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삶, 죽음
우리는 흔히 심리학의 거장이라고 하면 무의식-프로이트, 인간관계-아들러를 떠올린다.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심리학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에 대해서는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해설본은 시중에서 찾기가 편하지만, 융의 심리학을 해설한 책은 정말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바로 난해함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로이트나 아들러는 실험을 하거나 임상에서의 경우를 적은 책들이 많다. 하지만 융의 책은 신화의 의미, 연금술의 상징 등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생각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고 여겨진다면, 삶을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해 그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그나마 칼 융의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기억, 꿈, 사상'이나 ‘인간과 상징’ 같은 책은 워낙 유명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사상이 들어가 있는 레드북은 잘 알지 못한다. 칼 융이 홀로 쓴 마지막 책인데 말이다. 분석심리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이 책은 정말 난해한 책이다. 그러나 분명 도전장을 내미는 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왜 그런지 알아보니 레드북의 초판 번역본은 절판되었고, 개정판이 2020년 1월에 발행되었다고 한다. 난해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아마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노출이 덜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이 스스로의 무의식 세계를 펼쳐내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한 분야를 창조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라는 사실은 독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많은 분량에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를 한 번에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짧은 글로 대략 무슨 내용인지 맛보기 라도 독자분들께 소개해 드리고 싶은 이유는 인생에서 한 번은 읽어봄직한 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바로 ‘개성화’이다. 개성화란 융이 자주 사용한 단어인데 이는 무의식과 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사람을 일컫는다. 융은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게 된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매료되는 점은 심리학적, 종교적 성찰과 간간히 전하는 철학적 글귀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융은 자신의 무의식을 신과 철학으로 설명하며 도중 깊은 심리학적 성찰이 담긴 말들을 한다. 이 책은 한 분야를 창조해낸 거장의 무의식 세계로 향한 여행이며, 심리학과 종교, 철학이 한데 어우러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프롤로그에서 융은 ‘네가 하는 말은 현실이야 위대함도 현실이고 도취도 현실이고, 품위 없고 지겹고 보잘것없는 일상도 모두 현실이야. 그런 것들이 온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고, 모든 집에 살고 있으며, 모든 인간의 낮을 지배하고 있어.’라고 깊은 곳의 정신이 자신에게 다가와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현실적인 일상들이 모든 인간의 낮을 지배하고 있다면, 과연 밤은 누가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낮은 우리의 의식 세계이고 밤은 우리의 무의식이다.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느끼고 모두가 생활하는 삶의 터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은 어는 누구에게나 생활의 터전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자러 들어가지 밤 그 자체를 생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생활하는 낮(의식)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생활을 유지하나 밤(무의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포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의 삶을 살겠는가? 그러니 당신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해라 ‘
’ 내가 배운 한 가지는 인간은 이 삶을 직접 살아야 한다는 거야 ‘
융은 우리의 인생을 자기 스스로 독립된 한 명의 인간의 삶으로 보았다. 책에서는 끊임없이
고독, 실패, 절망, 고통, 죽음,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나오지만 융은 항상 그 속에서도 ’ 홀로
서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융의 ‘홀로 서다’의 의미는 바로 삶의 균형이다.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와의 균형,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 삶과 죽음과의 균형 등 우리의 절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다른 반을 진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융은 우리의 삶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행위를 적극 반대하며 날카로운 자세로
이를 지적한다. ‘두렵다고? 삶을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다고? 너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바로 삶이지 않아?’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결코 삶에서 도망칠 수 없다. 하지만 마주치기 싫은 일, 하기 싫은 것, 생각하기에 끔찍한 것들을 우리는 회피하려 한다. 이에 대해 융은 ‘상한 음료를 계속 입 안에 넣고 있으니 차라리 삼켜버리는 게 더 낫지 않은가?’라는 말로 받아친다. 내가 어떤 문제가 두렵다고 해서 그것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찝찝함을 보유하느니 차라리 잠시 배탈이 나더라도 삼켜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당연히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 세상에 죽음에 대하여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누구나 살아가며 한 번쯤은 죽음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명쾌한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죽음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을 품은 상태로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춘다.
‘죽음이 없으면 삶은 무의미해진다. 이유는 영속성이 다시 일어나면서 삶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존재를 즐기기 위해서 당신은 죽음을 필요로 하고, 생명의 한계는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존재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만일 우리의 삶에서 죽음이 없다면 어떨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갈까. 우리가 삶에서 무언가를 성취해봤자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던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차피 영원한 삶을 사는데 영원히 돈을 모으면 되는 상황에서 과연 돈이 의미를 지닐까? 보다 뜻깊은 것 가치 있는 것이 과연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어차피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언제든 무슨 가치던 어떤 선행, 악행 등 모든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무슨 행동을 하던 우리에게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악마조차도 필요할 때가 있는 걸’
'우리는 사랑하든 혐오하든 상관하지 않고 악을 받아들여야 한다. 악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악도 삶에 나름의 역할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악으로부터 그것이 우리를 압도하는 힘을 빼앗을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의 악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과연 무슨 쓸모가 있을까? 상실, 패배, 좌절, 실망,
체념, 가난 등 이러한 악이 없다면 우리는 애초부터 행복했을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과연 우리에게 악이 없다면 행복이 존재했을까. 칼 융은 악을 인정하는 힘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전한다. 세상에 악을 인정하라니! 행복하지 못해 버거운 삶에 악을 더 많이 들여 오면 어쩌라는 건가! 융은 이러한 말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악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악으로부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마주치기 꺼려하는 민감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나의 약점, 내가 외면한 나의 모습, 내가 회피하고 싶은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해놓는 것이다. 나의 취약한 점, 내가 마주하기 싫은 현실 등 그것들이 더 이상 내 통제를 벗어날 지경까지 이르기 전에 미리 제거하는 게 현명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젠가 내 삶에 반드시 나타나 장애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기에 아직 문제가 되지 않을 때, 문제가 문제로 일어나지 않을 때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떠한 일에 패배했으면 두 번째 도전에는 성공하기 위해 자신을 고치고, 가난하다면 부유해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체념했으면 다른 일을 선택해야 한다. 절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신세한탄에 그치면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패배의식이 나를 덮치고, 가난에 찌들어 살며, 체념한 데에 미련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명한 것들 외에도 이 책을 통해 융은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종교처럼 민감한 내용을 이 글에서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신과 종교에 대한 난해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중간중간 뼈를 때리는 한마디는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떠한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럽다면 이 책이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용 출처 : 칼 융-레드북 부글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