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되지 못합니다. 몇 시간 전의 사건조차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많이 버거운 관념입니다. 그것보다는 상대를 붙잡고 말 몇 마디라도 건네는 편에 판돈 거는 편이 낫습니다. 그게현실적이라는생각에서 입니다.
듣기에 따라, 여태까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만,단지 옷깃이 스쳤을 뿐인데도그 정도로 인연을소중히 여기는 곱상한 마음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관계가 어디서 발화되고 어떻게 내밀한 속살을 채워가는지 남 사는 만큼 살아봐서 조금은 압니다. 관계의 시작과 끝을 몇 번 겪고 나서 얻은 결론입니다. 물론 과학이 아니기에 살다 보면 또 바뀌겠지요. 엄밀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아내는 삶이란 고저장단만 다를 뿐 늘 변화무쌍한 법이니까요.
이해와 오해 사이에 수 킬로미터가 걸쳐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만 그렇게만 생각지 않고 찬찬히 되짚으면 일리 있는 말입니다. 관련을 맺는다는 점에서 관계가 어디 그렇듯 찰나에 기댈 만큼 가볍지는 않겠지요.오히려 깨지고 터져서 마침내 남아날 것 없이 너덜너널 해져서야 나외의 사람을 어느 정도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싸움도 해봐야 늡니다. 관계도 넓히려면 어느 정도는 다툼이 불가피한 듯합니다. 생판 모르는 남들이 서로에게 부대껴 보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얼마간은 간을 내주어야 하고 또 얼마간은 쓸개를 내주어야 합니다. 굳이 우리 속담에 간과 쓸개를 인용한 이유는 그만큼 간과 쓸개가 중요한 장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내놓아야 할 때, 그건 얼마간 자신의 치부와도 관계가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온화한 관계에서 발현될지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격한 감정 기복 시기에 기름 튀듯 솟구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기왕이면 안 싸우면 좋겠습니다만 그래서는 사람의 그늘을 알 수 없습니다. 심연까지 알고 나야 상대를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알아가는 중입니다. 알아간다는 건 과정 안에 있다는 것이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열려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터널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