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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이루리 glory Jul 12. 2024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견디어 내길...

작은 아이가 다니는 예고에서 작은 문제가 생겼다. 미술 전공시험 과정 중 제시된 시험문제를 전공 A반은 수업 시간 중에 그려봤는데 우리 아이가 속한 B반은 비슷한 것도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공 시험 일주일 전 옆반 아이들이 거의 똑같은 유형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지만, 아이는 전공실기 후 기말고사 시험이 코앞이라서 문제 제기를 할 여력조차 없었다고 했다. 실기와 기필고사가 다 끝난 후, 성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점수가 평균점수보다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 옆반에서 1등이 나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아이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지 잠을 못 자고 뒤척이며 계속 고민하는 듯했다. 엄마로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네 말을 듣고 보면 이건 분명 불공정한 시험이었던 것 같아. 작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 아우트라인을 배우고 안 배우고의 차이는 지금의 너희들에게는 큰 실력차이를 가져올 게 뻔한데. 학교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다면 이건 바로잡아야 할 거 같아. 그리고 이게 관행화된다면 다음 학기에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텐데 그게 걱정이 되는구나. 우선 너희반 전공 담담 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아이는 내 말에 힘을 얻은 것 같았다. 그렇지? 엄마 생각에도 이건 아니지? 하면서 반 친구들 몇 명과도 카톡을 하면서 대화를 해보는 것 같았다. 두 명의 아이들도 그것을 확실히 봤고, 그 당시 이상함을 감지했다는 한다. 아이는 이 내용을 잘 정리해서 담당 선생님께 톡으로 보냈다. 선생님의 답변을 곧바로 받을 수 없어서 답답해하던 중, 나는 같은 반 학부모 한 분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친구도 성적이 안 좋게 나왔다고 하시면서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이렇게 내면 어떻게 하는가, 앞으로도 또 이러면 안 된다,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고 아이한테도 다시 물어보겠다 하셨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마지막에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우리 아이가 먼저 선생님께 톡을 드리기는 했지만, ○○도 한 번만 더 톡을 드려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이 혼자서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 그래도 여러 명이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면 더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주시지 않을까요? "

늦은 밤 그 어머니께 답변이 들어와 있었다.

"○○에게  문자 얘기를  했어요. 아이말이... 선생님께서 이미  ○○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로 알고 계시다고 하네요. 그래서 따로 같은 얘기를 또 해야 하나 하네요.. "

"네, 잘 알겠습니다."


다음날, 미술부 회의를 통해 재시험을 보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이미 채점이 다 끝나고 점수까지 나온 상태라서 재시험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런 결정이 난 것이 놀라웠다. 그만큼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지 못했던 시험임이 분명했다. 전공 부장선생님께서 아이들 전체를 다 불러놓고 10분 넘게 옆반에서 보고 그렸던 사진까지 직접 보여주시며, 아이들에게 미리 그려보고 안 그려보고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재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고 말씀하셨고, 옆반 아이들이 교무실에 우르르 몰려가 강하게 항의를 했지만 안된다 하시면서 그냥 돌려보냈다고 아이한테 전해 들었다. 재시험에 속이 상한 옆 반 아이들 중 몇몇이 소리를 지르고 발을 쿵쿵 구르면서 이 쪽 반에 와서 화를 냈는데, 그 모든 곤혹스러움을 우리 아이 혼자서 감내한 것 같았다.  

 엄마, 진짜 대단했어. 안 보면 몰라 그 상황... 그날 아이는 집에 돌아와 말하면서 그래도 미리 동의를 구했던 친구 두 명이 자기 옆에 와서 위로해 주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가 보다. 나는 그 날 같은 반 친구들은 분명 재시험 보는 상황을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 테니, 옆반 아이들이 와서 화를 낼 때 단 한 명이라도 "우리 반이 같이 선생님께 문제 제기한 거야! 학교에서 결정한 부분은 이제 수긍하고 따라야지 않을까!" 라고 애기해 주길 내심 바랐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오늘 재시험을 보는 날까지,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고 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수록 옆 반 아이들은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지만 누가 얘기한 건지 알고 있다면서 자꾸 뒤에서 자기를 곱씹는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한 명만 타깃이 된다면 앞으로 성적이 나오고 나서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잔다르크처럼 전진에 나선 딸아이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게 속상하고 착잡했다. 그래도 아직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그래서 감정대로 표현하는 아이들이다. 집단의 무게가 주는 두려움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상황이라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괜히 멋진 척하며 나서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힘든 순간을 겪으면서 사람은 더 단단해진다.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받게 되는 상처들도 새 살이 돋으며 서서히 아물게 될 테니 생채기에 아프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내길 바랄 뿐이다. 

 조용하고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던 딸아이가 그래도 필요한 순간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펼칠 줄 알고 그로 인한 결과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힘들어도 잘 견디어내길 바라. 이 또한 지나갈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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