이 장황한 글의 결론은 '네, 그래서 저도 이제 셀프 브랜딩 좀 해보렵니다'이다. 여우가 신 포도를 보고 꿍얼거리는 것 마냥, 여태 가만히 앉아선 남들 열심히 살아가는 모양새를 가지고 우스갯소리 한 것치곤 꽤나 어이없는 결론이다.

 셀프 브랜딩을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는 사람은, 평생 멋쟁이들의 뒷꽁무니를 쫓은 덕분에 중간이라도 간 것임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회사 하나 다니는 것으로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며 자기 위안을 하기엔, 눈물겹지만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이 거대한 멋의 흐름을 외면하면 이젠 중간에서마저 밀려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태생적으로 멋없는 이들의 숙명과도 같은 이 불안감 탓에, 나는 이번에도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앞서 걷는 멋쟁이들의 널찍한 보폭을 따라 다리를 쩍 찢어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브런치(작가)가 된다


 뱁새 셀프 브랜딩 프로젝트의 대망의 첫 번째 스텝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다. 모든 셀프 브랜딩 피플의 마음의 고향, 브런치에서 나는 앞으로 이런 걸 누가 궁금해 하나, 싶은 것들을 최대한 흥미롭게 포장하여 전시하는, 지극히 '브런치적인' 시리즈를 만들어 볼 예정이다. 내 친구들 아니면 관심이나 있겠나 싶은 여행 얘기, 먹은 얘기, 본 얘기 등. 정보를 전달하기엔 정보가 없고 인사이트를 전달하기엔 그렇게까지 인사이트 있지 않은 사람의 신변잡기적 글의 장래가 어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운 좋게 잘 풀리면 멋쟁이가 될 테고, 잘 안 되면 뭐 또 어떤가. 포트폴리오에 퍼스널 사이트 링크 하나 더 걸 수 있게 됐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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