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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Dec 29. 2021

포스트모더니즘 박살내기

단편 소설






 김건태는 미술관을 좋아했다. 모네와 세잔, 부댕,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같은 인상주의 화가를 좋아하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포스트모더니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뱅크시의 작품을 보고나서는 언어를 발견한 네안데르탈인처럼 감명받고 어느 날은 울고 어느 날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후로 김건태는 학부 수업에 자주 빠지기 시작하더니 돌연 휴학계를 냈고 세상을 공부하고 싶다며 비행기표를 끊더니 코로나가 심해지자 남수단에서 귀국했다. 이태석 신부가 살았던 집을 보고 왔다, 세상은 비합리로 가득한데 이성을 내세우는 근대 철학은 멍청하다고 술자리에서 주장하다가 과대와 주먹다짐을 하던 김건태는 다른 학부생들의 질타를 순교자들의 희생가까운 것으로 비유해서 받아들였다. 이후에 내가 김건태를 만나게 된 것은 가을의 덕수궁이었다. 석조전에서 열린 전시회를 보고 나서 덕수궁 전체를 한바퀴 빙돌다가 안쪽에 보이는 기이한 초록색 건물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니 김건태가 사진기를 들고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그 당시 학부생들의 세력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한량이었으므로 그와 나쁘게 지낼 이유가 없었다. 그는 내가 옆에 서서 어깨를 건드릴때까지 나의 존재를 모를 정도로 정관헌 건물에 푹 빠져있었다. 정관헌은 지붕은 동양식이고 차양칸과 난간은 서양식의 초록색 건물이었다. 그는 가만히 난간을 바라보다가 난간에 그려져있는 사슴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살아서 뛰어 나올것 같지?”

어떤 동의를 구하는 물음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응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사슴이 뛰어나올 것 같다니 무슨 소리야? 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는 너무 그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세계가 너무 드넓어서 방황한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앞에 놓여져 있는 설명을 읽고 있었는데 이 곳은 서재가 아니라 외국의 귀빈을 맞이할때나 고종황제의 사적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고종이 여기서 커피를 즐겨 마셨대”

 “그렇구나”

할 말이 없을 때는 그렇구나 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보통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을 때 쓰이곤 하는 말투다.

“19세기 미국주택에서 유행하던 퀸앤스타일이 여기에도 쓰였다니 놀랍지 않니?”

그의 놀라움과 경탄은 나에게 너무나 피로하게 느껴졌다. 김건태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마치 자신이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행동하는 것에 익숙했다. 이럴 때 그래? 몰랐어 라고 대답하면 이 예술가가 흥분해서 날뛰다가 혈압이 올라 죽을지도 모르니 나는 가만히 그렇구나 라고 또 응대했다. 서비스 직원이 진상 고객을 맞이할때처럼 그러시군요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중이었다.

 그가 하는 모든 설명들이 귓바퀴 아래로 흘러 지나가면서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진득히 빠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혼을 낼때 다른 생각을 하며 버티는 것과 같았다. 자칭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왜 비범해보이려고 노력하는가? 왜 남들과 평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을 타인의 가치관을 바꾸기 위해서 설득하려 하는가? 왜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이 있으면 모조리 무지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고 자신이 개방적이라는 사실에 취해 더 좁은 울타리에 갇히는가. 나는 김건태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목적이 궁금했다. 그렇게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사람들과 싸우면서까지 쟁취하고 싶은 그만의 상위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너는 왜 포스트모더니즘을 좋아하는거야?”

김건태는 나의 순진하고도 무해한 질문에 짐짓 당황하는 듯 보였다. 사실 나는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자신은 별난 사람이고 사차원이고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할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몰랐다. 이 질문이 나와 그를 연결해버릴 통로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나는 원래 좋아하는 게 없었어.”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좋아하는 게 없었어. 태어났을 때부터 예술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어. 처음 미술관에 갔을 때는 동혁이가 데려가서였어. 과제 때문에 갔는데 거기서 그림을 빤히 보면서 생각했어. 이 그림이 왜 이렇게 비싸게 팔리는거지? 그냥 그림일 뿐이잖아. 근데 그 물음이 나한테 똑같이 다가오더라고. 너는 왜 좋아하는게 있어야만 하는거지? 그냥 사람일 뿐이잖아. 그 뒤로 뭔가 해답을 얻는 것 같았어. 미친듯이 모든 걸 찾아보려고 했어. 삶이 재미가 없었어. 나는 가난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역경을 겪은 사람도 아니고 딱히 큰 실패를 해본적도 없어. 그런데 인간일 뿐인데 왜 삶이 가치가 있어야만 하지? 라는 답에 도달한거지. 인간일 뿐인데 이성을 추구하고 그냥 살면 되는데 큰 역경을 얻고 보람을 느껴야만해. 개천에서 용이 나면 박수를 쳐주고 연못에서 20년을 사는 잉어한테는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 않지. 그거 자체가 커다란 헤게모니 아닐까? 넌 내가 너무 거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 난 이 모든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야.”

그는 모든 것이 불확실해서 확실한 것을 찾으려다가 고르기아스가 되어버린 걸까?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개념에 빠져 세상을 거대한 상대주의적 가치관으로 바라보게 된 것일까. 김건태는 예술가가 아니라 철학가였다. 인간은 왜 행복해야 하는걸까 라는 물음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끝이 났고 인간의 이성은 가치가 있다는 근대주의에서도 벗어나 이제는 기존의 철학에 반대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주의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조금 이해하고 싶었지만 조금 더 생각하려 하니 머리가 아팠다.

“네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고종의 충신이었을까 길바닥에서 유명한 논객이었을까?”

“내가 고종 아니었을까?”

나는 김건태를 이해하려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내가 예술에 관심이 적은 것에. 하지만 이런 내 생각도 김건태에게는 이미 존재하는 아집일 뿐이겠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걸까 예술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걸까? 그는 갑자기 내 사진을 찍더니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나는 전생이 고종인 사람에게 사진을 받게 되는 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박살내는 여성철학자는 아마 내가 될 것같다. 모든 것은 부서지는 역사다. 라는 명대사가 교과서에 실릴 것이다. 책을 내면 서론에 이런 문구를 쓸것이다. 박멸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 k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여러분들의 세계가 모두 부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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