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방광이 눌리는 기분이 화장실을 갔다 와 잘 것인가 아님 자다 더 마려우면 갈 것인가 잠시 고민 했었다. 우리 집 침대가 좀 높은 것도 있지만 만삭의 여자는 한번 침대에서 내려왔다 올라가려면 등산을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경사가 있는 베개를 배고 그 위에 내가 원래 쓰는 낮은 기능성 베개를 얹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 살짝 더 높은 베개를 얹어 완벽한 경사를 만들어 주고 왼쪽으로 누워 자야 그나마 위산이 덜 역류했다. 이런 곳을 만삭의 몸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번 올라가면 숨이 가파르다. 이런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방광을 누르고 있는 아가는 막상 화장실을 가면 시원하게 볼일을 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찔끔 혹은 그냥 마려운듯한 그 느낌만 남길 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인가부터 신호가 온다고 매번 화장실로 달려가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그 날도 잠시 고민을 했지만 무언가 싸한 느낌에 힘든 몸을 일으켰고 나의 싸한 느낌은 적중했다. 이슬이 비추었다. 사실 임신 기간 중 출산과 육아에 대해 그렇게 세세하게 검색하거나 정보를 습득하지 않았지만 이슬이 비추면 아가가 나올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은 드라마에서 본적이 있다. 그때 그 뜻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 보니 생리 혈 같이 갈색이나 붉은 색 톤의 분비물이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 적혀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멍했다. 이제 겨우 36주 4일 인데…… 오늘은 남편도 없는데…… 아직 시댁으로 짐도 옮기지 않았는데…… 출산 가방도 오늘 낮에 겨우 싸놨는데……
일단 정신을 차리고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직하고 처음으로 지방 출장을 간 남편은 같이 간 후배랑 와인 바에서 거하게 한잔 드시고 골아 떨어졌다. 남자 둘이서 없어 보이게 와인 바에서 무얼 하는 거냐며 놀리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남편은 숙면을 취한 듯 하다. 그렇게 두 번째 전화에 남편이 받았고 졸음과 취기 가득한 목소리로 괜찮다며 잘 자라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이슬이 비춘다는데 갑자기 무엇이 괜찮다는 거지? 이럴 때 남편은 무쓸모…… 난 초록창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읽어 보니 보통은 이슬이 비추고 며칠 있다 많게는 2주 있다 출산을 하는 산모도 있고 아님 정말 몇 시간 있다가 출산을 하는 여자도 있다고 한다. 그때 까지만 해도 진통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아 다시 전화기를 들고 시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다. 5분 거리에 친정 부모님이 사시지만 80세에 가까우신 아빠는 운전대를 놓으신지 5년이 넘으셨고 70대 초반인 우리 엄마는 운전은 가능하시나 네비게이션을 작동하거나 볼 줄 모르시기에 다니던 지역이나 장소가 아니시면 못 가신다. 그래서 애초부터 비상사태가 나면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생각에 시댁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더구나 애기를 많이 좋아하시는 시부모님이시기에 출산 후에도 잠시 들어가 공동육아를 할 생각에 이날 오후 짐을 쌌다. 몇 날 며칠을 미루다가 그날 짐을 다 챙겨놓고 동지 임산부 언니랑 동네에서 커피도 한잔 했었다.
어머님은 나에게 진통이 있냐고 물으셨고 그때 까지만 해도 진통이 없었기에 아직은 괜찮다 하니 오늘은 일단 푹 자고 배가 아파오면 다시 연락을 하라 하셨다. 어머님이랑 통화를 끊고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생리통 같은 싸한 배 아픔이 시작되었다. 초산이라 이것이 진통인지 자궁 수축인지 알 수 없는 나는 조금 더 버텨 보기로 했다. 그런데 20~30분에 한번씩 이런 배 아픔이 시작되고 어머님께 전화 드리기 직전의 통증은 숨을 멎게 만드는 레벨의 고통이었다.
새벽 3:30분경 결국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진통이 시작된 거 같아요…....”
시부모님이 오시기 전 진통 간격은 더 짧아 져서 10~15분에 한번씩 진통이 오고 있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좀 심한 생리통 정도로 여겨져서 이 정도면 자연분만도 할 수 있겠다며 자만했었다.
