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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Dec 12. 2022

방사선 치료 시작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을 만나다


“수술 후 당분간은 팔에 무리하게 힘주지 마세요.”


팔에 부종이 올 수 있으니 조심하란 뜻인데.


‘당분간’은 얼마의 기간이며, 어느 정도 힘을 줘야 ‘무리한’ 걸까.


무 썰다 부종 왔다는 얘기를 듣고 애기 머리통만 한 양배추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양배추를 반으로 잘라야 하는 데 이놈 머리가 생각보다 단단하다. 그냥 확 잘라 버릴까? 아니야, 방사선 치료 앞두고 부종 오면 골치 아퍼. 그렇다고 양배추를 안 쓸 수도 없잖아. 지금 꼭 잘라야 하는 걸. 근데 오늘따라 도와줄 이 하나 없네.


그렇다면...




발로 썰어봐?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며.



도마를 바닥에 내려놓고 집에서 제일 긴 스테인리스 빵 칼로 양배추 가운데를 쿡 찔러 고정했다. 두 발을 칼 양쪽 끝에 올린 후, 한 다리씩 번갈아 가며 힘을 주니 칼날이 서서히 배추 속으로 들어간다. 쉬워 쉬워. 양배추가 금방 두 동강이 났다.(팔을 아끼라는 말에 발기술이 늘어났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 살다 살다 발로 칼질해 보긴 처음.









방사선 치료를 위해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님을 만났다. 여전히 암 센터에 오면 긴장되고 떨린다. 익숙한 유방암 센터를 지나 낯선 방사선 치료 센터 앞에 서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유방외과보다 대기실이 한산했다. 그건 마음에 드네.


“목소리가 작긴 하셔도 필요한 말씀은 다 해 주실 거예요.”


간호사님 말대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 선생님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치료 방향을 설명하셨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공부해 간 터라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렵진 않았다. 중간에 놓친 부분이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셨을지 짐작이 갔다. 이래서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예습, 복습을 강조했구나.


“4주 동안 20회의 방사선 치료가 있고, 오늘은 가슴에 치료 부위를 표시할 테니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담백한 첫인사를 마치고 CT 모의 치료를 받으러 방사선 치료실로 갔다. 대기실에 있는데 가운을 입고 방사선 치료를 기다리는 여자분 세 명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의 가슴을 확인하며 웃고 떠드는 그녀들은 암 환자가 아니라 마치 피부 관리실에 마사지받으러 온 여고 동창들 같았다. 살벌한 암 치료 얘기를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하는 유쾌한 삼 인방 덕분에 긴장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자, 신*길, 오*순. 가운데 글자를 가려도 충분히 예측되는 어르신들 이름 속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살짝 비틀어진 표정을 풀고 CT 실로 들어갔다.


“신원 확인을 위해 사진을 찍겠습니다. 가운을 벗어 주세요.”


가벼운 수치심이 기지개를 켰다. 반라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힌다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찰칵, 얼굴에 한 번, 가슴에 한 번 셔터 소리가 울렸다. 그래도 여자 선생님이 찍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만세 자세로 팔을 올렸다. 편하게 힘을 빼고 누워있으면 된다고 했다. 단, 절대 움직이지 말 것. 호흡 조절을 하며 얼음 상태를 유지했다. 둥근 도넛 같은 통이 위에서 왔다 갔다 하며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더니 곧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남자 선생님 두 분이 등장했다.


헛웃음이 났다. 3초도 안 걸리던 사진 촬영 때문에 느꼈던 수치심이 우스워 보였다. 슥삭슥삭, 10cm의 칼자국이 대각선으로 그어진, 유두조차 사라진 가슴 위로 신중한 손놀림이 신속하게 그림을 그렸다. 나조차도 아직 마주하기 두려운, 아무에게도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가슴 위로 사인펜이 날아다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예쁘게 그려주세요. 내 기꺼이 그대들의 도화지가 되어 드리지요. 우울이 들러붙을까 봐 얼른 생각을 바꾸고 편하게 눈을 감았다. 암 환자는 항상 우울의 늪을 조심해야 한다. 조금만 비틀거리면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한글 프로그램 문자표에서 볼 법한 전각 기호들이 가슴과 배 위에 수놓아져 있었다. 그림이 지워지지 않도록 샤워는 비누 없이 물로만 하라고 했다.






모의 치료가 끝나고 정식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 첫날이다. 내게 ‘처음’이란 단어는 ‘설레임’과 동일한 낱말이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발을 들일 때면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이 처음으로 무섭다. 암을 통해 경험한 모든 것들은 처음이지만 설레지 않았다. 두려움과 떨림이 그 자리를 파고들었다. 병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목이 메인다. 수시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설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가슴이 목이 불쑥불쑥 조여왔다.


치료실에 누웠다. 드디어 방사선 치료 시작. 지지징, 지잉-전류가 흐르는 듯한 소리를 들으니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아버지 제발 보일 것은 다 보이게 하시고 사라질 것들은 다 사라지게 해 주세요.’ 내 몸에 남아있을지 모를 암의 흔적들이 방사를 통해 깨끗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끝났습니다. 일어나서 가운 입으세요.”


엥? 아멘도 하기 전에 치료가 끝났다. 5분 정도 걸렸나. 너무 빨리 끝나서 돌아오는 버스를 탔는데, 카드 단말기가 “환승입니다.”라고 말한다.


매일 병원 가는 게 번거로울 뿐, 방사선 치료는 다른 치료보다 수월했다. 바늘 꽂힐 일도 없고 5분 정도 누웠다 일어나면 끝. 물론 방사에도 부작용은 있다. 피로, 열감, 통증... 하지만 미리 염려하지 말 것!! 닥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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