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누군가의 첫 발자국일 뿐인 것을.
언젠가 말한적이 있었던가?
난 수많은 직종 전환을 하며, 일에서도 일상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다.
어릴 때 부터 좌우명도 그랬다.
지금 내 브런치 작가 소개글에 있듯이, ‘Make my own way - 나만의 길을 만들자’로 살아온지 적어도 10년은 더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도전은 두렵지 않은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면 이었지 두려운 것이 될 순 없었다. 그 시작점에 서는 것이 어느순간 나에게도 낯설어 질 줄도 모르고 조금 더 어린날의 나는 오만하게도 그러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다보니 꾸준히 듣는 말이있다.
'너 그래도 돼?', '남들은 이거 하는데 넌 왜 안해? 안해도 돼?' 등등...
물론 격려의 말과 힘이되는 말도 많이 들었다.
멋있게 혹은 열심히 산다고도 해주었고, 나만의 색이 묻어난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계속적인 우려의 말을 들으며 20대 초부터 지내오고,
그 생활을 이어가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지는 않다보니 - 일종의 시행착오도 많았다 - 남들의 말이 다 맞는 것 같고 내가 너무 치기 어렸나, 종국에는 '내 삶의 궤적이 맞지 올바르지 않은 것 이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흘러갔다.
그래, 그렇게 어느순간 앞으로 내가 살아갈 갈림길들을 위한 선택에 대한 무거움, 책임에 대한 무서움이 존재했다.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지 못한 기만도 존재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여러 도전을 하는 사람이고, 보수적이지 않고, 언제나 열린자세로 내 미래를 그려나가고 그 모든 길에 스스로 책임을 지며 앞아로를 살아갈 것 이라고.
나 스스로를 그런 프레임을 씌어놓고 지켜봤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새로운 도전에 주춤할 때, 내가 더 안전한 옵션을 고려할 때, 진취적인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 옹졸하게 '저건 쟤니까 저렇게 하지.' 등의 그런 모난 생각을 할 때도.
나 스스로가 여전히 '도전'이라는 것에서 '주저함' 없이 '자유' 로운 줄 알았다.
하지만 보라.
나는 이제와서 느낀다.
나는 어느순간 누군가에게 기성세대라고 불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도전하지만 조금 더 안전한 도전을 시도하고,
실행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무모한 도전- 이 표현 조차도 바뀐 내가 느껴진다 - 을 조금은 멀리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
이런게 삶의 궤적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별거 아닌 것이다.
내 삶은 궤적은 수많은 도전을 해보며 만들어졌고,
도전들을 통해 나름 성공하고 체득한 다양한 값진 경험들도 있지만 이면엔 셀수 없는 실패 또한 존재했다.
그러면서 나의 삶에 도전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것 또한 내 삶의 발자취가 아닐까?
그러면서 다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도전'은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도전'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하고싶은 도전은 어떤 형상을 보이는지'.
사실상 어린날의 내가 해왔던 도전은 조금 흥미본위에 가까웠다. 스스로를 흥미본위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가십을 소비하는 느낌의 흥미는 아니지만 내 삶을 자극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흥미를 준다면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흥미와 새로움이 떨어지면 어느순간 그렇게 그 새로운 도전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치기 어리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살아가며 세상의 '어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얻기도 하고,
다양한 세상의 군상들을 만나며 호되게 당하기도, 혹은 배움을 구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갈고 닦여온 나에게 도전은 이제는 조금 더 '계획'과 '실현가능성'을 기반으로 둔, 하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어두지 않는'그런 것이 되었다.
이 때 스스로의 한계라고 함은, 사실상 개인적인 경험에 빗댄 걸 수 밖에 없다.
대학 때는 비즈니스를 다루는 전공을 하고 전통찻집에서도 매니저로서 일도 하다가, 메이저 호텔업계 객실부에서도 일하였지만.
지금은 새로운 분야 -강의직- 으로 이직하고 도전을 위해 다시 학업의 길을 함께 가볼 생각중이다.
처음에 이 직군으로 올 때,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부분이랑 물론 교집합은 있지만 새로운 영역이다보니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게 다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 참 아깝더라.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도전은 다 그랬다. 이때까지 해왔던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넓혀나가는 게 나의 도전 이었다. 그렇다고 실현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확률적으로 성공률도 높았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성향과도 부합하는 일이라 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자, 여기서 다시 돌아가보자.
아까 그랬다.
시간이 흘러가며 내가 느껴온 도전이란 영역에서
*** 나 스스로가 여전히 '도전'이라는 것에서 '주저함' 없이 '자유' 로운 줄 알았다.***
라고 했다.
다시 말한다.
나는 이제는 '도전'이라는 것에 '주저함'이 많지만 그 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도전, 그것은 그저 나의, 너의, 우리의,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점일 뿐이고.
그 시작점을 선택한 나의 첫 발짝에 지나지 않기에.
큰 부담 가지지 말자.
물론 각자 선택한 도전에 대한 무게감이 다 다르겠지만,
그 선택을 한 건 나고,
그 도전을 하기 불안하면 플랜 B를 만들어라.
그러다가 내가 최초에 결정한 도전의 길이 아닌 것 같으면 살짝 길을 틀면 되지않나.
그건 틀린 것도 실패도 아니다.
단지 내가 살아오는 길의 갈림길에서 다른 갈림길을 택하여 걷고 있을 뿐.
어느 곳의 갈림길에 서서 또다른 길을 선택하는 누군가에게,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며
2025년 1월 17일, 민가네 웨이로 부터
ps. 내 새로운 도전도 익명의 누군가가 응원해 줬으면 하는 소심한 생각도 있다.
우리 모두 살아가며 도전에서 그리고 선택에서 해방될 수는 없으니.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선택지를 언젠가 어디서든 올곧은 마음으로 응원해줄 수 있는 내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야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