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회: <정의론>(롤즈)× 현대의 '기본소득 실험'

| 무지의 베일 뒤에서 설계하는 공정

by 안녕 콩코드

​텍스트의 설계: 운의 중립화를 선언한 철학자


​20세기 정치철학의 거산, 존 롤즈(John Rawls)는 그의 역작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통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사회 계약의 조건을 탐구했습니다. 롤즈가 이 방대한 저작을 통해 일관되게 주창한 대전제는 ‘정의는 효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사회가 공정한지 판단하기 위해 한 가지 극단적이면서도 우아한 사고 실험을 제안합니다. 바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사회의 규칙을 제정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짙은 안개와 같은 베일이 내려져 있습니다. 이 베일 뒤에서 우리는 자신이 장차 어떤 계층에서 태어날지, 어떤 천부적 재능을 가질지, 심지어 성별이나 신체적 조건이 어떠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원초적 입장)에 놓입니다. 이때 롤즈는 묻습니다. “당신이 내일 아침 거지가 될지 재벌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떤 원칙에 서명하겠습니까?”


​이 불확실성 속에서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자신이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인 ‘최소 수혜자’가 될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롤즈 정의론의 핵심인 '차등의 원칙'입니다. 그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오직 사회의 가장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롤즈에게 정의란 단순한 산술적 평등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걸고 동의할 수 있는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였습니다. 그는 개인이 우연히 얻은 지능이나 가문의 배경조차 ‘공동체의 자산’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논리를 펼치며, 행운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군림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컨텍스트의 실험: 현금이라는 존엄, 기본소득의 현장


​롤즈가 추상적인 텍스트로 설계한 이 정의의 구조는 21세기 들어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라는 구체적인 컨텍스트와 조우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자산 소득이 근로 소득을 압도하는 격차의 시대에, 기본소득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 상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롤즈의 ‘차등의 원칙’을 현실 세계의 정책으로 번역하려는 가장 치열한 시도입니다.


​최근 핀란드의 국가적 실험부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 프로젝트들은 롤즈의 가설을 검증하는 시험대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실험들의 공통점은 ‘조건성’을 폐기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수혜자의 노동 의지나 도덕적 결함을 따지지 않고, 오직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롤즈가 강조한 '자존감(Self-respect)'의 문제와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롤즈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본재로 자존감을 꼽았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비참함을 증명해야만 작동하는 구걸의 형태가 아니라 당당한 시민의 권리로 주어질 때, 개인은 비로소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본소득은 단순히 빈곤을 구제하는 시혜가 아니라, 무지의 베일 아래서 우리가 서로에게 약속한 ‘존엄의 최소치’를 현실화하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심연의 대화: 정의는 효율의 시녀가 아니다


​그러나 롤즈의 텍스트와 기본소득 실험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언제나 날 선 질문들이 따라붙습니다. 시장주의자들은 묻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소득이 과연 공정한가? 그것은 성실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아닌가?”


​이에 대해 롤즈는 다시금 우리를 베일 뒤로 초대할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부모의 유산이나 천부적인 지능을 갖지 못한 채, 급변하는 기술 사회에서 순식간에 낙오될 확률을 안고 있다면 어떤 규칙을 선택하겠느냐고 말입니다. 롤즈에게 정의는 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효율성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지켜내야 할 시스템의 ‘제1덕목’입니다.


​실제로 기본소득 실험 결과, 수혜자들은 게을러지기보다 새로운 교육을 받거나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는 등 능동적인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롤즈가 예견했던 ‘합리적 자아’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인간은 생존의 공포에서 해방될 때 비로소 타인을 돌아보고 공동체의 정의를 사유할 여유를 갖게 됩니다. 즉, 정의로운 제도가 정의로운 인간을 빚어내는 것입니다.


존 롤즈(John Rawls)

​베일이 걷힌 후, 우리는 누구와 마주할 것인가


​연재의 첫 번째 기둥인 [Archive 1. 권력의 해부학]을 마무리하며 롤즈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앞선 회차들에서 목격한 권력의 감시와 야만적 법치, 그리고 광기에 휩싸인 이상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파제는 결국 ‘합리적이고 공정한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폭주를 막는 힘은 영웅의 등장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의 목소리가 시스템의 설계도가 되는 공정의 원칙에서 나옵니다.


​현대의 기본소득 논의는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운 좋게 성공한 타인’이나 ‘운 나쁘게 도태된 경쟁자’가 아닌, 동일한 베일 뒤에서 운명을 공유했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윤리적 시험대입니다. 이제 무지의 베일은 서서히 걷히고 있습니다. 베일이 걷힌 후,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서 있든—부유한 상위 1%이든, 혹은 보호가 절실한 최소 수혜자이든—"이 사회는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설계한 정의가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의 눈동자까지 비추고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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