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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01. 2024

[현실] 옷깃만 스쳐서는

인연에 관해


인연이 되지 못합니다. 몇 시간 전의 사건조차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많이 버거운 관념입니다. 그것보다는 상대를 붙잡고 말 몇 마디라도 건네는 편에 판돈 거는 편이 낫습니다. 그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듣기에 따라, 여태까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만, 단지 옷깃이 스쳤을 뿐인데도 그 정도로 인연을 중히 여기는 곱상한 마음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관계가 어디서 발화되고 어떻게 내밀한 속살을 채워가는지  사는 만큼 살아봐서 조금은 압니다. 관계의 시작과 끝을 몇 번 겪고 나서 얻은 결론입니다. 물론 과학이 아니기에 살다 보면 또 바뀌겠지요. 엄밀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아내는 삶이란 고저장단만 다를 뿐 늘 변화무쌍한 법이니까요. 



이해와 오해 사이에 수 킬로미터가 걸쳐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만 그렇게만 생각지 않고 찬찬히 되짚으면 일리 있는 말입니다. 관련을 맺는다는 점에서 관계가 어디 그렇듯 찰나에 기댈 만큼 가볍지는 않겠지요. 오히려 깨지고 터져서 마침내 남아날 것 없이 너덜너널 해져서야 나 외의 사람을 어느 정도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싸움도 해봐야 늡니다. 관계도 넓히려면 어느 정도는 다툼이 불가피한 듯합니다. 생판 모르는 남들이 서로에게 부대껴 보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얼마간은 간을 내주어야 하고 또 얼마간은 쓸개를 내주어야 합니다. 굳이 우리 속담에 간과 쓸개를 인용한 이유는 그만큼 간과 쓸개가 중요한 장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내놓아야 할 때, 그건 얼마간 자신의 치부와도 관계가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온화한 관계에서 발현될지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격한 감정 기복 시기에 기름 튀듯 솟구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기왕이면 안 싸우면 좋겠습니다만 그래서는 사람의 그늘을 알 수 없습니다. 심연까지 알고 나야 상대를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알아가는 중입니다. 알아간다는 건 과정 안에 있다는 것이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열려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터널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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