어머님 아버님이 우리 집에 도착하신 시간은 4:20분경……
출산 가방만 챙겨 병원으로 향하는 길 진통의 간격이 5~10분 간격으로 짧아 졌다.
어머님은 내 배를 어루만지시며 ‘작은아가’ (태명) 에게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 말라고 병원 다 와가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녀석이 알아 들을까? 알아 들었다면 이 고통에서 나를 벋어 나게 해줄까?
병원에 도착하자 가족분만실로 나를 안내했다. 일단 내진을 통해 과연 내가 출산에 임박한 게 맞는지 확인을 한다 했다. 이렇게 아픈데 당연히 출산에 임박한거지 도대체 무슨 내진을 한다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손가락 두 마디가 밑으로 쑥 들어오는데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울어 버렸다.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서 자궁이 2cm 정도 열렸다며 입원 절차를 밟고 일단 관장부터 하자고 하신다.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출산을 해야 한다고? 나는 더더욱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고 있던 그때 시간은 새벽 5시였다.
관장약을 넣고 10분 정도 기다렸다 화장실을 가라는데 난 그 10분도 참기 힘들었다. 그 동안 나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묻는다. 가족분만실에 함께 할 가족은 누구냐고……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 사람만 가족분만실에 들어 올 수 있으며 설령 남편이 나중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바통 터치가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나와 출산의 과정을 함께 할 그 가족은 내가 아이를 낳아서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 함께 한다는 이야기 이다. 남편은 아무리 빨리 와도 분명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올 테고 아이는 그 전에 나올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 되었다. 그리고 설령 남편이 온 후에 작은아가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긴 시간 느낄 이 고통을 혼자 짊어 지기에 나란 여자는 한없이 나약했다.
그렇게 나는 분만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평상시 절대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애기를 낳으러 왔다며 그리고 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엄마한테 먼저 전화를 하고 심지어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건 역사에 기리 기억될 만한 이벤트 이다. 자고로 난 친정 부모님이랑 성향이 너무 달라서 일까 물리적 거리나 실제 보여지는 것과 달리 마음의 거리는 그렇게 가깝지 않다. 이런 일들이 오가는 사이 나의 진통은 더 짧아 져서 2~3분에 한번쯤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 출산의 아픔에 대해 물어보면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다.
“밑이 빠지는 것 같아…… 내 위로 트럭이 지나가는 것 같아......” 절친한 언니의 반응이었다.
“그냥 생리통 같은 느낌인데 10,000배는 더 쥐어 짜는 거 같아……” 1년전 아들을 출산한 친구의 말이다.
“그걸 어떻게 기억하니? 근데 확실한 건 하늘이 노래질 때쯤 나오긴 해…...” 10년전출산한 친구의 말이다.
밑이 빠지는 느낌은 뭘까? 트럭이 지나가? 트럭이 지나가면 내 몸이 부서질 텐데?
생리통의 10,000배의 고통이라고? 그럼 그냥 죽으라는 건데?
하늘이 노래져 본적이 없는데 하늘이 노래진다고? 그럼 모든 것이 노란색으로 보이는 건가?
실제로 겪어 보니 생리통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생리통의 10,000배의 고통도 맞는 듯 했다. 하늘이 노래 질 때 까지는 가질 않아서 모르겠고 밑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도 잘 모르겠으나 내 안의 모든 오장육부를 빨래 탈수 하듯 짜내는 것 같은 아픔이 있었다. 2~3분의 한번씩 온몸이 뒤틀리는 것이 숨 쉬기 조차 힘들어 소리 내어 통증을 호소하게 만들었다. 내가 한없이 소리를 지르자 간호사 선생님이신지 의사 선생님이신지 들어오신다. 그리고 아주 무섭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산모님! 통증이 아프죠? 당연히 아파요! 하지만 잠시 아팠다가 또 좀 살만했다 그러다 다시 아파요 맞죠? 그런데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태아한테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좋지 않다고 말씀 드렸죠? 그런데 계속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면 어떡해요? 이럴 땐 아까 알려드린 호흡법 기억나시죠?"
