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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Nov 04. 2024

쓰고 보니 고전 예찬: 고전을 수월하게 읽으려면

원래 이 글의 제목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감상과 평가였는데


10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에서 잠시 비켜나려는 뜻에 불을 댕긴 책. 레 미제라블》과 함께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비로소 끝까지 읽을 결심이라니 만시지탄. 고전 읽기는 발을 들여놓기가 만만치 않아서 그렇지 읽기에 탄력이 붙으면 그보다 더한 중독이 없어.



고전 입문기

고전 입문은 대학 2년생 시절 어떤 사정에 연루되어 심리적 도피 수단으로 하루 십수 권씩 한국 현대 문학을 읽은 게 시초. 그 시기 개 밥그릇 해치우듯 게걸스럽게 읽는 과정에서 문학 읽기에 맛 들여. 곧이어 혹독한 시련을 마주하게 되는데. 당장 내일 아침에 학부 시험을 봐야 하는데 중간에 끊지 못하고 새벽 5시나 되어서야 마지막 장을 덮더라는. 이유? 결말이 하도 궁금해서. 어이없지만 사실. 읽는 속도가 붙고 몰입감이 몰라보게 높아지자, 덜컥 세계 고전 문학으로 촉수를 뻗어 이카루스가 날개를 간 모양으로 소설은 물론 작가론을 찾아 천둥벌거숭이처럼 돌아다녔다는. 그땐 지금과 달리 서점에서도 입맛에 맞는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인간에 대한 속 깊은 이해와 인류사에 빛나는 서사의 세례를 그때만큼 흠뻑 맞아본 적이 없었던 듯. 고전을 잡기 전과 후로 개인적 독서 편력을 가를 정도. 그날의 경험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일종의 전환점이었던 것. 엉뚱하게도 도피 수단으로 손에 쥔 문학에서 새 세상의 서광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 후로 줄곧 내겐 고전이라는 성은 넘을 엄두를 내지 못할 어둑서니가 되었을 것. 돌이켜보면 고전은 일종의 파리지옥. 한 번 잡히면 헤어날 구석이라곤 없다는 점에서, 잡힌 순간 온몸이 녹아나는 별천지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에서. 그래서 고전은 '도파민 과잉의 산실'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지도 모를 일.





고전을 이물감 없이 읽으려면

1. 등장인물의 가계도부터 그리려 하지 말 것

고전에 등장하는 수 십, 수 백의 군상들 이름부터 꾀려고 하지 않으면 입구를 지나기에 어려움은 별로 없을 듯.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 미리부터 이름을 외우지 않으면 나중엔 뭐가 뭔지 모른다는 입방아는 자기 두뇌를 지나치게 얕잡아 본 것일 수 있어. 우리 두뇌는 들어온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혹은 놀라운 분류체계로 사실이나 내용을 엄선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 잊지 마시길.



처음엔 이 인물이 저 인물 같고 저 인물이 이 인물 같이 혼란스럽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죄다 꿰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돼. 그렇게 한 권을 읽어내면 자신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붙고 제아무리 긴 이름이 달려들어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게 되는 게 보통.



고전을 이물감 없이 읽으려면

2. 현대소설과 다른 묘사 방식은 고전 입문 과정,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점 잊지 않아야

장면 전환이 빠른 볼록버스터급 영화에 자주 노출된 현대인의 상황에 비춰 고전의 상대적으로 아주 지루한 배경 묘사와 인물의 성격은 물론 사건 전개의 평이성이 속도감을 저해하는 요인이지만 이 또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놀이동산 표를 사려고 매표소의 긴 행렬 가운데 선 것쯤 무시할 수 있을 듯. 여기까지 지나왔다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싹수없는(!) 말을 당신도 하게 될 것. 고전 읽기 이젠 어렵지 않아요. 당시 카프카와 카뮈의 작품에 목덜미를 잡힌 후 방학 기간 내내, 그리고 학기 중 시간 나는 때마다 고전 문학 읽기에 투신. 사정을 모르던 친구들은 두문불출한 내가 어디 가서 투신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수군거렸다는 후문.



고전을 이물감 없이 읽으려면

3. 고전 문학이 이룬 성취를 곱씹으면 동기부여에 좋아

아시다시피 고전은 인류가 창작에 눈 뜬 이래 장구한 세월 동안 인간 사회 내부에 축적된 집단 지성의 산물이자 인류사 저변에 흐르는 장대한 서사와 인간 내면에 짙게 드리운 인간 본성에 있어서 근원적 통찰을 제공하는 등등의 부분에서 빼어난 성취를 이어가고 있어. 다시 그 나들목에 들어선 입장에서 묘한 심상에 사로잡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터. 감정의 과잉 이입으로 결국 《노트르담 드 파리 리뷰는 근처에도 가지 못해. 10여 권의 책을 어떻게 동시에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도 제공하지 못하고 맘.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 있는 부분도 고전이 주는 유익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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