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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Mar 29. 2024

도시의 산책자 구보씨처럼

제주 산책


도시의 삶은 잔인할 정도로 기억을 오래 붙든다. 시린 기억일수록 더욱더 그렇다. 아마도 복잡한 스카이라인에 비해  단조로운 일상과 여러 것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틈 때문이 아닐까. 자연을 만나면 그런 기억들이 옅어지는 것 같아 자꾸 거리로 나서게 된다. 생활과 노동과는 거리를 두고,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차츰 좋아진다.


박태원의 소설처럼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회귀형 여로 속에서 잠시 잠깐 고독을 체험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다만 박태원의 분신인 구보처럼 행복을 찾겠다거나 열심히 작품을 쓰겠다는 희망을 품은 결말은 아니고, 그저 나른한 일상과 강아지가 제 꼬리를 잡겠다고 뱅뱅도는 것 같은 머릿속의 무언가와 잠시 헤어져 오롯하게 고독해지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구보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다리 곁에 가 서 있는 것의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그는 종로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어 놓았던 바른 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1930년대에 발표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식민지의 수도 경성 거리를 배회하는 도시 산책자의 이야기다. 그의 시선을 통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거나 혹은 방관자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소외 문제를 다뤘다. '도시의 산책자'라는 용어는 시인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에서 처음 언급하지만, '도시의 산책자'라는 말은 박태원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의 작품들에는 고현학적 기법이 사용되어 당시의 모습을 눈에 그린 듯 선명하게 떠 올리는 재미도 있다.


도시의 산책자가 되어 한 손엔 단장을 한 손엔 수첩을 들고 거리를 걷는 구보씨를 대할 때마다 이 배경이 30년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모던걸과 모던보이 사이에서 식민지 지식인의 무기력함도 읽히지만, 현대의 시점으로 봐도 역시 도시는 나와 세상과의 대결의 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박태원이 도시를 산책하며 구보라는  대리인을 내세웠듯이, 나도 걸으면서 객관화된 시선으로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늘상 구보씨를 흉내 내던 도시의 산책자가 제주엘 다녀왔다. 지난번에 갔을 땐 여름이라 걷기가 힘들었기에 이번엔 봄에 다녀오자 했다. 2박 3일 동안 내내 비와 낮은 거먹구름과 바람을 만끽하다 왔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임에도 해를 보지 못한 것이 그리 서운하지는 않을 만큼 도시의 기억 잠시 잊어버리다 돌아왔다.


발코니에서 눈으로 산책 중
중문색달해변, 호텔 내부 정원이 올레 8길과 연결되어 있어 매우 좋은 산책코스였다
지금 제주는 온통 노란색
롯데호텔에서 신라호텔 끝에 있는 쉬리의 벤치까지 이틀 연속 걸었는데 사람이 없어서 사색하기 딱 좋았다
저녁을 먹고 밤 산책 중 머리위에서 터진 불꽃놀이.. 예고가 없어 전쟁난 줄.. :)
돌아오는 날 아침 산책까지 비가 내렸는데 비행기 안에서 며칠만에 파란 하늘을 봄


제주는 일이 년에 한 번씩 가는데 한 번에 한 지역에만 머무른다. 지난번에는 주로 애월 근처를 돌아다녔고, 이번에는 중문 근처만 걸었다. 중문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니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마지막 산책이 여미지 식물원 야외공원이었다. 무게가 많이 줄어 체력이 약해진 아버지와 쉬다 걷다 했는데, 나는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산책인 줄 알고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아버지는 기력이 없음에도  자신의 수동카메라로 풍경을 찍고 나와 동생을 찍어 주셨다. 그렇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으로 지금도 서재에 놓여있다. 아버지 생각에 슬퍼질까 싶어 그동안 제주에 가도 중문 근처에는 가지 않았는데, 괜한 기우였다. 생각보다 괜찮았고 벤치에 앉아 좋은 기억들을 계속 되감다 보니 행복해지기도 했다.


인간의 기억은 늘 망각과 각색의 위험에 처해있다.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각색되고 채색되기 마련이다. 생을 어둡게 하는 기억들은 훌훌 날려버리고, 간직하고 싶은 좋은 추억들만 가지고 살기로 한다. 결국 뇌의 기억과 망각의 길항작용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걷다. 보다. 먹다. 자다. 또 걷다'를 반복했다. 인생에 변수 없이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만난 날씨처럼 싫은 일들이 찾아온다고 해도 이젠 호들갑스럽지 않게 맞이하자고 다짐한다. 강의 모양대로 흐르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나를 다독이고 북돋우기 위해 계속 걷기로 한다.


공책 대신 핸드폰을 들고 도시의 산책자 구보씨처럼 걷는다. 세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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