호흡법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딱 봐도 출산을 했을 거 같지 않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당신이 이 고통에 대해 뭘 안다고 호흡법이래?” 라고 말할 뻔 했으나 순간 통증이 아주 잠시 사라져 이성의 끈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아니 머 그래 출산을 해 본 젊은 여자 선생님이실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어떠한 고통을 겪어 봤건 순간 내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생각 할 수가 없었다. 뱃속의 태아한테 나쁘거나 말거나 난 아프니까 소리를 질러야 했다. 가끔 TV에 보면 분만 할 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한테 안 좋다 해 꾹 참고 최대한 기쁜 표정으로 아이를 출산 했다는 연예인들이 있다. 실제로 기쁜 표정으로 출산을 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은 정말 나 보다 모성애가 넘쳐 나서 그랬을까?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통 주사를 맞고 싶었다. 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웃으며 아이를 맞이하고 아이에게 산소 공급도 잘 되도록…… 하지만 나의 혈소판 수치가 한 없이 낮아서 초창기 외래 진료 때부터 무통 주사는 없을 거라고 못 박아 놓으셨다. 그때는 까짓 없이도 한번 낳아 보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사람은 역시 자만하면 안 된다. 고통을 겪고 있던 그 시점에서 당당하게 괜찮다고 큰 소리로 답하던 내 자신을 난 뼈저리게 후회 했다.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이란 엉덩이의 주사를 놓아 주실 수 있다 했는데 통증을 아주 잠시 1~2시간 정도 완화 시켜 주는데 이것도 몇 시간에 한번씩만 맞을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나 이 주사를 놓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산모도 있다고 한다. 실제 효과가 있거나 없거나 플라시보 효과라도 기대해 보고 싶어 당장 놓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에게는 효과가 없었고 심지어 플라시보 효과도 일으키지 않을 만큼 진통의 고통은 강했다.
“선생님! 저 그냥 수술해서 낳을래요…… 수술하게 해주세요……”
너무나도 아프고 힘들어 이렇게 울부짖었다.
그렇다 친구들은 기본 8시간 많게는 10시간도 훌쩍 넘게 진통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나랑은 조금 달랐다. 8시간 진통 중 처음 4시간은 1시간에 한번씩 2번 그리고 30분에 한번씩 4번 왔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벌써 4시간이 흘러간다. 그러고 남은 4시간은15~20분에 한번씩 그러다 마지막 2시간 정도 5분에 한번씩에서 2~3분에 한번씩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병원에 도착해서부터 이미 2~3분에 한번씩 진통이 오고 있었으니 그렇게 2시간을 보낸 나는 살려달라고, 수술시켜 달라고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아기가 자연 분만해도 문제 없을 만큼 자리를 잘 잡고 있다고 하니 어머님께서는 조금 참아 보자고 말씀하셨지만 난 울며불며 사정없이 수술시켜 달라 했다. 그때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참을성이 없다 해도 좋다. 자연분만이 산모와 태아에게 더 좋은 출산의 방법이라 해도 상관없다.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임신 기간 내내 나는 나부터 살고 봐야 했고 출산 때도 역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혈소판 수치가 낮았던 나는 수술 조차 쉽지 않았다. 제왕절개를 하려면 혈액을 공급 받아야 했고 그러려면 적어도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했다. 기다리는 동안 혹시 아이가 나올 수도 있으니 그냥 자연분만을 시도 하겠느냐 아님 그렇더라도 기다렸다 수술하여 낳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일말에 고민도 없이 수술을 하겠다고, 2시간을 기다리겠다 했다. 물론 그 2시간 안에 아이가 나올 수도 있지만 직전 내진에서 2시간이 지났음에도 자궁이 여전히2cm 밖에 안 열렸다 하고 만약 그 2시간 안에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나의 진통은 더 길어 져야 하므로 무조건 2시간 후 수혈 받고 수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님께서는 많이 안타까워하셨지만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에 순순히 받아 들이셨다.
“산모님이 자연분만의 의지가 없네요. 그럼 혈액이 공급되는 대로 수술 진행 하겠습니다.”
그렇게5분에서 2~3분 간격으로 짧아진 4시간의진통을 겪었다. 제왕절개가 결정 나자 소변 줄을 꼽고 제모도 마친 후 기억에서 사라진 시간만큼의 진통 끝2020년 10월 21일 오전 9시 17분 임신 36주 4일만에 응급 제왕절개로 2.41kg, 손가락 발가락 10개의 건강한 ‘작은아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